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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4:1-17

 

행복한 주일 보내고 계십니까?

자 여러분

오후시간에 잠이 올 수도 있으니 한가지 상상을 해보시죠.

만일에!

오늘 주일 잘 보내고 나서...

오늘 밤에!

꿈에서든지, 갑자기 머릿속에 든 생각으로든지,

아니면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강렬하게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어떠시겠습니까?

 

누구누구 집사야, 내가 너를 선교사로 쓰려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접고 선교 준비를 해라.”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꼭 사역 방향으로만이 아니고!

사업이나, 직장이나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일을 위해 부르신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실 것 같습니까?

 

크게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애요.

어떤 사람은 부담스럽다며 못하겠다하시는 분도 있을 거고,

또 다른 사람은 나를 보내소서라고 적극 나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어떤 목사님이야기인데요!

그분은 중고등학생 때 전교 일등을 안놓치는 수재였습니다.

그분 어머니께서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사시는 분이었고!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얘가 우리 집안을 일으키겠구나!’

그런데

그 아들이 어느날 교회 수련회를 다녀와서 은혜를 받았어요.

마음에 신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 아들도 고민이 많았죠.

아들 자신도 어머니가 자기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고,

나중에 어머니 호강시켜드릴 꿈으로 살아왔어요.

그런데 목회니 선교라니까...

웬지 그런 길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던 겁니다.

 

어떻게든 그런 마음을 떨치려고 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강하게 마음이 이끌린 겁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머니는 극렬하게 반대를 하셨어요.

교회까지 찾아와서 우리 아들 좀 말려달라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들으면서까지 신학을 하셨고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 어머니께서 지금도 얼마나 아쉬워하시는지 모릅니다.

 

반면 어떤 회사 대표님은요!

자기는 처음부터 꿈이 목사였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학에 길이 안열리더랍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저 상황이 안맞고 타이밍이 안맞고... 그랬던 겁니다.

결국 사역자의 길은 포기하고!

일반 사업을 해서 교회에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게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기 싫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는 거죠.

 

그 두 가지를 다 경험한 사람이 모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40년동안 양치기를 하던 80세나 된 모세를 부르세요.

모세야! 애굽에서 비참하게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

 

한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적인 사명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찍어서 너를 쓰시겠다하신 겁니다.

이 일이 성공한다면!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위인이 되는 겁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요.

성경과 교회사는 모세를 빼고는 설명이 안되거든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요!

당대 최강대국인 애굽으로 부터 한 민족을건져내는 일입니다.

누가 감히 이런 일을 하겠느냐고요.

하나님이 이만한 성과를 이루게 하시겠다는 거잖아요!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고

구체적인 비전과 능력까지 주신다고 하신다면!

여러분 거절하시겠습니까!

주여! 제가 가겠습니다!”

손을 들고 헌신하지 않겠어요?

 

이제 우리나라도 내일부터 대통령 선거 기간에 돌입합니다.

선거 시즌만 되면 사람들이 잘 걸리는 병이 있답니다.

무슨 병일까요?

난가? 입니다.^^

조금만 자격이 된다 싶으면 혹시 나도 대통령이 될 상인가...’ 하면서...

너도나도 후보로 나오려 하죠.

대통령 된다고 딱히 좋은 것도 아니거든요.

임기 끝다면 대부분 재판 받고 감옥가고 그닥 좋을 일이 없는데도

그저 그거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지도자가 된다는게!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게 마련일텐데오!

 

정작 모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영 시원치가 않습니다.

시원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보려고 온갖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무슨 삼고초려도 아니고요!

무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몇 번 권유하시는 지 보세요.

 

오늘 본문 앞쪽이고요.

출애굽기3:9,10절입니다.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이 친히!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게 할 거라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인데 이만큼 확실한 보장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뭐라고 하나요?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말을 생각해보세요!

나는 자격이 없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하나님이 하시면 되겠지만!

그 일에

나는해당되지 않는다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이걸 겸손이라고 부르는데...

여러분 이건 겸손일 수가 없어요.

모세는

자신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양보하는 차원으로 거절하는 게 아닙니다.

 

모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죠!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말로 설득하시면서

또 다시 부르시거든요!

모세가 이번에는 다른 핑계를 댑니다.

오늘 읽은 말씀 1절 보세요!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셨다 하리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겁니다’ ‘내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인가요?

나같은 사람의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을 겁니다

!

나는 보잘 것 없고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나를 누가 인정이나 해주겠어요?

내가 나를 봐도 못났는데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나를 얕잡아볼게 분명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못이겨서라도 받아들일 것 같은데!

모세는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자기는 못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2절이하요!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그걸 땅에 던져라!”

지팡이를 던졌더니 그게 뱀으로 변했어요.

모세 관련된 영화나 그림을 보시면 지팡이 길이가 사람 키보다 더 크거든요.

그게 눈앞에서 뱀으로 변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큰 뱀이겠어요?

모세가 너무 놀라서 피하니까!

하나님이 즉시 뱀의 꼬리를 잡으라 하셨고!

잡으니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기적으로!

6,7절 보시면!

모세더러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보라고 하시죠!

손을 넣었다가 뺐더니 손에 나병이 들어서하얗게 변했습니다.

다시 손을 넣었다가 빼라셔서 그리했더니 손이 나았어요.

 

모세에게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이런 능력들로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 애굽을 저주하실 겁니다.

 

아니, 이정도 능력을 봤으면!

그래도 좀 해볼만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서도!

모세는 여전합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않으시니까!

