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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5:2-6:3

"내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내 누이, 내 사랑,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하는구나." (아가 5:2)

사랑하는 연인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밤늦도록, 이슬에 젖으면서까지
문을 두드리는 간절함이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여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쉽게 문을 열어주지 못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으랴.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아가 5:3) 안일함과 게으름이 사랑하는 이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결국, 연인은 기다리다 지쳐 떠나고,
그제야 여인은 후회하며 그를 찾아 나섭니다.
문을 열었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난 후였습니다.
"내가 문을 열었으나
나의 사랑하는 이가 이미 갔음이로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고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노라." (아가 5:6)
사랑하는 이를 놓친 여인의 애끓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요?
조금만 더 귀 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이토록 애타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며
문득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열두 살 되던 해,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셨던 사건 말입니다. 하루 동안이나 예수님이 없는 것을 모르고
길을 나섰던 부모님은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성경은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를 찾기까지
사흘이나 걸렸다 합니다(누가복음 2:46).
단 하루의 부주의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렸고,
그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며칠이라는
간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을
순간의 방심이나 게으름으로 놓쳐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관계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아가서의 여인처럼, 예수님의 부모님처럼,
놓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되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영영 되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와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순간의 안일함과 무관심으로
그분의 부르심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랑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놓친 후에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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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2:54-71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베드로 이야기는
네 개의 복음서(마,막,눅,요)에서
공히 다룰 정도로
성경이 주목하는 장면입니다.

즉, 이 사건은
베드로 개인만의 경험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는
메시지, 혹은 경계라는 생각입니다.

성찬식 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릴 것'을
말씀하셨을 때,
모든 제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아닐 거라' 장담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을 거라'
강하게 주장했죠.

그러나,
주장이 강했던 만큼
꺾이는 것도 순식같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작은 소녀의 말에도
그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사람들의 의심을 떨치고자
그자리에서 사람들이 시키지도 않은
예수 저주를 스스로 하다가
심문으로 받고 나오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기까지 했죠.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누구도 자신에 대해서 확증할 수 없습니다.
저는 20년 이상 오랜시간 목사로 재직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변질 되는 걸
목격해왔습니다.

청렴과 정의를 항상 말씀하셨던 목사님이
연세가 들어가면 어느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돈 돈 거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살겠다며
선교사까지 생각했던 청년이
어느덧 교회까지 등지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3년동안
예수님의 기적을 자기 두눈으로 목도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베드로가 이렇게 무너졌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약한 존재들인가요?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인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던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겁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주간,
무너진 베드로를 보며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다시 한 번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귀한 시간으로 삼읍시다.

은혜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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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39-53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기도제목은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였습니다.

 

참사람이셨기에 

예수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란 건 

상상을 초월한 고통일 터입니다.

창에 찔리고 못박히는 고통도 크겠지만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께 버림 받게 된다는

삼위일체이신 주님께 결코 있을 수 없는

'영적 단절'이 더할 수 없는 

두려움이셨을 터입니다. 

 

인류 역사의 분기점을 앞두고

예수님은 처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로서

예수님은 마음속의 두려움과 싸우셨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굳게 하셨습니다.

 

기도 없는 우리네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모습은 감람산에 잠들어 있는 

제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예수님이 왕 되셨을 때 높은 자리에 오를 꿈 뿐입니다.

긴장도 두려움도 염려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저토록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 조차도

그들을 자극하지 못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경고하신대로

그들 모두는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은

멈춰 있던 기도를 회복하는

시간으로 삼읍시다.

 

시험에 들지 않게 

헛된 생각에 매이지 않게

하나님의 뜻에 나의 의지를 고정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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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2:1-23

 

다음주일이 부활주일이고 성찬식도 있어서...

오늘은 성찬식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성찬식이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모든 교인들이 떡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식입니다.

여기서 은 예수님의 찢기신 살을 상징하는 거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이 성찬식에는

세례입교를 받은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물로 죄를 씻는 상징인데요.

주로 목사님이 물을 머리에 얹거나,

침례교에서는 아예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세례는

이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 받았다는 교회의 공적 선언입니다.

 

여기서 생각해볼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하셨다면!

그 구원은 취소가 될까요? 안될까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했다가, 취소했다가, 또 구원 했다가...

이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에요!

세례는

인생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요...

여러분은 어린 아기 때 유아세례를 받았죠?

태어나서 2년 이내에 베푸는 세례를 유아세례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아직 복음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왜 세례를 주는가 하면요.

이 아이도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이고,

이 아이를 믿음으로 키우겠다는 언약적 차원에서 세례를 주는 겁니다.

 

다만!

구원은!

부모의 믿음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믿음으로 받는거잖아요?

그래서 그 아이의 믿음을!

교회가 한 번 더 확증해주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이미 아기 때 세례를 받았거든요!

세례는 평생 한 번만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입니다.

세례를 받은 아이는

15세 생일이 지나고 나면!

입교를 하게 됩니다.

모든 교인들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하고!

