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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24-46

 

 

오늘도 성탄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낮고 천한 사람이 되셨어요.

이건 전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니..

성탄절이야말로!

우리가 기뻐하는 게 당연한 날인거죠.

 

다만!

기뻐해야 하는 것실제 기쁜 마음이 생기는 건다른 문제잖아요!

전혀 기쁜 감정이 없는데, 기쁜 척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성탄의 기쁨이 마음 속 깊은데서 올라올 수 있을까요?

 

그걸!

예수님을 낳은 당사자! (누구죠?)

마리아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당사자니까 누구보다 기쁘지 않았겠어요?

 

시간은,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수태고지를 했던 때입니다.

수태고지’ - 아기를 낳을 거라고 알려준 때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릴께요.

어떻게 성탄의 기쁨이 어떻게 생겨날까!’ 였어요.

 

바로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을 해볼께요!

첫 번째. 천사를 만나면 기쁠까요?

성탄절 하면 떠올리는 그림이 천사그림이잖아요?

예수님 말 구유에 천사가 함께 있는 모습이 참 이뻐 보이지 않습니까!

과연, 천사를 실제 만나면 기쁠까요?

 

마리아가 천사를 만난 그 현장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앞에 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천사라고들 하죠.

 

, 마리아... 어떤 거 같애요?

천사가 먼저 인사합니다.

28!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말에 벌써 호의가 있어요.

 

그런데

29절 마리아의 반응은 어때요?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생각하매했습니다.

그리고 30절 보니까,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하시는데!

마리아가 무서워했다는 말이죠.

 

본문 말씀을 보시면 천사를 만났는데도!’ 전혀 기쁨이 없어요.

두려움이고, 난처함이고, 당황한 표정입니다.

 

구약 때부터 천사들은 여러 사람에게 소식을 전했거든요!

그 때마다 한결같은 인간의 반응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엎드러지고... 절망하면서... 소리쳤습니다.

화로다 나여 죽게 되었도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비롯한 거룩한 자들을 만났을 때 보였던 일관된 반응입니다.

 

마리아를 비롯한 모든 인간죄인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느낄 수 있는 감정은!

두려움뿐입니다.

오로지 자기 죄 생각만 나요.

그렇습니다.

천사를 만난다고 해서 기쁨이 생기지는 않더라는 거죠.

 

그렇다면 두 번째!

성탄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은혜로운 말씀을 들으면 어떨까요?

 

오늘 말씀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소식은 그야말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수백년을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야 탄생의 소식입니다.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게, 회당에서, 가는 곳마다 들어왔던 이야기입니다.

 

메사야가 오시면!

다윗의 나라가 회복되고, 그 나라가 영원하며, 심지어 온땅을 통치할거라는!

그 희망의 메시지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습니다.

 

천사 가브리엘바로 그 소식을 전해 준 겁니다.’

31~33절이죠!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 예수가 누군가!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요,

다윗의 왕위를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영원히 통치하시리라!”

메시야가 나신다는 거잖아요!

 

그 메시야께서 자신을 통해 세상에 나신다는 말입니다.

가난하게 자라서,

역시나 가난한 목수와 약혼한 별볼일 없는자신을 통해서 말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정말 은혜로운 말씀이에요!

이스라엘 민족이 수백년이나 기다려왔던 그 일이 드디어 성취된다는 건데요!

기뻐할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리아는 기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의문이 들었거든요!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처녀가 아기를 낳다니!

내 상식으로는... 아니 세상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 말씀인데 뭐든 다 좋은 말씀 아니겠어요?

그런데...

막상 현실로 돌아가면 또 다르잖아요?

많은 분들이 목회자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죠.

목사님... 그건 성경 말씀이고요...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면 안돼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 좋은데...

이걸 믿고 실제 적용 하면서사는 건 쉽지가 않아요.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그 자체가 기쁨이 되지는 않더라는 거죠.

 

말씀을 듣는 것 만으로는 안되는건가?

그럼 이건 어떨까요?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7절이죠!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게 무슨 말일까요?

마리아야!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 겁니다.

 

훗날에 예수님 역시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면! 말씀이 믿어지면!

성탄의 기쁨이 생겨날까요?

 

마리아는요. 천사가 전한 말씀을 믿었습니다.

나중에... 45절에서 엘리사벳이 하는 말이 뭡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38절 마리의 응답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화답했으니 이제는 좀 찬양이 터져 나와야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구절에서도 믿음의 비장함은 보이지만!

메시야 오심에 대한 기쁨은 여전히 보이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한 표정이 더 심해진 것 같애요.

여러분! 천사가 하려는 말이 결국은 뭡니까?

니가 임신하여 아기 낳을거다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어요?

27, 29절에 세 번 강하게 반복한 단어죠!

27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그랬습니다.

 

마리아가 약혼녀라 했습니다.

당시 약혼녀는,

집안끼리 결혼을 약속하고, 동네에 공적으로 선언하고, 이미 지참금까지 받아놓고!

결혼 할 때까지 순결을 유지하며 기다리는 사람이었어요!

남자를 알지 못하고, 알아서도 안되는, ‘약혼녀’ ‘처녀인데!

아이를 낳는다고요?’

내가 처녀인데 임신을 한다니!

가브리엘은, 놀라지 말라고 해놓고서는... 놀라 기절할만한 말을 꺼낸겁니다!

 

자기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다고 했을 때!

본인이야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 임신했다고 하겠지만!

그걸 과연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누가 마리아 편을 들어줄까요?

 

당장에! 예비신랑 요셉이 느낄 배반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마태복음1:19절에 보면!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그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 했다’”거든요!

 

이 약혼녀가 임신한걸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 다음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율법대로라면? 돌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돌까지는 안맞더라도!

평생을 간음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열 여섯 밖에 안되는 소녀입장에서는 무서운 말씀인 겁니다.

 

마리아가 위대한 믿음을 고백을 했지만!

여기서조차도!! ‘성탄의 기쁨은 없었습니다.

천사를 만난 일도’ ‘은혜로운 말씀도’ ‘믿음의 응답도 아니었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까요?

마리아에게 필요한 건!

비장함이니, 자신감이 아니었습니다. 용기도 아니에요!’

내 믿음과 결단을 지지해줄 누군가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천사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베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나니!”

 

세상에 그 할머니가 임신했다고?”

그것도 벌써 6개월이 됐다고?”

상상도 못했어요!

왜냐하면!

24절에 보시면! 엘리사벳 할머니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의 길을 예비할 자, 세례요한을 임신하고,

지금껏 숨어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걸! 마리아는 가브리엘을 통해서 들었어요!

지금 자신의 형편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엘리사벳 할머니 뿐입니다.

 

천사와의 대화를 끝내고 그가 떠나자 마자!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로 달려갑니다. 그것도 얼마나 급히 가는지!

39,40절에 이렇게 말해요!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그런데!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41절보세요!

엘리사벳 뱃속의 아기가 뛰놀았다합니다.

엘리사벳도 놀랐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순간!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왜 뱃속의 요한이 뛰놀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즉시! 엘리사벳은 젊은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축복합니다.

42!

여자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그 다음이 중요해요!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가!”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 부름으로서!

그 뱃속의 아이가 주님, 메시야임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44! 자기 뱃속의 태아가 기쁨으로 뛰노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뱃의 배로 손 발이 쭉쭉 밀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 모습에서!

태아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 같습니다.

 

이제막! 마리아의 뱃속에서 시작된 생명인데!

엘리사벳 뱃속의 태아가기뻐 맞이합니다.