결국 모세는 자기가 왜 부르심을 거부하는지이유를 실토하죠!

 

10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자니이다!”

 

, 이게 원인이었네요.

자기는 말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능수능란하게 말할 줄 알아야

백성도 설득하고, 왕앞에서도 논리적으로 요구사항을 말할텐데!

자기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셨어도.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신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나는 말을 못하는데...

말도 잘 못하는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하나님의 일을 망치면 어쩌나...‘ 두렵다는 겁니다.

 

모세의 마음을 저도 어느정도는 이해합니다.

 

제가 사람들하고 잘 안싸워요.

저랑 오랫동안 아는 사람들도

제가 누군가하고 얼굴붉히거나 하는 걸 본적이 없다고들 했습니다.

이게 자랑이 아닌게요.

제가 목사라서’ ‘성품이 좋아서그러는게 아닙니다.

사실은 말을 잘 못해서분쟁이 있는 자리는 피해버립니다.큰마음 먹고 어떤 사람과 논쟁을 하면!

결국 어버버거리다가, 제가 먼저 죄송합니다하고 물러섭니다.

이렇게 될 걸 너무 잘 알거든요.

싸워서 이기지 못할 싸움을 뭐하러 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요!

말싸움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을 논리정연하게 따박따박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살아오면서 저랑 가까웠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보면요.

다들 말 잘하는 사람들이에요.

4,5년 붙어다녔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이 친구는 정말 대단했던게...

대학교 기숙사가 보통 2층 침대잖아요?

기숙사에서는 2층을 잘 안쓰려 하거든요.

저희가 군대가기 전 대학교 2학년 때,

기숙사 방에 군대 다녀와서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1학년이 방에 들어왔어요.

이 때 자리선정에 대해 이 친구가 뭐라고 했느냐면!

나이는 당신이 더 많지만, 우리가 2학년 선배니까 우리가 1층 쓰겠다고 했어요.

한마디도 안 밀리고 이야기해서는 기어이 1층을 차지했습니다.

시간이 지났어요!

우리가 군대를 갔다 와서 나이 많은 후배 입장이 되었고,

똑같은 2층 침대 주도권 다툼을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반대로 말하더라구요.

당연히 나이 많은 사람이 1층 침대써야지,

어디서 어린 친구가 학년 높다고 1층 쓰려 하냐라고요.

그 때도 현란한 말솜씨로 상대편을 완전히 누르고

침대 1층을 차지했습니다.

 

수년간 이 친구하고 같이 다니면서 콩고물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참 친해요.

 

... 말을 잘한다는게 얼마나 큰 능력인지 몰라요.

그게 없는 저로서는!

누구랑 논쟁한다는 게

정말 부담이 큽니다.

 

에이, 목사님은 강단에서 설교도 하고 그러시면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렇죠. 설교는 누구랑 싸우는게 아니잖아요.

그야말로 강단에서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입장에 서는 거고!

그저 성경본문이랑 열심히 씨름해서 원고만 잘 작성하면,

그 다음엔 원고대로 설교만 하면 되니까요.

 

, 여러분!

모세가 그랬던 겁니다.

나는 말을 못해서 부르심에 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셔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세요!

11,1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걱정 마라!

내가 사람의 입을 만들지 않았느냐!

말 잘하는 능력?

내가 주면 되는 거 아니냐!

내가 말 잘하게 해줄께!

뭐 그런걸 가지고 그렇게 걱정하냐!

 

그런 말씀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13절이요!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 구절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죠?

! 주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라고 되어 있어요.

성경에 감탄사 가 들어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단어가 언제 쓰이냐면요.

열왕기상 3:26절에 있는 솔로몬의 우화인데....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자기 자식이라고 다툴 때입니다.

누가 이 아기의 진짜 엄마인지 결론이 안나니까!

솔로몬이 아이를 반으로 갈라서 각 여인에게 나눠주라고 하거든요.

그 때에 아이의 친엄마가 다급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여기서 청하건대입니다.

“‘!!!!! 내 주여!’ 아이를 죽이면 안됩니다.

차라리 아이를 상대편 여자에게 주십시오!”

 

모세가

내 아들 죽이면 안됩니다하는 그런 아기 엄마의 강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이정도면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없는지 보이시죠?

 

결국 하나님이 내주신 처방이 뭐에요?

14~16절이요.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그래!

니가 말을 못해서 못하겠다면!

니 형! 아론이 있다.

아론이 말을 잘 하니까!

니가 내 말을 아론에게 전하면!

아론이 백성에게 또 왕에게 대신 말 하도록 시키겠다.”

그정도면 되겠니?

 

그제서야!

모세가 억지로 순종을 한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안하겠다고 버티는 모세도 그렇고요.

그런 모세를 쓰시겠다고 부르시는 하나님도 참 답답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에는 노하셨다’ ‘분노하셨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화가 나실정도로 모세가 답답하게 굴었다는 거죠.

 

 

그럼 여러분!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답답하게 느껴질까요?

 

그건

모세가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서 그런겁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입니다.

출애굽기 7: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시간으로 돌려서 그로부터 40년전!

40세의 젊은 모세가 어땠는가를 생각해보시죠.

사도행전 7:22절입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의 과거 잘 아시죠?

모세를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

바로왕의 딸이 모세를 건졌고!

이후 왕가에 입양되어서 왕자로서 자랐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통치자의 언행을 잘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했죠?

그 때까지는 말 잘하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훌륭했던 사람이

40세 때 어떤 생각을 했는줄 아세요?

출애굽기7: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자기가 가진 왕가의 권세로!

