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6:12-21(구661)
퀴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최초의 성전은 누가 지었지요?
답 : 솔로몬!
솔로몬이 지었습니다. 다윗 아니에요^^;;
오늘 본문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 짓고
낙성식을 하는데!
그 순서로서 모든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첫 부분은 오늘 읽은 12절에서 21절로
‘이 성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이 성전을 백성들이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그 태도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다루는 첫 부분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이 기도가 단순하게 성전 기능만을 이야기한다면,
이 말씀은 그저 3000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구약의 모든 성도들과
‘오신 메시야, 즉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고!
13절 후반절에 말씀을 보시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모든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죠?
이 말씀은 당대 이스라엘 회중 뿐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언약 자손들과,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을 대표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시겠습니다.
14절 후반절에 ‘중요한 두 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여기서 “언약”과 “은혜”가 함께 나왔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만일 여기에서 “언약”만을 이야기했다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틀림없이 ‘쌍방간의 약조’를 떠올렸을 거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분명 “율법”을 생각했을 겁니다.
율법에는 조건이 있지요!
신명기 30장 15절과 19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언약하십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생명을 택하면, 생명과 복을 보장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과 저주를 받을 거라는 겁니다.
너무나 단순한 조건이죠.
그리고 생각해보시면!
‘누가 죽고 싶고, 누가 저주를 받고 싶겠어요?’
놀랍게도!
이스라엘이 이 주님의 명령에 제대로 순응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실상 ‘율법에 대해 실패한’ 역사였습니다.
죽는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달려가는 게 인간의 죄 된 본성이더라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이성적이고 똑똑해보여도!
정작 삶에서 보면
-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많이 합니까?
- 왜 저러나 싶게 사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거고요...
- 나라마다 정치판 마다 죽음과 전쟁을 택하는 걸 보시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역사는,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러분!
율법, 도덕, 윤리... 이런 것으로
사람이 고상해지고, 의로워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은 그리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오히려 ‘우리가 죄인 인걸’ 더 분명히 드러낸다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말씀에 “언약”과 함께! “은혜”가 같이 나온 건!
이 기도가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주인이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진리를 다윗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수 많은 다윗의 시편들이 “메시야”를 대망하고, 찬양하고 있지요!
이 말씀들을 솔로몬이 물려 받았습니다.
일단 오늘 말씀이 “성전 낙성식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럼 모든 기도 내용이 “성전”에만 집중 되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15절은!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서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전이 완성된 사실”을 고합니다.
그렇다면! ‘성전’과 함께 “그분의 정하신 말씀도”도 완성되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이렇게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무리 하면 될 일일 겁니다.
다 이루셨으니까요!
그런데요!
솔로몬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6절 중반 말씀을 보시면!
“네게로부터 나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17절에서도!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라면서
오히려 미래의 약속 성취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자, 남아 있는 약속이란 건 무엇입니까?
16절에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하셨지요?
계~~속 이어질 왕위에 대한 약속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다윗 자손의 영원한 왕권과 왕위’
이게 하나님께서 이루실 주권적인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면!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남 유다에서, 다윗의 후손이 계속 왕위를 이어가긴 했지요!
하지만~~
기원전 586년, 남 유다가 멸망하면서, 그 왕위는 끊기고 말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미래를!
심지어 솔로몬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닌데
역대하6:36절 말씀을 볼께요!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막론하고 끌고 간 후에”
나라가 망할 것!
그리고 육적 다윗 자손의 왕위가 끊어질 것을!
솔로몬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도!
땅에 속한 ‘왕권’을 기대한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바라본 건 무엇인가!
시간이 흘러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실 때”
수태고지를 하러 온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31-33
31.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바로 예수께서!
다윗의 왕위를 잇는 ‘영원하신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놀랍게도 솔로몬은 건물 성전 앞에서,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의 지혜가 어떤 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역대하1:12을 보면 엄청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솔로몬의 지혜가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지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지혜가 ‘노벨 상을 받을 만한’ 지혜였다면!
성경이 그렇게까지 칭송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고린도전서 1:24절 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세상에 ‘이 이상의 지혜가 있을까요?’
솔로몬의 궁극적인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였다는 겁니다!
본문의 기도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게 확실해 졌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야께서 이루실 일은 무엇인가?”
성전의 역할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성전의 역할을 완성시키실 분입니다!
18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하시지요?
성전의 중요한 역할이지요!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또한 19절에!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하고!
20절 후반절에도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죄지은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결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게!
이사야 59:1-2절에서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한다거나,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죠!
분명 그럴텐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오늘 본문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본문 마지막 구절인 21절 하반절에 보시면!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끝이 납니다.
12절부터 차근 차근 읽어보시면요!
“우리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청원은 있는데!
“회개”나, “죄사함”같은 단어가 안나옵니다!
그러니까!
전체 절의 마지막에 기도응답은 “응답하시옵소서!”가 적절한거지!
“사하여 주옵소서”가 나올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하여 달라”는 청원이 나온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도!”
“오직 죄 사함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이 시작하는 12절에서 ‘의미있게 기록된 단어가’
“제단 앞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단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대신하여,
흠없는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고 불살라지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제단은!
온전한 제물이요! 완전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놀랍게도!
다윗의 아들 솔로몬!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 제단 앞에서!
다윗의 자손이요!
이스라엘의 영원하신 왕이시오!
그 백성과 함께 하실 임마누엘이시며
백성의 중보자가 되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전무후무한 지혜자’인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선명하게 본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모형인 ‘성전’을 ‘실체저럼’ 바라보면서 감격했을 뿐이죠.
그럼에도 그 감격은 엄청났을겁니다.
“하나님의 집이 우리와 함께 있다니!”
하물며!
우리는 복음의 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감사하며, 감격하며, 기쁨과 열정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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