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4편은
'출애굽 때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하죠.
"이스라엘에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이 시의 저작 시기가
출애굽 이후로 700년이나
후대랍니다.
그 많은 시간이 지나도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던 겁니다.
나라의 위기 때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신기한 이야기나 나옵니다.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하나님의 영토가 되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고백인데
이건 이해가 되죠.
그 앞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된다'는 말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다른 말로 '임마누엘'의 장소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다'가 그렇답니다.
뭘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메시야가 유다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유다에게서 이스라엘의 왕이
날 것입니다.
유다 출신의 위대한 왕은 다윗이죠.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될 것입니다.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라는
말씀은
결국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때를
바라보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자, 유다가
온 이스라엘의 앞에 섭니다.
우리로 이야기해볼까요?
예수님이 우리 성도의
앞에 서십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3절!
"바다가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바다가!
'도망했답니다'
이건 분명 '홍해가 갈라지던
출애굽 사건'입니다.
홍해가 '도망한 것'은
누구를 보았기 때문인 걸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핀
바에 따르면!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산들은 숫양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그 날
산이 크게 흔들렸다 했습니다.
'지진처럼 무시무시한 사건'을
시인은 '산이 기뻐 뛰노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과거 출애굽의 사건이라는 게!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편114편이 '예수님의 이야기'라면!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역시도
엄청난 위로와 격려, 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도!
쓰나미와 같은 거대한 물과
큰 산의 흔들림 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등 뒤에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힘을 냅시다.
용기를 냅시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두려움을 이겨냅시다.
'나의 설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121편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1) | 2024.02.25 |
---|---|
마태복음20장 일용직 일꾼을 똑같이 대우한 건 부당한 일인가? (2) | 2024.02.22 |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교회(담임목사 청빙설교) (1) | 2024.01.09 |
잠언 송구영신 묵상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2) | 2023.12.31 |
성탄절 묵상(8) 아기 예수님의 애굽 피신 (1) | 2023.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