이스라엘을 건질 마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젊고 능력있고 최고 권세까지 가진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할 마음까지 있으면!

이보더 더 적합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40세의 젊은 모세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세의 인생을 밑바닥까지 떨어트리셨습니다.

광야로 몰아내시고!

무려 40년동안!

양을 치게 하셨던 거에요.’

여러분 40년이에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40년동안이나 고립되어 있으면요!

있던 능력도 다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광야에서 양치던 사람이

누구랑 대화할 일이 있었겠어요?

그쯤되면!

사람과 대화보다는

양들하고 더 소통이 잘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는 말이 맞는 거에요.

하나님 저는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자 여러분!

모세의 가장 자신있었던 것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나이도 80이나 되어서!

더 이상 자신에게 기대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세의 능력있는 젊은이가 아니라!

80세의 말도 잘 못하고 자존감도 낮은 노인을 부르셨던 겁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오늘 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모세와의 대화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가 구원하겠다. 내가 인도하겠다. 내가 보내겠다하셨습니다.

애초에!

이스라엘의 구원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일이었습니다.

 

어쩌면요!

모세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로 부름 받은 겁니다.

 

모세가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면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면 아멜렉 족속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지팡이의 능력이 아니지요.

지팡이는

하나님이 어떤 능력을 행하시는지 가리키는 표식이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인생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불평 불만 원망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 불평 불만 원망 때문에!

하나님께서 몇 번이고 백성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만일

40세의 혈기왕성한 왕자 모세였다면!

이런 백성을 용납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모세가 한술 더떠서 그들과 싸웠을 거에요.

 

그런데!

80세의 모세는 달랐습니다.

40년간 양떼를 치면서!

왕자가 아닌 목자가 되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행동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성을 심판하려 하실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80세에서 120세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멸망받아 마땅한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해 낼 수 있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잃어버렸던 40년의 세월을 보상하듯이!

하나님은 모세의 세 번째 40년을

역사상 최고 지도자로, 하나님의 지팡이로 사용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헛되게 생각할

40년 목자 생활이!

모세에게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던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분이시고,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 하나님 앞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요! 우리 인생을 결코 헛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주안에서 화목하고 행복하고 잘되기만을 바라지만!

 

어쩌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자녀와 남편 아내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치 않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픈 손가락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지 않을까!

왜 하나님은 이런 시험을 주실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힘든길을 가게 하실까?

 

고민이 깊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만 나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로마서 11:29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모세가 양을 치던 40년의 시간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을 다시한 번 붙쫓는 여러분과 가정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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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6:1-14

 

오늘 설교는 내용은 쉬운데, 설교하기에 난이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왜냐하면... 에스더 전체 스토리를 알아야 뭐라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그냥 오늘은 에스더 이야기를 쭉~ 해드릴께요.

에스더 이야기를 아는 것 만으로도

우리 신앙에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먼저

시대는 이스라엘이(정확히는 남 유다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망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를 1차로 돌려보낸 이후입니다.

 

장소는 페르시아고요!

주인공은 이스라엘 여인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어릴 때 부모님이 다돌아가신 고아였고요.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에스더를 키웠습니다.

근데.. 에스더는요 엄청난 미인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봤을 때도 에스더가 무척 예뻤던 겁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황제가 왕후를 뽑는콘테스트를 했을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 등을 떠밀었습니다.

너라면 충분히 왕후가 될 수 있어!’

그 말대로!

에스더는 당당히 1위를 해서 왕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다만, 콘테스트에 등록할 때, 그 출신을 밝히지는 않았어요.

포로출신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경쟁에 불리할 것 같았거든요.

 

이후 모르드개는 대궐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었어요.

모르드개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데요!

왕의 내시 두 명이 대궐 문앞에서 왕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했는데...

우연히 모르드개가 그 이야기를 들은거죠!

그 정보를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줬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전달했어요.

덕분에 왕은 두 내시를 잡고 위험을 피할 수 있었어요.

이정도 공을 세웠으면!

고급 정보를 준 모르드개에게 큰 상을 줘야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 그런데...

당시에는 왕이 아무 보상도 안해주고,

그저 궁중일기에 이 사건만 기록으로 남기고 넘어가버린 겁니다.

모르드개 입장에서는 참 섭섭했을겁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내가 왕을 살렸다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을 노릇이죠.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닥쳐요.

이스라엘과 옛날부터 적대적이었던 아각족속(아말렉)하만이라는 사람이

페르시아 고관대작이었거든요.

이 사람이 지나가면 백성들이 절을 해야 되었는데...

모르드개는 하만이 적대 민족 사람이다 보니까!

절하지 않고 뻣뻣하게 서 있었던 겁니다.

하만이 기분이 엄청 상했어요.

그래서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해서

모르드개가 속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말살시키는 조서를 발표하게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죽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부 난리가 났죠.

이런 상황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난감하게도!

에스더도 왕의 앞에 잘 못나가고 있었던 기간이었어요.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후라도 함부로 왕 앞에 나가면 안되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자기 상황도 어렵다고 하소연하죠.

 

이 때!

교회 안다니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 유명한 대화가 나와요!

에스더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니가 왕후가 된게!

단지 니 미모 때문만 이었겠냐?

니가 지금 그 자리에 있는건 뭔가 목적이 있는게 아니겠느냐!

라고 하자!

에스더도 마음에 불이 붙었죠!

그래서 사촌오빠에게 답을 보냅니다.

에스더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이 때부터 반전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3일을 금식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갔죠!