엘리사벳 자신도 성령에 충만하여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격려하죠!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니가 복덩이구나!”하는 거에요!

 

보세요!

천사 가브리엘 앞에서는

복되고 기쁜 소식을 듣고서도!

두려워하고, 압도당하면서, 어쩔줄 몰라했던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의 격려와 축복, 그리고 태아 요한의 환영에!

마리아의 마음은 완전히 풀렸습니다.

안심했습니다. 그제서야!!! 기뻐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복을, 그제서야! 참 복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 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걸 의문의 1패라 하죠?^^;;;

 

세상에!!!!!!!!!!! 온 우주의 주인께서, 나같이 낮은 자를 통해 태어나시다니!”

이게 실감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그제서야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46절은 그 첫 소절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그야말로 터져나오는 기쁨의 찬송입니다.

옛 라틴어 성경에는 이 구절이 마그니피카트라는 단어로 시작했습니다.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훗날에 마리아의 찬양은 여러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대작 곡들이 쏟아져 나왔지요!

그 제목들은 한결같이 마그니피카트입니다.

수태고지그 복된 소식을 들은 이후!

마리아의 입에서 드디어 찬양이 터져 나온 것은!

엘리사벳의 격려와, 축복, 그리고 동질감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를 깨닫게 되죠!

 

성탄의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찬양해야 할 당위성분명히 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자요, 주권자가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오셨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우리 인생을 구하시려 기꺼이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이 위대한 복음 앞에!

구원 받은 우리가 찬양함이 마땅하죠!

 

그런데말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으니까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삶에서 역사하시니 찬양해야 한다.’

이런 당위성이 있다고 해서!

그게 자발적 찬송으로 이어지는가?

그건 아니더란 말입니다.

 

인간은 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찬양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에,

나의 믿음을 격려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에!

내 신앙적 결단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

너 참 복되구나!’ 말해주는 사람 때문에!

 

그의 마음의 기쁨과 찬송이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주님 오심을! 모두가 우렁찬목소리롤 찬송할 때!

서로의 마음이 격려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 심령에서부터!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서부터!

성탄의 즐거움을 다시금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년 성탄 축하 발표회를 하는 거에요.

함께 축하하며, 찬양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짜 기쁨이 터져 나오는 거에요.

오늘 이 복된 날에!

주님 오심에 합당한!

성탄의 날, 기쁨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사람과 큰소리로 인사하시죠!

매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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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14

 

 

오늘은 성탄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날이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인사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인사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습니까? (저만??)

 

뜬금없는 고백입니다만....

 

저는 성탄절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 설레이는 느낌 자체가 좋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 날이 좋았습니다.

아마, 눈오는 날 강아지만큼이나 좋아라 할 겁니다.

 

요즘에는 성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긴 했습니다.

12월이 됐다고 트리다는 가게도 많지 않지요.

게다가 최근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워낙에 엄중하니!

좀 더 분위기가 다른 것 같긴해요.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성탄절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오신 기쁨과 감격은 결코 묻히거나 없어지지 않는 실재입니다.

 

오늘은 예수님 오셨던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재구성해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연습하고 발표하고 예배하려는 성탄 축하!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000년 전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어땠을까요?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그 날! 그 밤도!

그렇게 낭만적인 크리스마스였을까요?

 

성경을 통해 그 날의 모습을 보자면...

 

트리 장식도 없었습니다.

선물 교환하는 젊은 남녀도 없었구요.

예수님의 나심을 축하하는 공연은 더더욱이나 없었습니다.

그 날 밤은 어쩌면,

그 어느 크리스마스 밤들 보다도 더 차갑고 스산했습니다...

 

일단 이스라엘! 이 나라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벌써 암울하잖아요?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가 그랬습니다.

 

세계의 패권은 로마가 쥐고 있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라고 하죠)가 유럽 전역을 재패했고,

그가 승리한 달을 기념하기 위해 8월의 이름을

자기 이름을 따서 어거스트라고 지었지요!

그 정도로 강대한 힘을 자랑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식민국가가 지배국에 조공을 바치지 않았습니까?

나라 대 나라로일정한 돈을 바치게 했지요.

 

이 로마 황제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조공이 아니라,

아예 두당으로 세금을 받으면 훨씬 많이 거두겠구나!

 

그래서입니다.

식민국에 본적을 등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자기 가문의 본적지로 돌아가 주민 등록을 하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인구조사를 명한 겁니다.

빠짐없이 세금을 거두려 한 겁니다.

 

유대인들의 반감이 엄청났습니다.

하나님께만 예물을 드려야 하는데! 남의 나라 황제한테까지 바쳐야 하는가?”

 

이것이 당시 치열한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래서 훗날 예수님께도 이런 시비를 걸었던 겁니다.

누가복음 20: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그런들 어쩌겠습니까!

 

이 명령에 대항하기에는 로마제국은 너무나도 강대했습니다.

로마는 민족을 말살시킬 만큼의 절대권력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로마는

AD70년에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가 납세 거부였습니다.

이후 1900년 이상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 없이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황제의 명령 앞에,

유대인들은 호적을 위한 서글픈 이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 많은 여행자 중에,

다윗왕의 자손이자,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이 있었습니다.

왕족이지만, 몰락한 왕가인지라 목수일로 연명했습니다.

수입이 많지 않으니, 여행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을 잉태한 아내 마리아는 이제 출산 직전입니다.

정부가 그런 사정을 봐주나요?

무력한 다윗의 자손 요셉은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3,4일이나 걸리는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자동차로요?

아니지요.

해봐야 나귀 정도 렌트하지 않았을까요?

 

위태위태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하니

밤입니다.

 

여보!”

마리아가 급히 남편을 부릅니다.

진통이 시작된 겁니다.

당장 아이가 나오게 생겼습니다!

이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리 저리 여관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서 빈 방이 없습니다.

 

거기다,

아기가 나오려 한다고요?”

집주인들은 자기 집안에서 아이 낳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뒷감당하기 싫었던거겠죠!

 

사정사정을 해서,

그나마 급하게 소개 받은 곳이?

 

 

마굿간이었습니다.

말을 키우는 곳이지요!

사람 사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쩌면, 우리는 마굿간의 아기예수도 로멘틱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뭔가 몽환적이고, 반짝거리는 것 같고....

아름다운 밤이에요~’

이런 느낌이죠?

 

하지만!

이스라엘의 마굿간은 고요하거나 따뜻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동굴을 파서 마굿간을 만들었습니다.

동굴 입구를 굳이 막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 바람이 그대로 몰아쳤습니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여러분,

혹시 마굿간 가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마굿간을 제대로 본적은 없지만,

어릴적에 시골에서 자라서

마구간사촌뻘 되는 외양간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압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죄송합니다)

입니다.

영어로는 ‘dung’이라고 하더군요.(큰 동물의 변)

 

마구간엔 변소가 따로 없습니다.

있는 그곳이 화장실이지요.

여기 저기에 갖 싼 똥오줌이 널려 있고,

오래된 똥은 말라 붙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변이 있으니 당연히 악취가 풍겼겠지요.

 

제 아버지께서 돼지 축사도 해보셔서, 돼지 똥 냄새도 좀 아는데요.

돼지 변은 진짜 독합니다.

냄새가 감당이 안되요...

그나마 소 똥은 양반입니다....

말 변은 그 중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설교 시간에 자꾸 똥 얘기 해서 죄송한데요...

냄새가 독하든, 구수하든....

