역대하 6:22-42
지난번 설교에 이어서!
솔로몬의 기도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기도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성전 건축은 약속 성취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에 의하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남은 언약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원히 이어질 다윗의 왕권이었습니다.
그 영원한 왕권을 완성 시키실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로 인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가능해지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예수님을 분명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모형인” 성전을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기뻐하며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마땅히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바라보며
그를 의지하는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여러분!
갈라디아 교인들이라고 예수님 십자가를 직접본게 아니었거든요!
눈으로 봐서 보인다고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이미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보는 자’라는 겁니다.
이런 전제 속에서!
오늘 계속 이어지는 솔로몬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를 막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그 죄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성전”이죠!
성전 제단에서 피흘림이 있기 때문에!
그 은혜로!
이스라엘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기도는 항상 성전을 향해야 하고, 성전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전을 향해야 하는가?”
솔로몬은
7가지 ‘성전을 향하는 기도’의 상황들을 상정합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를 살펴볼께요!
첫째는
22~23절 이웃에게 범죄했을 때! 또는 잘잘못을 따져야 할 상황일 때!입니다
그 때에!
“주님! 나도 나지만, 저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있다면!
맹세하라는 겁니다. 맹세라는 게 어떻게 이뤄집니까?
“주여! 저는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만일 이 범죄가 오로지 나의 죄악이라면, 내게 벌을 주셔도 마땅한 일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거죠!
대표적인 표현이! “내게 벌위에 벌을 주시기 원한다”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에서 굉장히 많이 나오는 표현이지요!
열왕기상 2: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공의의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는 기도입니다.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 중에 이렇게 기도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법정 다툼 등이 있을 때!
그저 “이기게 해주십시오!”, “형벌은 감하게 해주십시오”라고는 해도!
하나님의 공의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를 할 때 핵심은
22절 하반절에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 하거든”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요청하는 것도, 성전과 제단 앞에서! 입니다.
둘째 24~25절 하나님께 범죄해서 전쟁에 패하는 벌을 받았을 때입니다.
마땅히 성전과 제단 앞에 나아와야 하겠지요!
그런데 24절 후반절에는 “이 성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제단’이 빠져 있습니다.
아마도...전쟁 중에는 시체를 만지게 되는 일이 있다보니까!
부정해져서 성전 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을 염두한 것 같습니다.
만일에 그렇더라도, 성전 문 앞에서의 기도도 들어주시기를 간구하는 겁니다.
이런 개념이 세 번째에서는 더 크게 확장됩니다.
셋째 26~27절 하나님께 범죄해서 이스라엘에 여러 가지 재해가 임했을 때입니다.
하늘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아서 소출이 없을 때에요!
백성들이 굶주려서 움직일 힘조차도 없다고 생각해보시지요!
이정도 라면 성전에 나아오는 것도 어려울거라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할 수 밖에 없겠지요!
단,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26절 하반절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라고 말합니다.
성전에까지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있는 자리에서 성전을 향한다면!
동일한 응답과 회복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렇게...이후부터 일곱째 까지는 ‘성전을 향하는 기도’입니다.
넷째 28~31절 여러 가지 재앙이 일어나서, 부지중에 지었던 죄를 깨달았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이 부지중에 범죄했습니다.
그 죄악이 땅을 더럽혔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습니다.
기근이나 전염병, 흉년이나 전쟁의 패배를 당했는데도!
공동체는 “왜 우리가 이런 환난을 겪는지 몰라요!”
그러다가~
29절 보시지요!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깨달은 대로!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좋겠지만, 혹 한 사람만이라도 깨닫고!
주의 성전을 향해서 기도한다면!”
그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도 이 땅을 회복시켜 달라는 간청입니다.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도 민족이 사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국교회가 문제다’ ‘교회가 썩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넘쳐납니다.
그러나...
썩은 한국교회 때문에 자기 가슴을 치며 우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이건 우리 각자가 자신을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이제 나머지 세 개의 상황입니다.
이 상황들은 이스라엘 영토 바깥에서의 상황입니다.
다섯째 32~33절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여섯째 34~35절 이스라엘이 원정 전쟁에 나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일곱째 36~39절 죄악이 관영하여 결국 이방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니
성전에 나오지 못하고, 그저 성전을 향해서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마지막 일곱 번째,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라도!
그 적국의 땅에서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켜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기도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가기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백성이 포로생활 70년이 차면 돌아오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70년이 차는 때,
노년의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글을 읽다가 이 예언을 발견한 겁니다.
다니엘 9장에는,
다니엘이 이 약속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다니엘이 어떤 모양으로 기도했는가...가 의미심장합니다.
다니엘 6장 10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과
솔로몬을 통한 성전에의 언약 두가지를 다 기억한 겁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70년만에 포로회복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실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역사를
다니엘 한 사람의 신실한 기도를 통해서 이루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7가지 기도의 형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기도이든지!
모든 기도의 핵심에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 들어오든지, 성전 앞에 서든지, 심지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리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성전 제단에서 이뤄지는 제사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중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성도들도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심지어 어떤 기독교인은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느낌이 특별하더라고 하던데요...
과연 그럴까요?
또는,
구약에는 성전을 향해서 기도했으니까!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서’기도하면 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역대하 6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표현이 13회나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자신의 이름을 두신 것과 기도응답은 중요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요한복음 16:23-24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구하면 주신다”약속하신 이유는!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참성전이시오, 참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나, 심지어는 우리가 속한 교회 건물도 아닙니다.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응답과 회복, 공급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통해 주시는 기도의 특권에 압도되어서!
큰소리로! 마음껏 하나님을 향해 외치게 됩니다.
40절 “나의 하나님이여!”
41절 “여호와 하나님이여!”
41절 중반에도 “여호와 하나님이여!”
42절에도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는!
솔로몬의 불같은 기도에
하나님께서 불로서 응답하시지요!
7:1절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오늘 참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눈 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심으로 응답의 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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