놀랍게도

왕의 눈에 ‘3일 금식하고나온 에스더가 눈부시게 아름다워보였던 겁니다.

아니 ‘3일이나 굶고 푸석푸석한 사람이 뭐가 그리 이쁘겠어요?

이쁘게 보였다는 것 부터가 벌써 기적이에요.

에스더에게 반한 왕이 자기 황금 지팡이를 에스더에게 내밀고 말합니다.

사랑스러운 아내여 무슨 일로 내게 왔소?

말만하시오! 내가 나라의 반이라도 당신에게 주겠소!”

그랬을 때, 에스더의 말이 뭔가요?

바로 우리 민족 살려주세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원수 하만 앞에서 3자 대면을해서 하만의 악함을 드러내야 했거든요.

그래서 말합니다.

 

왕이여! 제가 오늘 왕을 위해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왕이 아끼시는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여해주십시오

그래서 왕은 즉시 하만을 잔치자리에 불렀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잔치 후에 왕이 다시 물어보죠!

에스더여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오?’

에스더의 답입니다.

왕이여 내일도 잔치를 열테니 내일도 다시 한번 하만과 함께 와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하만이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왕과 왕후가 나를 이렇게 지지해주는 구나!’

이제 이 나라에는 나를 대적할 자가 없다! 저 얄미운 모르드개만 빼고!’

그래 오늘 밤에 미리 사형틀을 만들어놓고!

왕과 여왕에게 모르드개를 죽여달라고 청해야겠다생각을 한 겁니다.

그렇게 악한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으로 들어온 겁니다.

61절이요!

그 날 밤에!”

자 그날 밤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아니~ 그날 밤에 잠이 안왔데요!

, 잠이 안올 수 있죠.

그런데!

잠이 안와서 갑자기 왕궁의 역대 기록물을 잃겠다한 건 좀 특이하죠?

그것도 그럴수 있다 치고요.

무엇보다...

수천명이 생활하는 왕궁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었을 것이며

하루에만도 얼마나 많은 기록이 새로 생기겠어요?

그런데!

그 많은 기록물 중에서도 콕 짚어서 읽은 내용이 뭐였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 모르드개

내시들의 왕 암살 기도를 막았던 그 내용을 딱 펴서 읽게 된 거에요.

? 나를 살려준 사람이 있었다고? 그 때 그 사람에게 상을 줬느냐?”

아니요,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가 이런 결례를 행하다니!’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했는데!

마침 궁궐 마당에 모르드개를 죽일사형틀을 세우고 있던 하만이 있었던 거죠!

 

왕이 하만에게 묻습니다.

6절부터 보세요.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그게 누구라고는 하지 않고!

그저 왕이 존귀하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만 물었습니다.

그 때 하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답하는가!

6절 중반절부터 쭉 볼께요!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하게 하소서 하니라

자기가 받고 싶은 대우를 말하죠.

거의 왕 대접 받고 싶다는 말을 한 겁니다.

 

그러자! 왕이 어떻게 말합니까?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던 하만

오히려 모르드개를 왕의 말에 태워서

모르드개 만세를 외치게 되었던 겁니다.

 

모르드개 입장에서는 이런 치욕도 없는거에요.

그런데...

이건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방금 당한 치욕스러운 일을 가족에게 전하고!

가족들이 이렇게 말하거든요!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당신이 오히려 그 앞에 엎드러질 거에요~’

당신 어떻게 할거에요?’라고 말하자 마자!

이 때부터 심판의 시간표는 빠르게 움직입니다.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마음에 준비할 틈도 없이!

하만은 멸망당할 자리로 끌려갑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는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될 것 같애요.^^

 

중요한 건!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모의했던 시간에

바사왕은 잠이 오지 않아 왕궁 일기를 읽었고

그 많은 문서들 중에 모르드개가 세운 공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에스더가 하만을 부른 두 번째 잔치날이었고요.

이 날에 하만의 악행이 드러나고,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형틀하만이 달리게 됩니다.

 

이 모든 사건이!

그냥 보면 우연에 우연이 겹친건데요.

에스더는 말하는 겁니다.

이건 하나님의 필연이다.’

하나님에게는 우연이 없다는 말인 겁니다.

 

그거 아세요?

에스더는 성경의 한 파트인데도 불구하고!

한번도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안나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책이 에스더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에요!

교회 밖에 나가면 어디서든 하나님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수 믿는 친구들도 점점 없어지고 있지요.

그러나,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은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요 우연이란 없습니다.

에베소서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필연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시간표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항상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우리가 있다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한주간 가능하면 에스더 재미있으니까 꼭 한번 읽으시면 좋겠고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침없이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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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161-176

 

힙합 노래를 듣다보면요.

통장 잔고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FLEX라고 하나요?

나 돈 많다는 걸 과시하는 가사들에 나오죠.

 

내 은행 계좌는 히말라야 산맥같아

내 통장 잔고는 매일 매일 늘어나. 신경 안써 가격은, 보이는대로 사

 

뮤직 비디오에 보면 돈 뿌리는 기계로 돈을 쫙쫙 뿌려대죠.

 

쇼미더 머니라는 프로에서 아이덴티티로 보여주는 게

금목걸이, 금반지이런 거잖아요?

힙합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이고!

힙합을 통해서 많은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의미도 있죠.

 

정말 그렇게 많이 버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런 영상들을 보고나서!

제 통장 잔고를 생각해보면 참 다른세상이다 싶습니다.

매달 월급이 들어왔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 사라져버리거든요.