마리아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짐승의 변 냄새를 맡으며 아기 낳고 싶은 엄마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마리아는, 화장실과 다를 바가 없는 마굿간에서

힘들게, 또 너무나도 외롭게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아이 낳는 것도 처절했겠지만,

이런 환경에서 출산을 하려니 얼마나 서글펐을까요?

아이를 낳으며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렇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요셉은,

그 춥고 불결한 환경에서 핏덩이를 어떻게든 씻었습니다.

아이를 눕혀야겠는데,

마굿간에 침대가 왠 말이겠습니까!

다윗의 자손 요셉은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무말 없이

말구유...말 밥통을 비우고, 그걸 씻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짚풀을 깝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나도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말 구유인데,

아기 예수를 눕힙니다.

요셉도 울고, 마리아도 울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람도 울고, 나귀도 울고, 나도 울고...

 

 

아기 예수의 나심은

캐롤이 아닌 차가운 바람 소리 뿐이었고,

아늑한 침대가 아닌 말구유였습니다.

몰락한 왕족 요셉은 너무나도 가난하고 무기력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날 가장 기뻐했던 건 사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신 사실을 아는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 탄생을 축하는 어떤 군중도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마치 사탄의 작전이 성공한 것처럼만 보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완전히 승리한 듯한 이 장면을!

하나님은 극적으로 반전시키십니다.

 

같은 시각,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들을,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보내십니다.

목자들... 그들도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났을 때에 사람들은 두려워 떨지요.

 

천사는 이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10!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다윗의 출생지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구원자!

구약성경 전체가 한결같이 예언했던 메시야가 드디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알려줬으니 확실한 정보였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확실합니다!

 

이 시점에서 목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가만히 있어봐...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나셨다면,

틀림없이 좋은 곳에서 태어나셨을 꺼구...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런 곳에 얼씬도 못할 건데,

왜 우리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지?”

천사들은 계속해서 말을 잇습니다~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표적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표적이란! ‘기적을 동반하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오늘 천사는, “이것이 표적이라 하면서!

표적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말구유의 아기예수님은 비참함과 더러움의 표상이었습니다.

마치 사탄의 승리를 보여주는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이 장면을 하나님께서는 표적이라 하십니다.

이 한 단어로 이 어두움의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분뇨가 더럽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마음보다 더 더러울까요?

 

예수님은!

분토, 즉 똥보다 더 더러운 죄악

그 속에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구원하시려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추잡하고, 더러운 존재인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꾸미고 있지만,

얼마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지 아십니다.

우리 내면을 한 꺼풀만 벗겨도 얼마나 끔찍한 것들이 들어있는지 주님은 아세요.

그 죄악 때문에

우리가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조차 없음을

주님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들처럼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 비참한 탄생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자리에 뉘신 것!

이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발 밥통 위에 누우신 예수

그분이 그 표적이 되십니다.

 

천사는 다른 높은 이가 아니라 목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왕궁에서, 높은 자리에서, 존귀하게 나셨다면...

감히 이 목자들이 그 자리에 얼씬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지요!

 

아기 예수님은,

모든 가난한 자들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의 표적으로서 구유에 누워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토록 낮아지신 예수님은,

그 비참하게 태어나심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팍스로마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로마의 평화라는 말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폭정을 하고, 백성들을 위협하며, 평화를 빼앗았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죄 짐을 지고, 비참한 마음으로 자기 앞에 나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더러운 말구유에까지 내려오셨지만,

그보다 훨씬 더러운 우리 본성의 죄악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참된 기쁨은

말구유 아기예수에게있다는 선언인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탄을 맞이할 때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비록 각자의 삶이 버겁고 여유조차 없을지 모르지만!

말구유 아기 예수를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성탄절이 설레이고 행복한 것은

그저 어릴 때나 느끼는 유치한 감정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때로 너무나도 비참하고 힘듭니까?

아무도 내 아픔은 모를 거라,

내 고민은 사람들에게 가치없는 거라 여겨지십니까?

성탄의 기쁨도 여유있는 사람들의 사치라고요?

 

여러분 말구유의 아기 예수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아시고, 나의 낮음을 아실 뿐 아니라,

말 밥통 위에, 나보다 더욱 낮아지셨던 아기 예수님!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께 예배 드리시면서,

여러분의 아픔을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기쁨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에 여러분의 마음이 아이처럼 즐겁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이 이제 얼마 안 남았지요.

마음을 여세요!

천사들처럼 예수 나심을 축하하며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십시오!

설레는 맘으로 예배드립시다.

함께 모여서 기뻐하십시다.

 

그냥 하루 지나면 끝나는 절기일지 모르지만,

여러분 평생에 반복될 이 성탄절이!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며, 새 힘을 주는 날로 채워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한 번 인사하죠!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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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24-46

 

오늘은 성탄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설교가 길어서 part1,2로 나눠서 이번주와 다음주에 설교하겠습니다.

 

한가지 질문부터 시작하죠.

여러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1,2차 세계대전을 말할 수도 있고,

-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죽은 흑사병을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 여러분도 겪었을 코로나 팬데믹을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 우리 나라에서는 대한 독립이나, 6.25 전쟁을 말 할수도 있겠네요.

- 정치에 관심 많은 어른들은 대통령의 계엄이나 탄핵 사건을 말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여러분!

무엇을 말하든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2000년 전,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전 세계가 역사를 bcad로 나누잖아요?

지금은 AD2024년이지요.

이게 무슨 뜻인가요?

ANNO DOMINI라는 라틴어의 약자인데!

우리 주님의 해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2024년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그 이전 시대는 뭐라고 해요?

BC라고 합니다.

Before Christ 예수님 이전이라고 하죠!

인류 역사의 분기점을 예수님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있다는 겁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탄생이 지구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말인거에요.

 

!

예수님의 탄생이 이렇게나 중요한가?

 

먼저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시죠.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세요.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하나님보다 못하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삼위 일체 하나님 자신입니다.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잖아요?

삼위일체이신 예수님도 한 분 하나님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거에요.

 

요한복음1: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 하나 하나를 잘 생각해보세요.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일이죠!

삼위 하나님의 일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일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시지 않고!

지금도 전 우주를 유지하고 다스리십니다.

사도행전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자 그러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가 얼마나 크다고 알고 계세요?

 

여러분 은하라고 아시죠?

별의 무리가 모여있는 우주의 공간인데!

과학자들은 우리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 안에

1000~4000억개가 넘는 별들이 있다고 합니다.

나선형으로 되어 있는 은하 하나에만 그만큼의 별이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또 수없이 많다고 해요.

최신의 망원경을 이용하면... 우리 같은 은하를 1억개 넘게 찾을 수 있답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라면 2000억개에서 2조개가 넘는 은하가 있다 합니다.

 

이번에는 우주의 크기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떤 사람이 빛의 속도 (광년이라고 하죠! 1광년은 1년에 94670km)

여행할 수 있다고 하면, 우리 은하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동하는데

10만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까지 가는데는 120억년이 걸린답니다.

 

말로만 설명하면 감이 안올까봐

오늘은 우주의 크기를 설명하는 영상을 준비해봤습니다.

학교에서 본 친구들도 있겠지만!

제 설명을 들었으니 좀 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영상 상영)

https://www.youtube.com/watch?v=aVnShULlCA8&t=1s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거에요.

이런 우주를!

누가 창조하셨다고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그 큰 우주보다 무한히 크신 존재이신 거에요.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시죠!

 

이 큰~~~ 우주에서

우리, 나라는 존재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지구조차도 이 우주에서는 먼지보다 작은 크기일텐데!

