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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2: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이 말씀은 굉장한 도전입니다.
극한 고난 속에서 힘겨워하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말과 경주할 사람’이라고
오히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내라고
더 강하게 격려하시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에게는 유명한 별명이 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만큼 많은 고난을 당했고
조국의 죄악과 악함 때문에
숱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토록 선한 선지자였건만
그에게는 적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예레미야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혈육 친척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1절입니다.
“베냐민 땅 아나돗 제사장들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예레미야는 ‘아나돗 제사장 집안‘ 출신
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11장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자신의 친족인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는데 앞장섰다는 거죠.

예레미야 입장에서는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들이 언제든지 결행만 하면
선지자의 목숨은 보장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로서는 이 현실이 너무 부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과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위협과 협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 구절에 예레미야 12장 1,2절입니다.
”…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심으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고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왜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한 것인가?”
“반역자들은 다들 평안한 것인가?”
“정직하고 선한 사람들은 왜 고난 당하는가?”

어떤 분들은 이런 현실에
엄청나게 분노합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고
’이런 하나님은 선한 신이 아니다‘라고
하늘에 주먹질을 합니다.

저도 이런 분들의 마음을 백분 이해합니다.
나름 절망에 빠졌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있으면서!
저도 참 많이 기도했거든요.
말씀 붙들고서는
위급한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얼마나 간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지금 와서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보다는…
‘결국 나 혼자 떠 안고 감당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하늘에 주먹질하지는 않습니다만,
섭섭한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요!
예레미야가 그랬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방금 예레미야의 기도인
예레미야12장 1절 앞에 보면요!
앞서서는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좁은 지식과 인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크심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할 때에
내 생각이 옳은 것 같고
내가 더 정의로운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서면‘
내 생각을 내려놓겠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에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을 터입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예레미야가
경외하는 마음으로(이런 태도를 경외라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오늘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5절입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려느냐?”

사람이 말과 경주한다는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말과 달리는 사람‘으로 쓰겠다 하시는 겁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요?
정말 힘들고 어려울지 몰라도!
그건 그저 ‘보행자와 달리는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표현으로…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일은
다가올 일들에 비한다면
오히려 ’평안한 땅‘의 일일 뿐입니다.

앞으로 예레미야가 감당해야 할 일은
’요단강이 넘치는 듯한‘
훨씬 더 크고 엄중한 일입니다.

그 일이 어떤 일입니까?
내가 죽고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가족 먹여 살리는 일보다 급박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영원한 지옥형벌에서
영원한 생명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예레미야는!
세상에 구원을 주실 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표하는‘
몇 안되는 사람중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과 그의 행위는
남 유다를 넘어
온 인류에
참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단지 사람과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둠 세상을 주관하는 마귀를 대적하는
하나님의 참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말과 경주하고‘
’넘치는 요단강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군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현재 고난을 감하지 않으실 겁니다.
예레미야는 다가오는 모든 고난을
온 몸으로 맞아야 합니다.
울고 또 울어야 합니다.

그 눈물이!
예레미야를 예레미야로 만들 것입니다.
그를 ’눈물의 선지자‘로 만들 것입니다.

물론 저도 고난이 싫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렇게 여기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고난이 왜 고난입니까?
피할 수 있다면 그건 고난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고, 어쩔 수없기 당해야 하기에
고난입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입니다.

지금 고난중에 계신가요?
그렇게 기도하고, 마음을 낮춰도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고,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대하고 있다 생각하시나요?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오늘의 말씀을 하신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말과 경주할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께서 기어이 그리 만드시겠다면
괜히 뻗대지 마시고요….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가는 것이
지혜 아닐까요?
아니면 끌려서라도 가야 할텐데 말입니다.

“말과 경주할 사람!”이라 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힘들어하시는 여러분!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을 호소하시는 여러분!

어쩌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런 사람으로 만들
계획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견디세요.
힘들더라도 견디십시오.
인생을 포기하거나,
그냥 던져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을 더 열심히 찾고
그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십시오!

맷집이 커지고, 폐활량이 많아지고,
근육이 늘어날 겁니다.
감당할 힘과 능력이 점점더 많아질 겁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우리는 말과 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이겨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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