심지어는 그것도 모자라서 통장 잔고 확인해달라는 문자가 옵니다.

뭘 그렇게 많이썼나싶어서 보면 그냥 다섯식구 한달 먹고산게 다에요.

 

그래서 상상을 하죠.

통장 잔고가 매일매일 늘어나면어떤 기분일까?

100만원이 남고, 1000만원이 남고, 1억이 남고, 10억이 계좌에 찍혀 있다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여러분도 상상해보세요.

부자가 되도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건 부자가 되어본 사람들의 이야기일거고요.

부자가 되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글세... 그래도 좋을 것 같은데...’ 싶습니다.

 

사실 그게 인간의 본성이에요.

그리고 그 본성에 빗대어서!

말씀도 우리를 가르칩니다.

 

오늘 162절 보세요!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 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

고대 사회에서는 전쟁이 많았으니까요!

가난했던 어떤 사람이 전쟁에 승리하고 많은 탈취물을 얻었습니다.

금화와 먹거리를 봇짐에 가득 매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싫을 수 있겠어요?

 

당연히 좋죠!

가족들 맛있는 것 먹이겠구나!

이번에는 좋은 집으로 이사가야겠다!

땅을 사서 농사라도 지어야겠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 얼마나 즐겁겠어요?

 

그런 것 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성경 말씀이 내 재산이라는 겁니다.

말씀이 내 마음속에 쌓여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더 알아가는 것이!

마치 통장 잔고가 쌓여가는 것처럼 즐겁다는 거에요.

 

그러면!

그게 왜 기쁨이 될까!

말씀을 알면,

그 말씀 때문에 내가 부자가 되나?

내가 세상에서 성공하게 되나?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오늘 말씀의 시인은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애요.

161절 보세요!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시인은 핍박 받고 있어요.

163절이요!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면

부자도 되고 고관의 자리에도 오르겠지만요.

자기는 거짓말 하면서 잘되기 보다는!

오히려 주의 율법을 사랑하겠다고 해요!

 

거짓말과 주의 율법은 같이 못갑니다.

왜냐!

거짓말에 대해서 율법이 뭐라고 명령하나요?

10계명 중에 제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율법이 거짓말하지 말라 하는데!

율법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냐고요!

 

! 이 사람은

지금 부자도 아니고, 오히려 핍박받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그런데도 즐겁다는 겁니다.

 

얼마나 즐거우냐!

164절 보세요!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하루를 살아가는데...

마음속에 쌓여 있는 그 말씀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찬양이 나온다는 거죠!

하루에 일곱 번이라고 했어요.

그만큼 일상 생활에서 성경 말씀을 곱씹고 생각하고 사는 거에요!

 

이런 기쁨은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에요!

심지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어도!

분노나 눈물이 아니라 찬양이 나와요!

사도행전16:24,25절입니다.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실제로 바울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했어요!

 

시인은 말합니다.

165절이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없다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니!

그런 장애물도 하나님이 치워주신다는 거죠!

 

실제로!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에!

이 감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세요!

사도행전16:26절이에요.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감옥문이 열리고,

손발에 묶여있던 차꼬가 풀렸습니다.

 

이 일에 놀란 감옥 간수가!

바울에게 복음을 들었고!

그 집안 전체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시인은요!

이런 말씀의 능력을 너무도 많이 체험한 사람이에요!

 

말씀에 방법이 다 있는데!

말씀을 떠나서 어디로 가겠어요?

오히려 말씀에 더 집착하는거죠!

 

166,167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요!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말씀의 잔고가 쌓인 사람들은!

그 말씀의 능력을 맛보고, 말씀의 즐거움을 알고

마음속에 더 많은 말씀들을 쌓아갑니다.

 

말씀의 잔고가 없는 사람은요.

말씀의 능력이니 즐거움을 경험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나마 없는 말씀들도 점차 잊어버리고 맙니다.

 

마치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같죠!

말씀이 각 사람의 마음에 뿌려졌는데!

길바닥같은 마음에 뿌려진 말씀은 어떻게 되나요?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3:19절입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반면에!

좋은 땅과 같은 마음에 뿌려진 말씀은요!

마태복음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여러분

말씀의 부자가 되십시오!

여러분 마음의 잔고에 말씀을 쌓아가십시오.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을 돕는건 한계가 있어요.

부모님이 버는 것 이상 여러분을 도울 수 없고요.

부모님이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여러분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평생 여러분의 절대적 도움입니다.

173절을 볼까요?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도 말씀을 읽는 습관을 들이세요.

많이씩 읽으면 더 좋겠지요.

그만큼

여러분의 자산이 더 두터워지는 겁니다.

 

그렇게 세상의 어떤 것보다!

말씀의 부자가 되어서!

시인이 누렸던 진짜 행복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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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49-64

 

no pain, no gain이라는 서양의 속담이 있습니다.

고생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지요.

인생에서 뭔가를 얻고자 하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볼까요?

여러분이 만일 어떤 모양으로든 고생을 하고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뭔가 얻을 것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여러분이 어른이 되는 과정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냥 세월이 가면 어른이 되는게 아니더라구요.

누구나 성장통이라는 걸 겪습니다.

 

-부모님과 관계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친구관계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자괴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공부에, 진학에, 건강에...

이런 저런 일들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좌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견디면서!

어른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에!

어른들은 웬만한 어려움을 버티고 사는 거죠.

 

 

물론! 고난을 견딘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쉬웠다면 그걸 고난이나 고통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거에요!

 

오늘 말씀은!

그런 고난의 시간을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거죠!

 

바로 본문을 볼까요?