그 지구에서 조차도 작은 존재가 사람이에요.

먼지, 박테리아, 바이러스... 이런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정말 작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입장이라면!

이런 미미한존재에게 관심이나 가지시겠어요?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애요.

“‘작지만’ ‘소중한존재!” “귀엽고 예쁜 아기 같은 존재!”

 

하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너무나도 작고 보잘 것 없는데다가!

우리의 상태는 더 심각합니다.

욥기 25:6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구더기같다고 합니다.

귀여운 구더기?’ 아니에요!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구더기처럼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겁니다.

 

구더기본 적 있는 친구?

요즘 친구들은 화장실도 그렇고 해서 구더기라는 걸 못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걸 사진으로 보여드릴까 하다가!

예배 시간에 보여주면 선생님들에게 큰 저항을 받을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구더기가 뭐냐면요!

썩은 음식이나 분뇨에 파리가 알을 낳으면!

그 알이 부화해서 음식 분뇨를 먹으며 자라는 걸 구더기라고 해요.

뭔지 대강 아시겠죠?

아마 바퀴벌레보다 더 혐오스러울지도 몰라요.

 

여러분 손에다가!

누가 구더기한 마리를 올려 놨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펄쩍 뛰지 않겠습니까.

가능한 빨리 손을 털고!

가까운 수도로 달려가서 손을 씻지 않으시겠어요?

그것도 비누칠 박박하면서 씻어내실거에요!

그러고도 하루종일 찝찝하실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딱 그런 존재였다는 거에요!

구더기요!

 

우리는요!

하나님 손에

혐오스럽고 짓이겨 버려 마땅한 벌레같은 존재였습니다.

 

욕심’, 온갖 더러운 것들로!

생각과 마음이 더럽혀진 존재였습니다.

너무너무 작고 무가치한데, 거기에 해롭기까지 한 해충 같은 존재가 우리였어요.

 

그런 우리인데!

하나님은 오히려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얼마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셨는지!

이런 우리를 살리시려고!’

그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 기꺼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버러지 같은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것도

슈퍼 히어로 같은 위대한 인간으로 짠 나타나신게 아니고!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무 힘이 없는 존재가 되사 사람에게 자신을 의탁하셨습니다.

더할 수 없이 낮아지신 거에요.

 

신학 용어로는 이를 예수님의 비하라고 부릅니다.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피조물인 인간 아기가 되셨습니다.

비하도 이런 비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목적 때문입니다.

구더기 같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은혜지... 뭘 더 은혜라고 말하겠어요?

메시야 탄생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그렇게 놓고 보면!

인류 역사를 예수님 전과 후로 나누는 것이 그야말로 합당하지 않습니까?

그 어떤 사건이! 예수님의 오심 보다 더 클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탄절이 좀 시끌벅쩍 한게 좋은 것 같습니다.

거리에 캐롤도 더 많이 들리고, 더 화려하고 반짝거리면 좋겠어요.

예수님을 알건 모르건! ‘크리스마스를 마음껏 즐기면 좋겠고요.

길거리에도, 백화점에도 사람들이 더 북적거리게 되면 좋겠어요.

뭔데? 뭔데 이렇게 사람들이 들떠 있는 건데?’라고 궁금해지고!

그렇게 그들도 예수님을 아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음주에 성탄절 행사 준비하잖아요?

오늘 연습이 최종일 것 같은데!

여러분이 이런 기쁨으로 가득해서!

함께 연습하고,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발표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청년들하고 같이 연습하니까요!

꼭 같이 와서 연습하고!

다음 주까지 쭉 같이 가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런 기쁨을 억지로강요할 수는 없어요.

내가 기뻐해야지...’ 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없는 감정이 갑자기 나오지도 않지요.

 

실제 여러분도 그렇긴 하잖아요?

성탄절이라고 예배 드리는 거, 발표 연습하는 게 막 기대되고,

뭔가 설레고 그러지는 않죠?

약간 좀 더 짐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설교 제목이 성탄의 기쁨이라 했는데.

과연 어떻게! 우리가 성탄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냥 트리가 화려하다고 될 일도 아니고,

캐롤을 종일 듣는다고 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성경속에서 답을 찾아야겠어요.

 

그 해답을!

다음주 설교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궁금하죠?

오늘은 일찍 마치고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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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2:1-6

 

오늘도 요한계시록 본문으로 설교하고요.

천이백육십일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공부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영광교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여러분 대표기도 할 때 들어보면!

우리교회는 작다, 인원수가 적다, 좀 그렇다...’는 생각이 우선에 있는 것 같아요.

 

중고등부 학생이 100명쯤 되는 교회면! 교회 오는 것도 좀 재미있을텐데!

좀 자랑 스러울텐데... 싶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말입니다.

그건 우리가 보는 관점이에요.

 

한명이 있든 천명이 있든!

예수님이 머리이신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보시기에 영광그 자체에요.

 

, 오늘 말씀이 그걸 알려주고있어요.

1절 말씀 보실께요.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성경 책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이적이라는 단어에 ‘1’ 적혀 있는거 보이시죠?

그 밑에 각주가 있는데...

또는 표적이라고 된 거 보이세요?

하늘에 큰 표적이 보였다는 거죠.

여러분, ‘표적이 뭐냐면요 표지판이에요.

버스정류장 몇미터 앞이라고 적힌 표지판 같은게 표적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버스정류장 20미터 앞이라는 표지판을 봤는데!

거기에 서 있으면 버스가 설까요? 안 설까요?

안서죠!

표지판을 봤으면, 버스 도착하기 전에 버스 정류장으로 얼른 가야 되는거에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1절을 계속 보죠!

하늘에 큰 이적(표적)이 보이니!

해를 옷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여기서 는 태양입니다.)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한 여자가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태양을 옷입고, ‘위에 올라서있고,

또 머리에는 열두 의 면류관(왕관)을 썼어요.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뭔가 말도 안되는 그림이죠?

 

이게 가능해?’라고 생각하면 안되고 표적이라 했잖아요.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되요!

이런 묘사가 뭘 말하고 싶은 것 같애요.

고대 사람들에게 태양, , 영광의 상징이에요!

여자는 그야말로...

모든 영광을 몸에 두르고, 발로 딛고, 머리에 쓰고 있어요.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여자에요!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여자가 긍정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단 하나에요!

뭘까요?

교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보여주신 거에요.

 

세상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심지어 우리 자신이 우리를 볼 때조차 별 볼일 없어보여도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이 모임이 시간!

하나님께는 가장 귀하고’ ‘복된시간이고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사람이 10명이 더 오고, 100명이 더 오면 더 영광스러워질까요?

아니에요!

그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요.

우선 우리가 회복해야 할 마음가짐은 하나에요.

지금 우리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은 더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주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이곳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만, 그 말씀 앞에만 집중하면 되는겁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 501001000명 되면

예배가 더 영광스러워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의 영광을 회복하면!

하나님이 100명이고 1000명이고 얼마든지 붙여주실 거에요.

 

, 그렇게...

교회는 영광스러운 공동체다!’라는 배경을 이해하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2절에 보면요!

이 여자가...(교회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교회가 아이를 임신했고, 아이를 낳으려 했다합니다.

교회가 무슨 아이를 낳는다는 말일까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좀더 살펴보죠!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표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용이 한 마리 나타났데요!

이것도 표적이라고 했으니 이 뭘 상징하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이 용이 머리가 일곱, 뿔 열이 있고, 일곱 머리에는 일곱 왕관이 있어요.

