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9:28-48
보통의 아빠들이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저도 자동차에 관심이 많습니다.
차 모양을 보면 차가 어디 회사 차인지, 모델명이 뭔지까지 웬만하면 다 맞춥니다.
아마 여러분 아빠들도 거의 그러실거에요.^^
예전에는 세단이라고 해서 보통 승용차라고 하는 차량을 많이 선호했는데,
최근에는 suv라고 차체가 높은 패밀리카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요즘엔 길에 보면!
세단보다는 suv가 더 많이 보일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그거 아세요?
suv차량을 구입할 때는 한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 처럼!
suv차량은 차체가 높고 힘이 좋고 튼튼하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나라에서 전시용 차량으로 징발을 합니다.
차주에게는 매년 고지서가 발부되는데,
전쟁 발발과 동시에 차주는 지정된 장소에 차량을 가져다 두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바로 그런 규정에 해당됩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입니다.
이전에 오실 때만 해도 일반사람들처럼 성을 드나드셨는데,
이번에 들어가실 때는
제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십니다.
30,31절 말씀을 보실까요?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보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어요.
아니 명백하게 남이 키우는 나귀인데!
그걸 그냥 풀어오라는 겁니다.
그럼 도둑질 아닌가요?
그런데 가져오려다가 주인한테 걸리면 그러라는 거죠.
“주가 쓰신다고 한다”
그럼 도둑을 넘어서 강도 아닌가요?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죠.
32절~34절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나귀 새끼를)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놀랍게도!
나귀의 임자들은 제자들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나귀를 내 주었어요.
남의 나귀를 이렇게 말도 없이 풀어와도 되는거였을까요?
그리고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에
아무말 없이 내준 임자들은 또 뭘까요?
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앞서 제가 말했던 '전쟁시에 suv차량을 군대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규정‘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런 규정이 훨씬 더 강력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언제 적용될까요?
‘왕의 행차입니다.’
왕이 어떤 곳에 행차할 때에!
왕이 필요한 이동수단에 대해서 백성에게 요구할 권한이 있었던 겁니다.
이런건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있었어요.
왜 ‘암행어사’라고 있었잖아요?
중앙정부에서 지방에 몰래 잠입해서 부정 부패한 관료를 잡는 관리였습니다.
이분들이 정체를 드러낼 때면
마패를 들고서 ‘암행어사 출두요~’라면서 나타났죠!
이 때 들었던 ‘마패’에 보면!
말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이게 무슨 의미냐면!
말들이 계속 달릴 수가 없다보니까!
암행어사가 지방에 갔을 때, 이 마패를 보여주면 말을 교환해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서
굳이 나귀를 사용하시고, 그 주인에게 ‘주가 쓰시겠다’라고 말한 건!
하나의 선언인 겁니다.
무슨 선언일까요?
“내가 왕이다!”라는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30세부터 33세까지 3년간 공생애를 사시면서요.
정말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불치병을 고치시고,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시는 기적을 몇 번이고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면 좋겠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은 ‘로마’라는 나라의 속국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는 ‘헤롯’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다윗의 자손도 아니에요!
정통성이 없는 사람이고,
그저 로마 원로원에 잘 보여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은 꼭두각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헤롯’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숱한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족보를 따져보니 심지어 ‘다윗의 자손’이에요!
왕의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예수님을 억지로 왕위에 올리려고도 시도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그런 자리를 계속 피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상하리만치 왕위 추대를 거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는데!
오늘 드디어!
예수께서 나귀를 푸시면서!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내가 왕이다’ 라고 선언하신 겁니다.
그걸!
나귀 주인도 알아들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나귀를 풀어가도 아무 제지도 안했던 거죠!
대신에!
그 일을 예루살렘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외쳤겠죠!
“예수님이 드디어 왕으로 행차하신다!”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신다!”
그동안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타신 나귀 앞에 레드카펫을 깝니다.
35,36절이에요.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예수님의 왕되심을 누구보다도 꿈꿨던 사람들이 ‘이 제자들’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구나!
제자들의 마음은 설레었습니다.
자... 이제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까?
나는 국무총리쯤 되지 않을까?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꽃밭이 됩니다.
그렇게 예수께서 성에 가까이 가셨을 때!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신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왕위에 오르시려는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서 길로 쏱아져 나옵니다.‘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다 들려 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예수님을 맞이했다고 해서!
어떤 교단에서는 ‘고난주간의 첫날’을 ‘종려주일’로 지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38절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한가지 생각 뿐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우리는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될거야!
우리를 지배하는 로마를 쳐부수실거야!
우리는 다윗 왕 때처럼 잘 먹고 잘 살게 될거야!”
맞아요!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력으로 지배하는 왕’으로 오신게 아니었습니다.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일’을 위해서 오신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예수님은 성에 도착하시면서 펑펑 우셨습니다.
이 성은 얼마 안있어 망하게 될 겁니다.
그것도 얼마나 철저하게 망하는지!
44절에 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보면 이 말씀이 실제로 이뤄져요!
예루살렘 성은 거대한 벽돌 사이사이에 보석들을 박아서!
해가 비치는 쪽으로 아름답게 빛났는데!
ad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성을 무너뜨리면서
그 보석을 빼낸다고 실제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았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게 하는 왕’으로 오신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셨고!
이곳에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대신 달려 죽으실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요!
온 우주의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고백하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죽음 후에도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하십니다.
언젠가 부활의 날에는!
우리의 죽은 몸까지도 부활해서 영혼과 하나되어!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단지 땅에 있는 언젠가 망할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천국의 왕이십니다.
여러분은 그 예수님께 속해 있는 천국의 백성입니다.
세상은 뭐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고...
이런 것에 관심이 많지만 말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그분과 함께 이번 한주도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