49절입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말씀소망입니다.

소망과 비슷한 단어로 희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소망과 희망의 차이점이 있다면!

둘다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지만!

희망이뤄질 수도 있고,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는불확실한 기대에요.

... 이렇게 되면 좋겠다라는 정도의 바램인 거죠.

반면 소망은요!

바램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반드시 이뤄주실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믿음에 기대가 소망입니다.

생각해보면!

희망고문이라는 말은 있지만!

소망고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5:3,4절은요!

소망이 있는 사람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한 겁니다.

본문으로 볼까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게 소망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 50절 볼까요?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나를 살리셨고!

그 말씀이 나를 살게도 하실 겁니다.

 

그러니...

인생에 가장 어리석은 일이 있다면 이 말씀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51절이요!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교회믿음이니 말씀이니...

세상 사람들이 조롱할지 몰라도!

나는 이 말씀만을 붙잡겠다는 겁니다.

 

언젠가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자기는 세상 유행을 따르지 않고

변함없는 말씀만 따르겠다고 고백한 겁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사람은요!

항상 말씀으로자기를 다잡습니다.

52절 볼게요.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스스로를 격려했다는 말이죠.

괜찮아! 나는 이겨낼거야.’

이런 상황도 넘어설 거야!’

하나님이 약속하셨어!’

전능하신 그분이 나와 함께 계셔!’

 

신약시대로 넘어와볼까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온 백성의 여론이 바울을 죽이는 방향으로쏠려 있어요.

바울은 죽음을 피할 수 없어보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23:11절이에요.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너에게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죽지 않는다! 담대하라!’

말씀을 듣고나서 바울이 어떻게 했겠어요?

그래, 주님이 죽지 않을 거라 약속했어! 나는 괜찮을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했을 겁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평생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갔습니다.

바울이 죽기 직전에 했던 말이 이거에요!

디모데후서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게 말씀 있는 사람의 큰 특권이에요!

 

말씀을 특권이라 여기는 사람은!

삶이 말씀 중심일 수 밖에 없습니다.

 

54절 보세요!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이 표현이 되게 재미있어요!

보세요.

나그네는 어떤 사람입니까?

집을 떠난 사람또는 집이 없이 다니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나그네 된 !에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집에 있는데 나그네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에요?

집에 있다고 해서 나그네가 아닌 건 아니다!

집에 있어도! 나는 나그네라는 거죠!

우리네 인생이 나그네라는 겁니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고,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내가 누리는! 집이건 무엇이건...

그건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같은결국 내것이 아닌 재물일 뿐입니다.

 

이런 세상살이에서!

우리의 소망이 뭐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요!

그래서입니다.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 ‘하나님의 말씀들 만이나의 노래라는 겁니다.

 

내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건!

얼마나 벌었냐? 얼마나 가졌냐?’ 이런게 아니라...

오직 말씀대로 살아간 흔적들 뿐인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55-57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말씀의 사람들은요!

진심으로 이렇게 살아갔습니다.

말씀을 내 소유로 여기고, 그걸 분깃(상속 재산)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말씀이 재산이다!’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말씀대로 은혜를 베푸소서!’

 

아무나 하는 말이 아니에요!

진정, 말씀으로 살아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 겁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나그네 같은 인생에 감사할 일들이 생겨납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그를 끌어 올려주십니다.

 

이런 간증이 있는 사람은요!

자다가도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 이런 사람들이 함께 모인곳이 어디에요?

교회에요!

교회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말씀 안에서 즐거워하고!

말씀으로 서로 격려하고!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는거죠!

63,64절입니다.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주영광교회 중고등부에 불러주시고!

이렇게 말씀을 나누게 하신 건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이 말씀과 함께!

인생에 가다올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우리 중고등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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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5:2-6:3

 

gpt한테 ‘k-pop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가 뭐냐?’고 물어봤어요.

-gpt가 뭐라도 답했을 것 같애요?

사랑이라고 했어요.

 

사랑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많은지!

이 주제를 구체적으로 쪼개도 각각의 주제들이 다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1등은 애틋한 사랑과 설렘이고

2등은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

3등은 짝사랑과 안타까움

4등은 만남과 재회’...

이런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신기하죠?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추구하고 산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사랑이시거든요!

요한14:8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이신 하나님이!

태초에 남자를 만드셨어요.

세상에 남자만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그래서 그 다음에 하신 일이 뭐에요?

아담의 갈비뼈를 토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함께 살게 하셨어요.

그제서야! 하나님은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묶이는 동인이 뭐겠어요?

사랑인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을 알든 알지 못하든!

사랑을 추구합니다.

노래를 만들어도 사랑이 주제가 됩니다.

 

노래중의 노래가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사랑 노래라고 할 겁니다.

 

그래서입니다.

성경에도 노래중의 노래가 있으니!

바로 아가서입니다.

아가라는 말의 한자 뜻이 뛰어난 노래라는 의미고요.

히브리어 원어로는 쉬르 하쉬림이라고 하는데!

이걸 영어로 번역하면 ‘Song of Songs’입니다.

아가라는 말 자체가 노래중의 노래라는 의미에요.

 

그리고 그 주제는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어떤 목동의 사랑을 노래한 책이에요.

 

다만!

이 책은 어른들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요.

남녀가 서로의 몸에 대해서 신체적으로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게 다 비유면서도 상당히 직접적입니다.

 

그래서에요.

전통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30세 이전에는 아가서를 읽지 못하게 한답니다.

19금도 아니고 무려 29금이나 되는 책입니다.^^

 

 

다만!