이 용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이 용은 누구편인가?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아하... 1절에 있었던 영광들을 땅에 던져버렸어요.

그렇다면!

이 용은 교회의 대적이겠네요!

사탄, 마귀이렇게 봐도 되겠죠?

그 마귀가 뭘하려고 하는가?

4절 계속 볼께요.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 ?

교회가 낳으려고 하는 이 아이... 누굴까요?

감이 오나요?

5절 봅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철장으로 만물을 심판하실 분은!

예수님입니다. (요한계시록2:27, 19:15절 확인해보세요.)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롯왕이 예수님 죽이려고 두 살 아래 모든 남자아이를 죽인 일이 있지요.

그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을 죽이지 못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셔서, 승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셨죠!

 

5절은 그 이야기까지 바로 이어갑니다.

다시 읽어볼까요?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예수께서 승천으로 구원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자 이렇게 까지 보면 질문이 생기죠?

어 목사님! 여자는 교회라면서요? 교회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나요?”

예수님 태어날 때는 교회가 없지 않았나요?”

예수님 때문에 교회가 생겨난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뭘배웠죠?

144000이라는 숫자요!

여기서 144는 몇 곱하기 몇이라고 했어요? 12곱하기 12!!

둘을 더하면? 24... 24 장로가 있었지요?

12가 뜻하는 거는요?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사도였습니다.

구약 교회 전체와 신약 교회 전체!

구원 받은 전체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가 144000이라고 했어요!

 

말하자면! 예수님은 구약 교회를 통해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교회나 신약교회나 같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본문에서 아들을 낳은 여인은 모든 시대를 초월한 주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나셨고, 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에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여자그러니까 교회는 여전히 세상에 있으면서!

다른 역할을 감당합니다.

 

6절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에 있더라

 

교회는 광야에 있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고생과 어려움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6절 하반절 보시면!

그곳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양육하신답니다.

몇일동안요?

천이백육십일동안입니다. 설교제목 나왔네요.

 

천이백육십일이 의미하는 게 있습니다.

산수 공부좀 할께요!

1260일을 달로 나누면 몇 개월이 될까요?

한 달을 30일로 계산해보세요.

마흔 두달입니다.

요한계시록11:2절 볼까요?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요한계시록13:5절입니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같은 기간에 교회는 대적에게 짓밟히고, 비난 받고, 고난을 받을 겁니다

교회는 세상에게 미운 물건 취급 받을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1260일이라는 같은 숫자로 보여주세요.

요한계시록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런데 그냥 양육만 받는게 아니에요!

오히려 세상에 복음을 전합니다.

계시록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자 여기서!

마흔 두달을!

연 단위로 바꿔보세요.

1년은 12달이지요?

3년하고 6개월입니다.

그걸 요한계시록은 ‘1, 2, 6개월로 나눠서!

한 때와 두때와 반때라고 표현합니다.

 

계시록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세상의 핍박을 피하게 하시고!

오히려 양육하시며 키워주신다는 거에요!

 

이건 뭘 보여주냐면요!

엘리야 아시죠?

엘리야가 내 말이 없으면 이스라엘에 수년동안 배가 오지 않을거라예언하고,

악한 왕 앞에서 도망가거든요!

실제 비가 없었던 그 기간동안에!

왕을 피해 있었던 엘리야를!

하나님이 어떻게 먹이셨어요? ‘까마귀를 보내서먹이셨어요.

 

그 기간이 얼마였느냐?

야고보서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36개월이었어요.

 

이게 교회에요!

세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영광스러운 공동체입니다.

세상에 미움을 받으나, 결코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교회라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일하고 계세요.

 

여러분이!

이렇게 영광스러운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때에 크게 쓰임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

주님의 몸된 교회임을 꼭꼭 기억하게 하시옵고!

매주 예배를 통해서!

광야같은 세상을 이길 힘을 매주 누리게하여 주옵소서.

이 땅의 좁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의 영광을 더욱 바라보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의지하옵고 우리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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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10:1-19(667)

 

이번주에 정치적으로 대단한 일이 있었지요.

저는 밤에 일찍 자서, 아침에 일어나서 밤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봤습니다.

지금도 이게 무슨일인가 싶긴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어렸을 때, 학생 때 생각이 났어요.

당시에 공부 안하던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공부 열심히해서 정치인 되고, 사회 지도자들이 되어 봤자

다 범죄자들 되는데 뭐하러 공부하냐?”

자기 공부 안하는 이유를 이런 식으로 대는 거에요.

 

실제로 그래서 공부를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까!

그런 이유들이 참 한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부 많이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 타락했으니까!

나는 공부 안하겠다?’

부모가 봤을 때는 속이 터치는 말입니다.

 

남들이 잘못했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을 망칠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내가 할 일은 내가 열심히 하고, 나는 그렇게 안되면 되는 거죠!

 

그런데...

그런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성경 시대 때부터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르호보암이라는 왕이 나와요.

르호보암이 누군지 잘 모르시죠?

아마 그럴 겁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윗과 솔로몬정도만 기억하지,

이후의 왕들을 생각해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

이스라엘 12개의 지파를 통합 부흥 시킨 왕이

이 두 사람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 부터는 나라가 둘로 나뉩니다.

북쪽 10개 지파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떨어저나가고!

남쪽 다윗 가문은 두 개의 지파만 다스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남유다 르호보암의 잘못된 선택 때문입니다.

 

솔로몬 치하 때 백성들을 생각해볼께요.

나라가 부귀 영화를 누렸다고 했지요?’

물론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은 좋았지만!

그에 걸맞는 거대한 건물을 짓는데 있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힘들었지요.

 

하지만 솔로몬 앞에서 만큼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언변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거죠!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 지혜로운 솔로몬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 열심히 일해야겠구나~’라고 설득을 당해버리니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백성들은 이 때다 싶었지요!

르호보암에게 나아와서 제발 일을 줄여달라,

그러면 왕을 섬기겠다고 간청합니다.

 

르호보암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지요.

 

아니 아버지 때에는 한 마디도 못하던 백성들이

이제 나한테는 이렇게 무례한 요구를 하다니! 나를 호구로 아는가?”

 

그렇다고 함부로 할 수도 없어서 백성들을 물리고 3일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기간동안...

르호보암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한 부류는 아버지 솔로몬을 모셨던 원로들이었고,

또 한 부류는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먼저 원로들의 조언입니다.

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되리이다

여러분 보시기에 맞는 말이에요, 틀리는 말이에요?

지혜로운 솔로몬과 40년을 함께 했던 이들의 지혜입니다.

지극히 합당한 권고였지요.

하지만,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말이 성에 안찼습니다.

 

반면,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친구들은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르호보암의 심중을 잘 파악했죠!

10절 후반절부터 내용입니다.

왕은 대답하시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채찍으로 하리라 하소서!”

내 아버지의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보다 굵다!”

 

아버지에게는 아무소리도 못하던 백성들을 두렵게 할 만 한 말 아니겠습니까?

친구들의 조언...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러나...

왕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이었습니다.

 

3일이 지나고, 백성들이 다시금 몰려들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친구들의 조언대로백성에게 대답합니다.

 

14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치리라

 

그의 입에서 나온 험악한 말 몇 마디가

설마 나라를 둘로 쪼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르호보암의 대답에 실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16절 중반입니다.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보라하고는

이스라엘 북쪽의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자신의 왕으로 삼고

새로운 국가를 세워 버렸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왕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잘 보면요!

나라를 빼앗으려 했던 여로보암은

이미 르호보암이 이런 어리석은 왕이라는 걸 알고!

