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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 앞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니라."

 

이 표현은 모세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같은

'계시적인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신성에 압도되어서

땅에 엎드러지죠.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곧바로 일어나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압도적인 기적을 보고도

인간의 죄성은 변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도,

신약의 유대인도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결국 믿지 않았죠.

 

그럼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킬까요?

누가복음16장31절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결국 믿음은 기적이 아니라 '들음'에서 납니다.

로마서10장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오늘 당신의 마음을 바꾸는 건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ajsR-j0u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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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영광교회 청년부 담당목사로서

번동 주영광교회 주변에 있는

업체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역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저도 좋은 곳은 기억하기 좋을듯하여

포스팅 남깁니다.

 

최근 저는 '주부습진'에 걸려서

상당한 시간동안 고생을 했더랬습니다.

 

손바닥 전체가 가려웠고

하루종일 긁다보니

손 전체가 처참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스마트폰에 지문인식도 

안될 정도가 되었지요.

참고사진

처음에는 집에 있던

습진 연고를 무작정 발랐습니다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습진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지요.

 

결국 견딜 수 없었던 저는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3개월 넘게 고생하다가 찾아간 것 같습니다.

 

주변검색으로 해서 

가까운 곳으로 찾아간 병원이

'체인지미 피부과 의원'이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번동주영광교회에서는

걸어서 4분거리이니

매우 가까운 편이었지요.

 

강북구청 사거리 

강북 코스타 타워 2층에 있습니다.

건물 주차장을 지나

로비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가서

복도 끝부분에

피부과 의원이 있습니다. 

손님이 많은경우에는 

오래 기다려야 하니 

어느정도 여유를 가지고

방문할 것을 추천합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손을 보시고는 

'주부습진이 맞다' 하시고는

쿨하게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해주셨습니다.

지금 상태는 심하니 

초반에 약을 쎄게 해서 먹고

나아지면 약을 줄이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약을 먹었는데

놀랍게도 

1주일이 지나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약을 먹었는데 

확실히 나아지더군요. 

무엇보다 가려움이 없어진 것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아직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심했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좋아진 거죠.

^^

 

제가 일하는 번동 주영광교회 가까이에

이렇게 실력있는 피부과가 있다는게

너무 든든했습니다. 

 

혹시 번동에 사시면서

피부 고민이 있으시면

이곳 좋은 것 같습니다.

(광고 아니고요^^)

 

광고는 그 다음입니다.

번동 주영광교회 청년부 모임은

매주 일요일 오후 1시에 

4층 청년부실에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영적으로 회복되고자 하시는 

청년들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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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시편 123:1)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너무나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그저 습관처럼, 혹은 의무감 정도로

 하늘을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편 123편 2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올바른 태도를 보여줍니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죽음과 삶 사이의 간절함

이 구절의 핵심은 바로 '간절함'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종들은

주인의 손짓 하나에 자신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주인이 손을 들어

"살려주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그야말로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주인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러한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마주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치 목숨을 구걸하듯,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구해야 할 '은혜'

시인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호의에 달려있습니다.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종'의 눈은

바로 이 은혜를 구하는 눈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만을 바라는

겸손하고 간절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며 살아가는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을 이토록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절박합니까?

매일의 삶 속에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함을 고백하며,

오직 주님의 손길만을 바라보는 삶.

그것이 바로 시편 123편이 우리에게 전하는 울림입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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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8:1-13
'일곱나팔 재앙'
수십년 전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여러 재앙을 '지구 종말의 날'에 대입하는 해석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지니 '땅의 삼분의 일이 타고, 수목의 삼분의 일이 타고,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된다'는 구절을 '미래에 있을 핵전쟁'으로 적용하곤 했죠. 
그러나... 이 말씀을 잘 보시면... 오히려 구약의 '출애굽 10재앙'의 이미지가 강하게 반영된 걸 알 수 있습니다. 
일곱 나팔 재앙은
초대교회 당시 '교회를 박해하던 유대민족'에 대한 심판선언이고, 이를 통해 '옛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셨듯'이 '지금 초대교회를 유대민족에게서 구원하신다'는 선언인 겁니다. 

 

8절에 보면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다'고 말합니다. 

이건 마가복음11장 23절의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산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이 이방인에 의해 멸망 받는' '상징'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에 의해 큰 박해를 받고 있었고, 

'믿음 위에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추가하는' 

유대교가 복음의 최대 방해세력이었습니다. 

유대민족은 이제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괴롭히는 이스마엘을 쫓아냈듯이

하나님은 이제 교회를 박해하는 유대인을 쫓아내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크고 강해보여도, 하나님은 그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해내십니다. 요한계시록의 가장 큰 주제는 '교회는 이긴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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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5:1-14
8절 "...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성도의 기도가 예수님 앞에 '소중하게' 상달되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올려드리는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다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찬송으로 바꾸십니다.
12절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오늘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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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매일 성경 큐티본문입니다.
요한계시록4:1-11
1절 "이 일 후에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초대교회는 '로마'의 대대적인 박해를 받았습니다. 국가 단위의 박해에 절망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하늘의 열린문'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2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하늘에 보좌가 있습니다. 로마 황제의 왕좌는 절대적이지만 '땅'에 속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왕은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우리의 소속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하늘입니다.

[골로새서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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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29:1-19

 

버킷리스트라는 표현 많이 쓰시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목록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의 유래가 쪼금 섬뜩합니다.

 

중세 시대에 사형 방법 중에 교수형이라고 있어요.

목에다가 줄을 매는 형틀이죠?