이 말씀이 성경에 들어간 것은!

단순히 남녀의 사랑’ ‘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려는 겁니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과 교회부부의 관계로 종종 설명해요.

에베소서5:31,32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부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을 볼께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요.

이게 처음에는 얼마나 설레고 기대가 있는지 모릅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빨리 집에가서 배우자를 만나고 싶고요.

빨리 주말이 와서 데이트도 하고싶어집니다.

상대편이 일이 많아서 늦게 오면!

상대가 올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기다리기 일수에요.

 

다만...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면 그런 감정도 조금식 사그라듭니다.

심할 경우에는 상대편이 늦게 집에 들어와도 그다지 신경안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권태기라는게 찾아오죠.

 

오늘 말씀은

권태기까지는 아닌데요...

약간 상대방에 대해서

살짝 열정이 식은 어느때의 이야기입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술람미 여인도 피곤하여 잠에 들었을 때입니다.

이게 꿈인지, 꿈이 아닌지 싶은데...

 

늦은시간에 남편이 집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2절 보세요!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 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중동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거든요!

그래서 밖에서 밤 늦은시간까지 활동하다보면!

밤 이슬이 머리에 맺힌다고 합니다.

그리 될 정도로까지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지금이야...

번호키를 누르거나 하면 되겠지만!

그 옛 시대에 그런게 어디있겠어요? 안에서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전같으면 아무리 늦어도

남편이 문을 두드리면 뛰어나갔을 아내인데!

지금은 몸이 너무 무거웠어요.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꿈결에 잠결에 못일어나고 있습니다.

 

한참을 정신 못차리다가

나중에서야 일어나서 문을 열러 갔습니다.

그런데...

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남편이 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다 지쳐서 어디론가 간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후회가 밀려옵니다.

6절 후반절이요.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내정신이 아니었구나...라는 후회의 표현)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아무리 찾아도 남편이 보이지 않아요.

 

성읍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다가...

문득 남편을 생각합니다.

9절 보세요.

여자들 가운데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머릿속에 든 질문이었겠지요.

 

우리 남편?’

10절에서 15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피부가 하얗고요.

곱슬거리는 머리는 진한 흑발이고요.

눈동자는 비둘기처럼 맑고요.

뺨도 보드랍고, 붉은 입술은 백합화처럼 매혹적입니다.

몸은 상아에 청옥을 입힌든 단단하고, 다리는 백향목 나무처럼 튼튼하고요,

그의 입은 항상 나에게 달콤한 말을 해 줍니다...

이게 내 사랑하는 남편이에요.”

낮뜨거운 말들을 하는데...

신기한 건요!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지, 애절함이 더 커져 갔던 겁니다.

 

그리고 6장으로 넘어가면요!

2

아내가 드디어 남편을 찾아냈습니다.

남편은 동산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양떼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백합화를 꺾고 있습니다.

문도 열어주지 않았던 아내를 위한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가

3절에서 이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아내는 잠시 남편에게 소흘했고,

그로인해서 오랜 시간 남편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남편을 찾으면서

그의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앞에서...

아가서의 부부 관계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잖아요?

 

요한계시록 320절에 보면요!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런 경고를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교회이니까!

당연히 예수님이 이 교회 안에 계실거라 생각했었는데!

예수님은 교회 문 밖에 서 계십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시고 문을 두드리십니다.

이 문은요!

안에서 열어야만 열리는 문입니다.

예수님께 반응을 해야 주님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교회 건물의 문을 두드리시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각 사람의 마음 문을 주님은 그렇게 두드리십니다.

 

교회인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주님이 내게 어떤 분인지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기도로 주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회복하여, 주님과 떨어지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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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는 솔로몬이 쓴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이 참 신비롭습니다.

아내를 천 명이나 거느렸던 그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했다니 말이죠.

 

후궁 1000명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결국 단 한 사람과의 진실한 사랑을

꿈꾸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본성에

가장 어울리는 사랑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수많은 관계 속에서도

인간은 하나의 진실된 사랑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가는 은밀하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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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5:2-6:3

"내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내 누이, 내 사랑,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하는구나." (아가 5:2)

사랑하는 연인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밤늦도록, 이슬에 젖으면서까지
문을 두드리는 간절함이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여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쉽게 문을 열어주지 못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으랴.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아가 5:3) 안일함과 게으름이 사랑하는 이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결국, 연인은 기다리다 지쳐 떠나고,
그제야 여인은 후회하며 그를 찾아 나섭니다.
문을 열었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난 후였습니다.
"내가 문을 열었으나
나의 사랑하는 이가 이미 갔음이로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고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노라." (아가 5:6)
사랑하는 이를 놓친 여인의 애끓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요?
조금만 더 귀 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이토록 애타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며
문득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열두 살 되던 해,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셨던 사건 말입니다. 하루 동안이나 예수님이 없는 것을 모르고
길을 나섰던 부모님은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성경은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를 찾기까지
사흘이나 걸렸다 합니다(누가복음 2:46).
단 하루의 부주의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렸고,
그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며칠이라는
간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을
순간의 방심이나 게으름으로 놓쳐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관계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아가서의 여인처럼, 예수님의 부모님처럼,
놓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되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영영 되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와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순간의 안일함과 무관심으로
그분의 부르심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랑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놓친 후에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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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4:1-12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에요.

 

성탄절’ ‘추수감사절’ ‘맥추절같은 절기들 중에서도...

기독교의 가장 큰 절기가 부활절입니다.

