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24-46
오늘도 ‘성탄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낮고 천한 사람이 되셨어요.
이건 전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니..
성탄절이야말로!
우리가 기뻐하는 게 당연한 날인거죠.
다만!
‘기뻐해야 하는 것’과 ‘실제 기쁜 마음이 생기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전혀 기쁜 감정이 없는데, 기쁜 척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성탄의 기쁨이 마음 속 깊은데서 올라올 수 있을까요?
그걸!
예수님을 낳은 당사자! (누구죠?)
마리아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당사자니까 누구보다 기쁘지 않았겠어요?
시간은,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수태고지’를 했던 때입니다.
‘수태고지’ - 아기를 낳을 거라고 알려준 때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릴께요.
어떻게 ‘성탄의 기쁨이 어떻게 생겨날까!’ 였어요.
바로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을 해볼께요!
첫 번째. 천사를 만나면 기쁠까요?
성탄절 하면 떠올리는 그림이 ‘천사’그림이잖아요?
예수님 말 구유에 천사가 함께 있는 모습이 참 이뻐 보이지 않습니까!
과연, 천사를 실제 만나면 기쁠까요?
마리아가 천사를 만난 그 현장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앞에 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천사’라고들 하죠.
자, 마리아... 어떤 거 같애요?
천사가 먼저 인사합니다.
28절!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말에 벌써 호의가 있어요.
그런데
29절 마리아의 반응은 어때요?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했습니다.
그리고 30절 보니까,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는데!
마리아가 무서워했다는 말이죠.
본문 말씀을 보시면 ‘천사를 만났는데도!’ 전혀 기쁨이 없어요.
두려움이고, 난처함이고, 당황한 표정입니다.
구약 때부터 천사들은 여러 사람에게 소식을 전했거든요!
그 때마다 한결같은 인간의 반응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엎드러지고... 절망하면서... 소리쳤습니다.
“화로다 나여 죽게 되었도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비롯한 거룩한 자들을 만났을 때 보였던 일관된 반응입니다.
마리아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두려움’뿐입니다.
오로지 자기 죄 생각만 나요.
그렇습니다.
천사를 만난다고 해서 기쁨이 생기지는 않더라는 거죠.
그렇다면 두 번째!
성탄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은혜로운 말씀을 들으면 어떨까요?
오늘 말씀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소식은 그야말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수백년을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야 탄생의 소식’입니다.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게, 회당에서, 가는 곳마다 들어왔던 이야기입니다.
메사야가 오시면!
다윗의 나라가 회복되고, 그 나라가 영원하며, 심지어 온땅을 통치할거라는!
그 희망의 메시지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바로 그 소식을 전해 준 겁니다.’
31절~33절이죠!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 예수가 누군가!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요,
다윗의 왕위를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영원히 통치하시리라!”
메시야가 나신다는 거잖아요!
그 메시야께서 자신을 통해 세상에 나신다는 말입니다.
가난하게 자라서,
역시나 가난한 목수와 약혼한 ‘별볼일 없는’ 자신을 통해서 말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정말 은혜로운 말씀이에요!
이스라엘 민족이 수백년이나 기다려왔던 그 일이 드디어 성취된다는 건데요!
기뻐할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리아는 기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의문이 들었거든요!
34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처녀가 아기를 낳다니!
내 상식으로는... 아니 세상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 말씀인데 뭐든 다 좋은 말씀 아니겠어요?
그런데...
막상 현실로 돌아가면 또 다르잖아요?
많은 분들이 목회자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죠.
“목사님... 그건 성경 말씀이고요...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면 안돼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 좋은데...
이걸 ‘믿고 실제 적용 하면서’ 사는 건 쉽지가 않아요.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그 자체가 기쁨이 되지는 않더라는 거죠.
말씀을 듣는 것 만으로는 안되는건가?
그럼 이건 어떨까요?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7절이죠!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게 무슨 말일까요?
“마리아야!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 겁니다.
훗날에 예수님 역시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자.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면! 말씀이 믿어지면!
성탄의 기쁨이 생겨날까요?
마리아는요. 천사가 전한 말씀을 믿었습니다.
나중에... 45절에서 ‘엘리사벳’이 하는 말이 뭡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38절 마리의 응답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화답했으니 이제는 좀 ‘찬양이 터져 나와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구절에서도 ‘믿음의 비장함’은 보이지만!
메시야 오심에 대한 ‘기쁨’은 여전히 보이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한 표정이 더 심해진 것 같애요.
여러분! 천사가 하려는 말이 결국은 뭡니까?
“니가 임신하여 아기 낳을거다”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어요?
27절, 29절에 세 번 강하게 반복한 단어죠!
27절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9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그랬습니다.
마리아가 ‘약혼녀’라 했습니다.
당시 약혼녀는,
집안끼리 결혼을 약속하고, 동네에 공적으로 선언하고, 이미 지참금까지 받아놓고!
결혼 할 때까지 순결을 유지하며 기다리는 사람이었어요!
남자를 알지 못하고, 알아서도 안되는, ‘약혼녀’ ‘처녀’인데!