처음부터 함정을 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절에 보시면!

르호보암이 왕으로 추대받기 위해서 세겜으로 갔다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의 수도가 어디에요? ‘예루살렘이잖아요!정상적이라면, 백성들이!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 와서 왕을 추대했어야 됐죠.

 

오히려 백성들은 세겜에서 기다리고,

왕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세겜까지 올라와야 했습니다.

 

뭔가 굴욕적인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러면 세겜은 어떤 땅이냐!

 

세겜에브라임지파에 분배 되었었는데,

12지파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지파가 바로 에브라임입니다.

 

- 이 지파에서 여호수아라는 지도자가 나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솔로몬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성막이 에브라임 땅에 세워졌는데,

덕분에 이곳이 종교 중심지가 되었고,

- 여호수아24:1절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라고

한 걸로 보아, 이곳은 정치적인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바로 에브라임지파출신입니다.

 

열왕기상 11:28절에 보면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다윗 성을 수축할 때,

요셉 족속의 노역을 감독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고충을 가까이서 보고, 알고 있었고,

그만큼 백성들의 마음을 회유하기 쉬웠을겁니다.

 

여로보암은 이미 백성들의 마음을 거의 자기에게로 돌려놨습니다.

그런 정치적인 힘을 등에 업고, ‘르호보암세겜으로 오게 만든 겁니다.

이미 굴욕을 준거죠!

왜 그랬겠어요?

 

백성들의 마음을 거의 다 얻은 여로보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한 정당성만 확보하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우리의 왕 될 자격이 없다!”

 

그 계기가 될 사건이!

르호보암의 포악한 말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의 마음을 마구 긁어놨기 때문에!

르호보암이 포악한 말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솔로몬의 나이 많은 신하들은!

아마 그런 것까지 파악을 하고 왕에게 조언했을거란 말이지요!

 

그러나!

어리석은 르호보암여로보암의 책략에 그대로 넘어간겁니다.

 

이렇듯, 내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나뉜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계산의 결과물입니다.

여기서 도덕적인 적용들을 끌어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15절 말씀은, ‘이스라엘이 나뉘는궁극적인 이유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뤄진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사실상 본문은, 여로보암의 책략이나,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속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사건정도로 기술합니다.

 

 

사실 역대하 기자가 지적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로부터 갈라질 때에 북 이스라엘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16절 말씀에!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보라한 내용입니다.

 

우리와 다윗은 관계가 없다!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이 말은!

이스라엘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어리석은 르호보암을 배척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을 버리겠다는 뜻이라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 아니 온 인류의 소망은 다윗의 언약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르호보암이 어리석었다고 해도!

심지어 나라가 반으로 나뉘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해도!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는 말을 결코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언약을 버린 북 이스라엘은

결국 우상을 숭배하며, 타락의 나락에 빠져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역대하 저자인 에스라는

10장 전체의 내용의 결론을 내는데!

19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합니다.

스스로 옳다고 여겼던 이스라엘은 오히려 배반자요, 배교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절망적인 형편에서도 이새의 아들에게 유업이 있음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11:1절에서 말씀하시는 것 처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인식이 참 나빠졌어요.

아니 교회에 관심도 없지요.

관심도 없는데 그들의 마음을 긁는 사람들이 누구냐!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에요.

저도 이번주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이번주에 지하철 파업으로 안그래도 지하철에 사람 많아서 힘들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저쪽 칸에서부터 큰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이쪽으로 가까이 와요.

예수 믿으라, 안 믿으면 지옥간다...”

이걸 중얼거리면서 지나가는데....

사람들을 험하게 밀치면서 지나가는 겁니다.

그 말 이전에... 그분의 태도가 너무나도 불쾌했습니다.

안하무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그 안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그것은 기독교인구의 감소로 실제화 되고 있습니다.

이게 참 답답할 노릇이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을 생각해보시죠!

 

그렇다고 해서!

이새의 아들에게 받을 유산이 없다며 복음과 교회를 떠나는 것이

과연 의로운 일일까요?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판단하실까요?

 

처음에 말씀드렸던 예처럼!

교회에 이런 저런 안좋은 모습들이 있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을 망치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지옥에 떨어져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공부해야 하는 학생은 어쨌거나 공부를 해야 하는 거고!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예수 안에 거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요...

기독교의 어떤 현실.

사람들 보기에 어떻게 보이는지...

교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이런 것들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게 아닙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께 받은 구원과!

그분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기에 교회에 오고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향해 등을 돌리는 이 시대에,

신실한 남은자들이 되셔서

교회 부흥의 새로운 주역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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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9:13-31(667)

 

지난번에 우리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서 배웠잖아요?

솔로몬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라는 질문에!

이보다 더 확실한 답은 없을 겁니다.

열왕기상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인류 역사상 솔로몬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럼 지혜만 그럴까요?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솔로몬의 부귀와 영광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왕들 중에 너 같은 부귀와 영광을 가진 자가 없을 거라 하신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긴 했죠.

네 평생에라고 했으니까!

지혜처럼 전과 후까지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부귀영화는요!

역사상 그만큼을 누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22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 보다 크다했으니!

약속대로 솔로몬 당대에 솔로몬보다 부한 왕이 없었습니다.

초강대국 이집트도 당시 이스라엘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강원도 땅 덩어리만한 이 나라에 감당이 안될 만큼 많은 재물이 몰린겁니다.

 

오늘본문 20절입니다.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순금이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다하고요!

27절이 결정타입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뭐 은이 길거리의 돌 같이 되었다고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솔로몬이 얼마나 잘 살았든지,

그가 역사상 몇 번째 부한 사람이었든지...

사실 남의 이야기 아닙니까?

유튜브에 나오는 가십거리 정도죠.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거의 마지막 장이고요...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거기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21절입니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

 

솔로몬 시대의 예루살렘 길이 이었다면!

종말의 새 예루살렘 길은 입니다.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보이세요?

 

솔로몬의 부귀가, 그리스도의 영화를 예표하고 있다(다른 말로, 바라보고 있다)”

말씀입니다.

역대기 기자의 눈에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모형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요!

역대하에서는!!!!

이렇게 솔로몬의 영화에 대해서만 다루고는

곧바로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합니다.

31절 볼까요?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같은 내용을 기록한 열왕기에서는 솔로몬의 영화 뿐 아니라,

그의 타락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타락이 절대 가볍지 않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솔로몬이 정략적 목적으로 1000명의 이방 아내를 두었던 것과!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우상이 만연하게 된 내용입니다.

이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갈라진 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범죄였는데도!

역대기 기자는 이 부분을 기록에서 제외시켜 버립니다.

 

왜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을까요?

언뜻 정의롭지 않아 보이기도 하잖아요!

 

, 이 부분은 역대기의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단하게 이야기해볼께요.

 

솔로몬의 아들 대에서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두개의 나라로 나뉘었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후손들이 계보를 이으면서 정통성을 유지했고!

북 이스라엘은 여러 지파간의 계속되는 배신으로 많은 왕조가 서다가

결국 기원전 722년에 먼저 멸망당하고 맙니다.

남유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멸망당하지요!

 

그런데!

유다가 멸망 당하기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렇게 예언을 합니다.

“70년이 차면 유다의 포로가 돌아오리라!”

 

그 말 그대로 됐죠!

유다를 지배했던 바벨론이 무너지고!

그 바벨론을!!! 바사, 즉 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하지요!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는 세계를 통일한 첫 해에

고레스 칙령을 내려서 유대 민족을 고향땅에 돌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약 5만명 정도가 고향 땅에 돌아왔습니다.