 

부활은 주님이 죽음을 이기신 사건이고!

주님과 함께 우리가 죽음을 이긴 사건입니다.

 

바로 그 상징으로!

부활절에는, 모든 교회가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지난주에 성찬식의 의미를 알려드렸죠?

예수님의 살과 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결국 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앙고백인 겁니다.

 

다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따로 지키는 것에 대해서

크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가장 강력한 날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어떤 날일까요?

보통은 일요일이라고도 하는 주일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원래 구약시대에 안식일토요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요일안식일로서 목숨처럼 여기고 지켜왔습니다.

 

현대의 종교단체 중에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이단이 있습니다.

물론 토요일을 지켜서이단은 아니고요,

다른 이단성이 있는데 토요일을 그들의 안식일로 지키는 거.

 

그런데

그분들하고 이야기하면!

꼭 안식일을 가지고 공격합니다.

성경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했는데

왜 당신네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느냐?

일요일은 로마가 지키던 태양신의 날인데

그 날을 지키는 건 잘못된 거다!’라고 하거든요.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보면!

네 개의 복음서가 공히

예수 부활의 날을

안식후 첫날그러니까 토요일 다음 날일요일’, ‘주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성경본문으로 볼까요?

마태복음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마가복음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누가복음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네 개의 본문이 안식 후 첫날을 강조하는 건!

이 날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인 겁니다.

그 의미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일요일을 교회 회집의 날로 지키게 됩니다.

사도행전20:7절 볼까요?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여기서 그 주간의 첫날이 언제입니까?

안식일이 창조의 마지막 날이고, 토요일이니까요!

그 주간의 첫날은 일요일이 되는 겁니다.

그 날에 초대교회가 모였습니다?

뭘 하려고요?

떡을 떼려고.

여기서 떡을 뗀다는 말은 성찬식을 한다는 말입니다.

 

성찬식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무엇보다 부활을 기념한다는 의미지요!

 

바로 이런 의미들을 근거로 해서!

초대교회로부터

역사상의 교회들은!

일요일주일로 지키면서!

이 날에 부활을 기념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앞서 말씀 드렸던 것 처럼!

매주 주일이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

그렇다고 부활절 지키는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부활절이라도 있어야

부활에 대해서 좀 더 특별히 생각하는 면도 있습니다.^^

 

 

부활 절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요.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활의 첫 증인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도 그렇고요.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네 개의 복음서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증인이 여성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 누가복음부터 볼까요?

누가복음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마태복음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여성들이)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마가복음 16:1,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이 여성분들이 어쩌다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건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날이

안식일 전날 금요일이었습니다.

그 날 새벽까지!

예수님이 죽게 되실 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에! 예수님의 사형이 선고되고요!

금요일 아침 9시 경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 때로부터 약 6시간이 지나서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해가 지면서부터였습니다.

왜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라라고 하거든요.

오늘날에야 정확한 시간 개념이 있으니

12시가 되면 날이 넘어간다 하지만, 고대사회는 안그랬거든요.

오후 6시쯤이 되면 벌써 다음날이 되는거에요.

 

예수께서 오후 3시에 돌아가시고 나서!

3시간 정도 후에 해가 지면!

안식일인 토요일이 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모든 일을 멈춰야 됩니다. 안식일이니까요!

 

그러니 유대인들로서는 일정이 급했어요.

돌아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만든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죽은 사람의 몸에 향료를 발랐는데!

예수님을 따랐던 여성들이 급히 향료를 구했던 것 같애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없었던 겁니다.

그저 향료만 구해놓고!

안식일을 보내고서!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 무덤에 왔던 거죠.

 

그런데!

무덤을 지키고 있어야 할 로마 군인이 없습니다.

이건 뭐지? 싶었는데!

동굴을 막고 있던 거대한 돌이 옆으로 굴려 있는 겁니다.

마가복음16:3,4절 볼까요?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이건 또 뭐지?’

무덤에 들어가보았는데!

무덤 안에 시체가 없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오늘 말씀 4!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천사들을 만나고!

천사의 선언을 듣게됩니다.

5,6절이에요.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예수께서 이전에 계속 말씀하셨던 대로! 다시 사셨다 한 겁니다.

 

이 말을 듣자 마자!

여자들이 사도들에게 뛰어가서

이 소식을 전하거든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우리가 무덤에 갔는데

예수님의 시신을 보지 못했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이 사셨다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사도들이 그들의 말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세요?

오 정말입니까?’

할렐루야!’

그러지 않았습니다.

11절 보세요.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허탄하게 들렸다고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고대사회에서는 여자들의 증언을 신빙성있게 받지 않았어요.

여자와 어린 아이를 사람 수에도 치지 않았던 시절이거든요.

여자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어?’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들이 이렇게 반응했다면!

사복음서를 처음 접했던 고대의 사람들은 어땠겠어요?

어떻게 여자들의 증언을 성경에 기록해놨지?”

 

어떤 의미에서!

실제 여자들의 증언이 사실이었더라도!

당시의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의 증언 이야기는 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여성 증인들의 내용을 사복음서가 공히 적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누가 증거 했다고 해서 부활이 사실이고 아니고가 결정되는 건아니에요!

부활은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당시에 소외받던 소수의 여성들을!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해마다 부활절이면요.

한국교회 교단들은 몇 만명, 몇십만명이 모여서부활절 연합예배로

세를 과시합니다.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첫 번째 부활절 아침처럼...

소수의 몇몇명이라 할지라도...

매 주일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우리의 작은 모임이 더 귀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이라는 시간에 잇대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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