목에 줄을 달고, 발 밑에 발판을 두는데, 그 발판을 버킷이라고 했습니다.

‘kick the bucket’이라고 버킷을 발로 차는 것으로 사형이 시작된 거죠.

 

그러니까...

버킷을 발로 차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 하고싶은 말...

이런 걸 후대에서 버킷 리스트라고 한 겁니다.

 

가벼운 표현이 아니구나싶으면서도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간절한 소원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말씀의 다윗에게도! 소위 버킷 리스트가 있었어요.

정말 죽기 전까지도 꿈꿨던 한가지 일!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도 봤잖아요?

다윗이 자기가 너무 성전을 짓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니까!

그러면 성전에 들어가는 재료라도 내가 구하겠다 해서!

만 얼만큼 구했다고 했지요?

10만달란트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비용으로 추산하면 632조원입니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준비해놓고도!

다윗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는! ‘이상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백성의 마음입니다.

 

백성들이요!

그저 나랏돈으로 웅장한 건물 하나 서는 걸 보면서!

아 멋지구나...’ 감상만 한다면!

그건 참된 성전일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이!!!!

이 성전을 향해야만!

그게 진짜 성전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에요!

다윗은 먼저 모범을 보입니다.

 

나랏돈뿐만 아니라!

다윗의 사유재산까지도 성전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3절 보세요!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라면서

4절에!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고 했습니다.

따로 계산은 안할께요.

다만, 1달란트가 63억이었다고 했으니까요.

삼천 달란트면 대략 얼마인지 나올 겁니다.

 

그만큼 내놓고 백성들에게 이야기하죠?

5절 후반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 건데...

 

이 요청을!

백성들이 압박감으로 느꼈을까요?

왕이라는 사람이 자기만 하면 되지 왜 백성까지 끌어들이고 그래?’

아니었지요!

오히려 백성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성전을 위한 헌물을 기꺼이 드리기 시작합니다.

 

6절을 보시면!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 (어떻게?) 즐거이 드리되!”

9절도 보세요.

백성들은 자원하여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그렇게 자원해서모인 재물이 금만 5000달란트입니다.

백성들이 정말 힘에 지나도록 엄청난 헌신을 한겁니다.

 

17절 후반절에 보면!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라고 하거든요!

백성의 헌신을 보고 다윗이 기뻐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마태복음6: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했거든요!

이토록 많은 재물을 드렸다는 건!

백성의 마음도 성전을 위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인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다윗은 왜!

이토록이나 성전을 짓고 싶어했을까요?’

아닌말로! 노년인 다윗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생전에 완공된 성전을 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성전 짓는데 진심이었습니다.

 

왜 성전에 이토록이나 진심이었을까요?

 

오늘 다윗의 마지막 기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쌓인 재물을 보고서!

다윗이 감동하여 기도를 시작하죠!

10절입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뭐라고 부르는지

10절 계속 보세요!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우리조상 이스라엘이 누굽니까?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죠!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형 에서가 있었음에도!

태중에서부터 (어떤 선행이나 노력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 택함 받은 언약의 자손입니다.

 

그걸 좀 더 확장시켜서 말하면!

18절처럼 됩니다.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 조상들이요?

자기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고요!

하나님이 은혜로 택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신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15절 보세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나그네고 거류민이고 그림자 같은, 희망 없는 존재인데!

그런 가치 없는 존재를 하나님이 택해주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 되어주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는 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겠어요?

하나님이라는 거죠.

 

다윗이 성전을 그토록이나 짓고 싶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석변이하는 사람, 이 통치하는 왕궁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전!

이스라엘의 중심 되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래서입니다.

10~19절까지 이후 다윗의 기도를 잘 살펴보시면!

주님이라는 표현이

무려 22번이나 나옵니다.

 

몇가지만 살펴볼까요?

11절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것이로소이다!”

이렇게 시작해서!

18절 보시면!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이것을 주의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돌아오게 하시오며

 

여러분이 이 기도에서 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만 치면서 읽어도

벌써 느낌이 다르실거에요.^^

 

12절 보세요.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부귀를 누가 주시나요? 누가 돈 벌게 하시나요? 누가 잘 살게 하시나요?

하나님이 주십니다.

12절 후반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사람이 크게 되는 것, 강하게 되는 것 역시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왕궁, 정치, 이 아니라

성전, 예배, 주인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번영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예수님을 믿는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하나님이 건물 성전에 거하셨다면!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 마음 성전에 거하십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이 건물 성전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복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모시며,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다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이 열심이

저와 여러분 마음 속에도 불같이 일어나기를 소망하고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고, 일으켜주시는

복된 인생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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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9:12

사업을 준비하며 수많은 생각과 고민들이 오가는 요즘,

역대상 29장 12절 말씀,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가 제 마음속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며 사업을 시작하려는 저의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업의 성공이

나의 노력, 나의 능력, 나의 아이디어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 모든 것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는다는 고백은,

제가 쌓아 올릴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첫째, 욕심이 아닌 올바른 동기로 사업을 시작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사업을 통해 부를 얻고 명예를 얻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부와 귀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저는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싶은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단순히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업을 꿈꾸게 됩니다.

 

둘째, 불확실한 미래에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사업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합니다.

때로는 성공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좌절과 실망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는다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모든 결과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고 평안을 얻습니다.

저의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세로 임할 수 있게 됩니다.

설령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쳐도,

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말씀을 제 사업의 가장 든든한 반석으로 삼으려 합니다.

단순히 사업의 성공을 넘어,

이 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매 순간, 저의 힘이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나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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