 

기적과 같은 포로회복에 기쁨으로 돌아온 약속의 땅입니다.

하지만!

정작 돌아와서 보니 현실이 기가 막힙니다.

 

이스라엘의 이전 영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유다 땅은 황폐화 되었고!

고향 땅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타국의 지배하에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이 완전히 훼파되어서!

하나님의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증거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안팎의 상황에 그들을 낙심했습니다.

 

이렇게 좌절에 빠진 유대인들을 다시금 일으키기 위해서!

그들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기록한 책이 역대기에요!

 

역대기 저자 에스라는!

과거 강대국 사이에서도 빛났던 유다 역사를 보여줌으로 유다백성들을 위로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지요.

아담의 언약, 아브라함의 언약, 다윗의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겁니다.

특별히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위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 그림자로서! 또는 모형으로서!

솔로몬의 영화를 보여준 겁니다.

 

솔로몬의 영화가 이 정도였다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영화는 얼마나 더 크겠느냐!

우리에게는 아직 궁국적인 하나님의 약속이 남아 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토대로!

이후 메시야 시대의 영광을 다른 성경저자를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문 23-24절에

천하 열 왕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원하여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정한 수가 있었더라하지요!

 

바로 이 본문을!

이사야 60:4-5절이 받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그런 메시야의 시대가 올거라 합니다.

 

그 말씀의 성취를!

요한계시록 21:24절이 보여주죠!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왕 같은 제사장들!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림인 겁니다.

 

 

역대기에는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30회 이상 나옵니다.

조상들의 하나님!

지금 비참한 현실 속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시 성도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의 부귀가 이만하다면!

메시야의 영화는 얼마나 더 크겠느냐!.”

 

역대기 저자는 솔로몬의 잘못을 일부러 다루지 않을 정도로

그의 영화를 더욱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영광이 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솔로몬의 영광과 지혜를 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부요함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몇몇 이단들은!

책 전체의 주제나, 전후 문맥도 보지 않고!

이 본문을 왜곡합니다.

13절 말씀이지요!

솔로몬의 세입금 무게가 금 육백 육십 육 달란트요!”

666나왔습니다.^^;;;

제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아시겠죠?

 

솔로몬의 이 666세겔을

이단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 즉 적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솔로몬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인데,

그가 우상과 배금주의 사탄에게 빠졌다고 하여

그 계보로 오시는 예수님까지도 매도 하는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린지가 보이죠!

이 본문에 솔로몬의 타락 이야기는 없다그랬잖아요!

문맥이 그런 문맥이 아니라고요.

 

그래요! 솔로몬이 잘못한 부분이 분명 있지요!

하지만!

적어도 오늘 역대기 기자는

성실치 못한 인간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어떻게 이루어 오셨는가 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앞도뒤도 안따지고

단순하게 666이라는 숫자가 나왔다고...

계시록의 666을 솔로몬의 666에 갖다 붙이는 게아니에요!

 

이단들의 목적은 자명합니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들을 사탄의 종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 예표를 따라 그리스도의 구속을 실패로 매도하고!

그 교주를 그리스도의 자리로 높이려는 겁니다.

 

요한복음 5:39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단들이 성경을 어떤 교묘한 말로 풀어서 들이댄다 할지라도!

성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속주요, 메시야로 알려주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 현실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예수 안에서 우리가 누릴 하늘의 영광은

이 땅의 어떤 영화와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 사는 성도의 정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요한계시록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찬송가 가사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높은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의 영화를 많이 읽고, 상상하십시오!

하지만! 그걸 부러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글을 통해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고,

또 누릴 영화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그려 보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신앙이!

다른 어떤 무지한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예수 바라보며, 그 풍성한 위로와 소망을 누리며, 마침내 소유하는

복되고 참된 신앙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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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7:1-10

 

 

저는 요한계시록에서 144000이라는 숫자만 보면!

마음이 아려올 때가 있어요.

 

제가 예전에 고등부 담당이었을 때,

부서 분위기가 참 좋았거든요.

아이들이 한 100여명쯤 되었는데...

그 때 아이들이 참 열심히 했어요.

그중에서도 리더급 되는 친구들이,

하여간 뭐든 잘했고, 그래서 참 이뻐라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를 떠나고...

2년인가 지났을 때였을 거에요.

그 아이들이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는 이단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여러분도 많이 아는 그 이단이에요.

 

억장이 무너지더라구요.

정말 보석처럼 반짝이던 아이들인데...

어떻게 말도 안되는 이단에 빠졌는가 싶으니까요...

자책감도 많이 들고..

한동안 정말 힘들었고,

지금도 처음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144000이라는 숫자만 보면

마음이 너무 아려옵니다.

 

그러고 나서도 더 어이 없는게요.

그 이단 교세가 144000명이 넘었거든요.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는데 144000명이 넘어버리면 문제잖아요?

그래서 또 교리를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뭐라더라?

144000명도 진짜 144000명 안에 들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랬어요.

교리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 진리거든요!

그게 필요에 따라 바뀐다는게 얼마나 어이없는 종교에요?

이런 말도 안되는 이단에 빠졌다는게 더 화가 났어요.

 

그래서입니다.

여러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께요!

144000은요!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심지어 그 이단은!

오늘 본문에서 각 지파별로 12천명이었다고 해서!

자기네도 각 지파를 구성했는데요.

만일에 그렇게 지파로 해서 구원 받는다고 하면말입니다.

그냥 이스라엘 사람 혈통 지파로 하고 말지!

뭐하러 이방인들한테 이스라엘 지파이름을 주겠어요?

 

, 144000명이라는 건!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4절부터 보세요.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는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인침을 받았다’ ‘도장 찍었다는 말이고!

구원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구원 받은 사람이 144000 맞는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이 편지를 받는 당시 사람들이 이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144000이라는 숫자는요!

1441000을 곱한 수에요!

그리고 1441212를 곱한 숫자에요!

12,12라는 숫자가 중요해요!

계시록에 천상 교회에 24장로라고 있잖아요?

24? 12더하기 12이에요!

12가 두 번 들어가서 더하거나 곱한 숫자가 ‘24, 144’라는 숫자죠!

이 숫자가 뜻하는게 뭐냐?

 

어려운 문제니까 퀴즈를 내볼께요!

구약에서 12라는 숫자는 무엇을 대표하는 숫자이고!

신약에서 12라는 숫자는 무엇을 대표하는 숫자일까요?

정답:

 

네 맞습니다.

구약에서 1212지파이고!

신약에서 1212사도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은 144라는 숫자를 만났을 때!

구약교회와 신약교회를 떠올렸다는 거에요!

그리고 1000이에요!

1000은 완전수에요!

1000이라고 하는 숫자 자체가 완전 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장소라면 어딜거 같아요?

하나님이 계시는 곳!

지성소라고 하죠?

지성소의 크기가 가로 10규빗, 세로 10규빗, 높이 10규빗이에요!

곱하면? 1000입니다.

1000은 지성소의 숫자로! 가장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에요!

 

자 그럼 전체를 살펴볼까요?

신구약 교회 144에 완전수 1000이 만났어요!

이게 무슨 뜻일 것 같애요?

구원의 완전 수!’

구약과 신약시대에 구원 받은 숫자 전체를 뜻해요!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을 한사람도 놓치지 않고 다 구원하실거에요.

144000명만 구원 받는게 아니라!

얼마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구원을 위해 택함 받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 구원 받는다는 거에요!

