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아가 5:2-6:3

"내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내 누이, 내 사랑,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하는구나." (아가 5:2)

사랑하는 연인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밤늦도록, 이슬에 젖으면서까지
문을 두드리는 간절함이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여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쉽게 문을 열어주지 못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으랴.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아가 5:3) 안일함과 게으름이 사랑하는 이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결국, 연인은 기다리다 지쳐 떠나고,
그제야 여인은 후회하며 그를 찾아 나섭니다.
문을 열었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난 후였습니다.
"내가 문을 열었으나
나의 사랑하는 이가 이미 갔음이로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고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노라." (아가 5:6)
사랑하는 이를 놓친 여인의 애끓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요?
조금만 더 귀 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이토록 애타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며
문득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열두 살 되던 해,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셨던 사건 말입니다. 하루 동안이나 예수님이 없는 것을 모르고
길을 나섰던 부모님은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성경은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를 찾기까지
사흘이나 걸렸다 합니다(누가복음 2:46).
단 하루의 부주의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렸고,
그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며칠이라는
간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을
순간의 방심이나 게으름으로 놓쳐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관계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아가서의 여인처럼, 예수님의 부모님처럼,
놓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되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영영 되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와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순간의 안일함과 무관심으로
그분의 부르심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랑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놓친 후에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728x90

누가복음22:54-71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베드로 이야기는
네 개의 복음서(마,막,눅,요)에서
공히 다룰 정도로
성경이 주목하는 장면입니다.

즉, 이 사건은
베드로 개인만의 경험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는
메시지, 혹은 경계라는 생각입니다.

성찬식 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릴 것'을
말씀하셨을 때,
모든 제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아닐 거라' 장담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을 거라'
강하게 주장했죠.

그러나,
주장이 강했던 만큼
꺾이는 것도 순식같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작은 소녀의 말에도
그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사람들의 의심을 떨치고자
그자리에서 사람들이 시키지도 않은
예수 저주를 스스로 하다가
심문으로 받고 나오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기까지 했죠.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누구도 자신에 대해서 확증할 수 없습니다.
저는 20년 이상 오랜시간 목사로 재직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변질 되는 걸
목격해왔습니다.

청렴과 정의를 항상 말씀하셨던 목사님이
연세가 들어가면 어느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돈 돈 거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살겠다며
선교사까지 생각했던 청년이
어느덧 교회까지 등지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3년동안
예수님의 기적을 자기 두눈으로 목도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베드로가 이렇게 무너졌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약한 존재들인가요?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인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던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겁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주간,
무너진 베드로를 보며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다시 한 번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귀한 시간으로 삼읍시다.

은혜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728x90

누가복음 22:39-53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기도제목은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였습니다.

 

참사람이셨기에 

예수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란 건 

상상을 초월한 고통일 터입니다.

창에 찔리고 못박히는 고통도 크겠지만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께 버림 받게 된다는

삼위일체이신 주님께 결코 있을 수 없는

'영적 단절'이 더할 수 없는 

두려움이셨을 터입니다. 

 

인류 역사의 분기점을 앞두고

예수님은 처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로서

예수님은 마음속의 두려움과 싸우셨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굳게 하셨습니다.

 

기도 없는 우리네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모습은 감람산에 잠들어 있는 

제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예수님이 왕 되셨을 때 높은 자리에 오를 꿈 뿐입니다.

긴장도 두려움도 염려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저토록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 조차도

그들을 자극하지 못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경고하신대로

그들 모두는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은

멈춰 있던 기도를 회복하는

시간으로 삼읍시다.

 

시험에 들지 않게 

헛된 생각에 매이지 않게

하나님의 뜻에 나의 의지를 고정하도록

 

기도합시다!

 

728x90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가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한 식탁에 앉아 있듯이

가족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시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길을 예비하시는 줄 압니다.

매일 매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하시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하여 주옵소서.

 

일상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오며

우리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728x90

시편77: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이건 정말 엄청난 말씀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에!

뒤에서는 애굽의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몰살하러 쫓았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이 순간!

어떻게도 답이 없는 이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이 말씀에 모세가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고!

바다가 갈라지며

거센 바람에 땅이 마르고 

백성들이 지나갈 길이 열렸습니다. 

 

다 함께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던 순간이었지만!

하나님은 '길'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지금 앞으로 가로막고 있는

'홍해 안에' 있었습니다. 

그 큰 바다 안에!

'하나님의 곧은 길'이 있었던 겁니다.

 

누가 이걸 상상이나 했을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눈 앞에 캄캄하고

사방이 꽉 막힌 듯 하여

절망 중에 계신지요?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하나님은 바다에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십시오.

저도 지금 이순간!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길을 열우주신

경험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은혜를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28x90

시편70편1절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5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속히'  도우소서!

'속히' 내게 임하소서!

 

이 요청은 긴급한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말씀입니다. 

 

시편70편의 제목은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다녔던 다윗은

그야말로 군급한 때가 참 많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마다!

얼마나 기도했을까요?

"속해 나를 도우소서!"

 

저는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척했을 때!

이 기도가 더욱 간절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드사람' 골리앗을 죽인

당사자가 다윗입니다. 

골리앗의 주인인 '아기스'가 

눈앞에 있는데...

다윗이 어찌 살 수 있었을까요?

 

순간적으로 성문을 손톱으로 긁으며

침을 흘리고 미친척을 했습니다.

그런다고 살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마음에는 

온통 하나의 외침 뿐입니다.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속히 내게 임하소서!"

"지체하지 마소서!"

 

이렇게 기도했을 때!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을 미쳤다 여기고 

불쾌히 여기며 

'쫓아내라' 명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살았던 것은!

분명 하나님의 긴급한 도움이었던 겁니다.

 

"속히 나를 도우소서!"

 

지금 이순간!

급박한 문제 앞에서 

답답해하고 있다면!

다윗의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속히 나를 도우소서'

 

저도 지금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혹, 이런 기도로 

어려운 순간을 돌파하신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은혜를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