‘아이를 낳는다고요?’
내가 처녀인데 임신을 한다니!
가브리엘은, 놀라지 말라고 해놓고서는... 놀라 기절할만한 말을 꺼낸겁니다!
자기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다고 했을 때!
본인이야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 임신했다고 하겠지만!
그걸 과연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누가 마리아 편을 들어줄까요?
당장에! 예비신랑 요셉이 느낄 배반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마태복음1:19절에 보면!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그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 했다’”거든요!
이 약혼녀가 임신한걸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 다음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율법대로라면? 돌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돌까지는 안맞더라도!
평생을 ‘간음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열 여섯 밖에 안되는 소녀입장에서는 무서운 말씀인 겁니다.
마리아가 ‘위대한 믿음을 고백’을 했지만!
여기서조차도!! ‘성탄의 기쁨’은 없었습니다.
‘천사를 만난 일도’ ‘은혜로운 말씀도’ ‘믿음의 응답’도 아니었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까요?
마리아에게 필요한 건!
‘비장함이니, 자신감이 아니었습니다. 용기도 아니에요!’
내 믿음과 결단을 지지해줄 누군가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천사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36절!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베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나니!”
“세상에 그 할머니가 임신했다고?”
“그것도 벌써 6개월이 됐다고?”
상상도 못했어요!
왜냐하면!
24절에 보시면! 엘리사벳 할머니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의 길을 예비할 자, 세례요한’을 임신하고,
지금껏 숨어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걸! 마리아는 ‘가브리엘’을 통해서 들었어요!
“지금 자신의 형편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엘리사벳 할머니 뿐”입니다.
천사와의 대화를 끝내고 그가 떠나자 마자!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로 달려갑니다. 그것도 얼마나 급히 가는지!
39,40절에 이렇게 말해요!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그런데!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41절보세요!
엘리사벳 뱃속의 아기가 ‘뛰놀았다’ 합니다.
엘리사벳도 놀랐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순간!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왜 뱃속의 요한이 뛰놀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즉시! 엘리사벳은 젊은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축복합니다.
42절!
“여자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그 다음이 중요해요!
43절!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가!”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 부름으로서!
그 뱃속의 아이가 ‘주님, 메시야’임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44절! 자기 뱃속의 태아가 ‘기쁨으로 뛰노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뱃의 배로 손 발이 쭉쭉 밀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 모습에서!
태아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 같습니다.
이제막! 마리아의 뱃속에서 시작된 ‘생명’인데!
엘리사벳 뱃속의 ‘태아가’ 기뻐 맞이합니다.
엘리사벳 자신도 성령에 충만하여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격려하죠!
45절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니가 복덩이구나!”하는 거에요!
보세요!
천사 가브리엘 앞에서는
복되고 기쁜 소식을 듣고서도!
두려워하고, 압도당하면서, 어쩔줄 몰라했던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의 격려와 축복, 그리고 태아 요한의 환영에!
마리아의 마음은 완전히 풀렸습니다.
안심했습니다. 그제서야!!! 기뻐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복을, 그제서야! 참 복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 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걸 의문의 1패라 하죠?^^;;;
“세상에!!!!!!!!!!! 온 우주의 주인께서, 나같이 낮은 자를 통해 태어나시다니!”
이게 실감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그제서야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46절은 그 첫 소절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그야말로 터져나오는 기쁨의 찬송입니다.
옛 라틴어 성경에는 이 구절이 ‘마그니피카트’라는 단어로 시작했습니다.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훗날에 ‘마리아의 찬양’은 여러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대작 곡들이 쏟아져 나왔지요!
그 제목들은 한결같이 ‘마그니피카트’입니다.
‘수태고지’ 그 복된 소식을 들은 이후!
마리아의 입에서 드디어 찬양이 터져 나온 것은!
엘리사벳의 격려와, 축복, 그리고 동질감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를 깨닫게 되죠!
‘성탄의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찬양해야 할 당위성’ 분명히 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자요, 주권자가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오셨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우리 인생을 구하시려 기꺼이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이 위대한 복음 앞에!
구원 받은 우리가 찬양함이 마땅하죠!
그런데말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으니까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삶에서 역사하시니 찬양해야 한다.’
이런 ‘당위성’이 있다고 해서!
그게 ‘자발적 찬송’으로 이어지는가?
그건 아니더란 말입니다.
인간은 ‘섬’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찬양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에,
나의 믿음을 격려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에!
내 신앙적 결단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
‘너 참 복되구나!’ 말해주는 사람 때문에!
그의 마음의 ‘기쁨과 찬송이’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주님 오심을! 모두가 우렁찬목소리롤 찬송할 때!
서로의 마음이 격려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 심령에서부터!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서부터!
성탄의 즐거움을 다시금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년 성탄 축하 발표회를 하는 거에요.
함께 축하하며, 찬양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짜 기쁨이 터져 나오는 거에요.
오늘 이 복된 날에!
주님 오심에 합당한!
성탄의 날, 기쁨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사람과 큰소리로 인사하시죠!
“매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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