 

목사님, 그러면 그게 몇 명쯤 될까요?’

라고 묻는다면!

그 답이 9절에 이어지는 거죠!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어린 양 앞에 서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습니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로 시작해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예수님 믿고 구원 받은 총 수가 얼마냐?

하나님만 아신다!’

한가지 아는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답할 수 있겠어요.

 

구원 받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이게... 144000의 비밀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이것만 알아도

144000명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 보면 144000을 다르게 계산했는데!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오늘은 이 내용만 살피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2지파를 한 지파당 12000명으로 계산해서!

총 합을 144000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모 이단도, 자기네 그룹을 12지파로 나누어서 구성했죠.

 

이런 구분은!

이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인지를 보여주는 그림이에요!

5절부터 8절을 보시면!

어디어디 지파 중에인침을 받은 자가 몇명이요!”라고 하는!

이 표현이!

구약 성경 민수기 1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는 표현 방식이 같애요!

이걸 병행적 관계라고 하는데!

민수기 1장의 분위기를 요한계시록으로 가져와서 설명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면!

민수기에서 12지파의 사람들을 계수한 이유가 뭔가!

민수기12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군인을 세는 방식이었다는 거죠!

, 이쯤하면 지파별로 구성한 이유가 나온 것 같애요!

교회는!

구원 받은 백성들은!

마치 군대와 같다는 겁니다.

세상에서 싸우는 공동체라는 겁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엄청 고난당했다고 했잖아요?

7년 대환란과 같은 고난이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고요!

그렇게 엄청난 고난이 현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군사로 부르셨다는 겁니다.

그저 나약하게

아파요! 힘들어요! 못하겠어요! 나좀 내버려 둬요...’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서!

세상과 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믿음을 지키며 예배하는!

그런 사람으로, 공동체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겁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령했어요.

에베소서6:11-13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여러분이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고!

이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의 군사로 승리하는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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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6:12-21(661)

 

퀴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최초의 성전은 누가 지었지요?

: 솔로몬!

솔로몬이 지었습니다. 다윗 아니에요^^;;

 

오늘 본문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 짓고

낙성식을 하는데!

그 순서로서 모든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첫 부분은 오늘 읽은 12절에서 21절로

이 성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이 성전을 백성들이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그 태도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다루는 첫 부분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이 기도가 단순하게 성전 기능만을 이야기한다면,

이 말씀은 그저 3000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메시야를 기다리는구약의 모든 성도들과

오신 메시야, 즉 예수님을 믿는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고!

13절 후반절에 말씀을 보시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모든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기도했다 하죠?

이 말씀은 당대 이스라엘 회중 뿐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언약 자손들과,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을 대표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시겠습니다.

 

14절 후반절에 중요한 두 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여기서 언약은혜가 함께 나왔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만일 여기에서 언약만을 이야기했다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틀림없이 쌍방간의 약조를 떠올렸을 거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분명 율법을 생각했을 겁니다.

 

율법에는 조건이 있지요!

 

신명기 3015절과 19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언약하십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생명을 택하면, 생명과 복을 보장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과 저주를 받을 거라는 겁니다.

 

너무나 단순한 조건이죠.

그리고 생각해보시면!

누가 죽고 싶고, 누가 저주를 받고 싶겠어요?’

 

놀랍게도!

이스라엘이 이 주님의 명령에 제대로 순응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실상 율법에 대해 실패한역사였습니다.

죽는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달려가는 게 인간의 죄 된 본성이더라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이성적이고 똑똑해보여도!

정작 삶에서 보면

-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많이 합니까?

- 왜 저러나 싶게 사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거고요...

- 나라마다 정치판 마다 죽음과 전쟁을 택하는 걸 보시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역사는,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러분!

율법, 도덕, 윤리... 이런 것으로

사람이 고상해지고, 의로워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은 그리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오히려 우리가 죄인 인걸더 분명히 드러낸다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말씀에 언약과 함께! “은혜가 같이 나온 건!

이 기도가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주인이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진리를 다윗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수 많은 다윗의 시편들이 메시야를 대망하고, 찬양하고 있지요!

 

이 말씀들을 솔로몬이 물려 받았습니다.

 

일단 오늘 말씀이 성전 낙성식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럼 모든 기도 내용이 성전에만 집중 되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15절은!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서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전이 완성된 사실을 고합니다.

그렇다면! ‘성전과 함께 그분의 정하신 말씀도도 완성되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이렇게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무리 하면 될 일일 겁니다.

다 이루셨으니까요!

 

그런데요!

솔로몬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6절 중반 말씀을 보시면!

네게로부터 나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17절에서도!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라면서

오히려 미래의 약속 성취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 남아 있는 약속이란 건 무엇입니까?

 

16절에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하셨지요?

~~속 이어질 왕위에 대한 약속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다윗 자손의 영원한 왕권과 왕위

이게 하나님께서 이루실 주권적인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면!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남 유다에서, 다윗의 후손이 계속 왕위를 이어가긴 했지요!

하지만~~

기원전 586, 남 유다가 멸망하면서, 그 왕위는 끊기고 말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미래를!

심지어 솔로몬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닌데

역대하6:36절 말씀을 볼께요!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막론하고 끌고 간 후에

 

나라가 망할 것!

그리고 육적 다윗 자손의 왕위가 끊어질 것을!

솔로몬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도!

땅에 속한 왕권을 기대한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바라본 건 무엇인가!

 

시간이 흘러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실 때

수태고지를 하러 온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31-33

31.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바로 예수께서!

다윗의 왕위를 잇는 영원하신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놀랍게도 솔로몬은 건물 성전 앞에서,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의 지혜가 어떤 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역대하1:12을 보면 엄청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솔로몬의 지혜가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지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지혜가 노벨 상을 받을 만한지혜였다면!

성경이 그렇게까지 칭송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고린도전서 1:24절 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세상에 이 이상의 지혜가 있을까요?’

솔로몬의 궁극적인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였다는 겁니다!

 

본문의 기도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게 확실해 졌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야께서 이루실 일은 무엇인가?”

성전의 역할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성전의 역할을 완성시키실 분입니다!

 

18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하시지요?

성전의 중요한 역할이지요!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또한 19절에!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하고!

20절 후반절에도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죄지은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결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게!

이사야 59:1-2절에서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한다거나,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죠!

 

분명 그럴텐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오늘 본문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본문 마지막 구절인 21절 하반절에 보시면!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끝이 납니다.

 

12절부터 차근 차근 읽어보시면요!

우리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청원은 있는데!

회개, “죄사함같은 단어가 안나옵니다!

 

그러니까!

전체 절의 마지막에 기도응답은 응답하시옵소서!”가 적절한거지!

사하여 주옵소서가 나올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하여 달라는 청원이 나온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도!”

 

오직 죄 사함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이 시작하는 12절에서 의미있게 기록된 단어가

제단 앞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단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대신하여,

흠없는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고 불살라지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제단은!

온전한 제물이요! 완전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놀랍게도!

다윗의 아들 솔로몬!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 제단 앞에서!

 

다윗의 자손이요!

이스라엘의 영원하신 왕이시오!

그 백성과 함께 하실 임마누엘이시며

백성의 중보자가 되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전무후무한 지혜자인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선명하게 본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모형인 성전실체저럼바라보면서 감격했을 뿐이죠.

그럼에도 그 감격은 엄청났을겁니다.

하나님의 집이 우리와 함께 있다니!”

 

하물며!

우리는 복음의 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신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감사하며, 감격하며, 기쁨과 열정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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