교회의 공식적인 일원으로 받는 겁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성인식입니다.

실제로도 그런게!

세례나 입교를 받은 사람은!

그 때부터 교회에서 투표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님 청빙투표같은 것 있잖아요?

그 투표자의 자격이 세례, 입교인입니다.

 

무엇보다!

세례, 입교를 받은 사람은!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례나 입교를 해야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 성찬식 정말 중요한 예식입니다.

세례 성찬은 예수님이 직접 지정하신 두가지 예식이에요.

오늘 17-19절 말씀을 볼까요?

이에 잔을 받으사(포도주)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게 역사상 최초의 성찬식 선언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성찬을 지정하셨고!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은

이 성찬을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 까지지키도록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전서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후에 교회가

이 성찬식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보면요!

교회 권징의 거의 최종 보루로 둘 정도입니다.

 

나라에 법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도 교회 헌법이 있거든요.

그 법에!

교회에서 죄 지은 사람은 이렇게 벌을 주라 하는 권징의 순서가 있어요.

 

잘 들어보세요.

다 한자어여서 한자를 알면 어떤 벌인지 알 수 있어요.

 

첫 단계는 권계에요.

권면하고 훈계한다는 말입니다.

좋은 말로...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안됩니다...’라고 훈계하는 게 권계에요.

 

그런데도 말을 안듣는다?

두 번째 단계는 견책입니다.

여기서 책망할 때’ ‘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좋은 말이 아니라 혼을 내라는 거죠.

단호하게 그러면 안됩니다! 정신차리세요!’라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혼내는 겁니다.

 

그래도 회개를 안한다?

세 번째 단계 정직입니다.

직분을 정지한다는 겁니다.

직분이 있는 사람은 그 직분의 일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대표기도를 못하게 한다거나, 교회 봉사를 못하게 하는 거죠.

 

... 그런데도 회개를 안한다?

네 번째 단계는 면직입니다.

직분을 박탈하는거에요.

집사, 장로, 목사라고 하는 직분을 떼버리는 겁니다.

일반평신도가 되는거죠.

 

여기까지 했는데도 잘못을 인정안해요?

그러면 드디어!

수찬정지를 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그렇게 수찬정지를 해도 회개 안한다?

최종적으로 출교를 합니다.

교회에서 쫓아내는 겁니다.

 

수찬정지 다음 단계가 출교지만,

수찬정지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사망 선고이고요.

출교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를 떼 낸다는 점에서!

사실상 수찬정지가 가장 강력한 징계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중세시대에는

왕조차도! 교황이 수찬정지령을 내리면 두려워 떨었습니다.

수찬정지는 영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면!

성찬식이 도대체 어떤 의미길래!

교회가 이렇게까지 소중히여기는 걸까요?

 

우선은 기념입니다.

이건 예수님도 하신 말씀이죠!

19절이요.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생각해보면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이 날이 유월절만찬입니다.

유월절이 어떤 날이에요?

먼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였을 때!

모세를 통해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고!

이스라엘이 자유를 얻게 되는데!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애굽 땅에 있는 장자들이 다 죽는 재앙이었지요.

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아 했는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갔다 해서!

넘을 유, 넘을 월자를 써서 유월절이라 합니다.

 

!

유월절의 밤이 지나면

쫓겨나듯이 애굽에서 나오게 될 겁니다.

그래서에요!

모세는 내일이면 당장 우리가 출애굽할거고!

그러면 먹을 것이 없을테니까!

너희는 무교병을 구워서 준비하라 한 겁니다.

원래 빵을 만들려면 빵을 부풀리는 이스트(누룩)를 넣어야 되는데!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급히 만들기 위해서!

이스트 없이 빵을 구우라 했던 겁니다.

그게 무교병이에요!(없을 무, 누룩 효, 절기 절)

 

무교병을 구워 먹었던 때를 기념해서!

후대의 이스라엘은 매년 유월절을 기억해서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월절 무교병 먹는그 때에!

예수님은 새롭게 구원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지정하셨습니다.

그 날 밤이 지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예수님의 피로 인해!

죽음지옥

예수 믿는 사람을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2000년 전 죽음과 지옥이 넘어간 사건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다만!

성찬식은 기념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예수님은!

이 떡을 내 몸이라 하셨고,

포도주를 내 피라 하셨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

가르칩니다만, 그건 아니고요.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단순한 음식을 먹는게 아니고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성찬식 때 보면...

떡과 잔을 먹으면서 감정에 북받치고, 은혜 받는경험을 종종하게 됩니다.

 

성찬식은!

주님을 경험하는 특별한 예식입니다.

 

여러분이 속히 입교공부를 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입교를 받으시기를 바라고요!

교회의 일원으로서 성찬식이라는 특별한 예식에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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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9:28-48

 

보통의 아빠들이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저도 자동차에 관심이 많습니다.

차 모양을 보면 차가 어디 회사 차인지, 모델명이 뭔지까지 웬만하면 다 맞춥니다.

아마 여러분 아빠들도 거의 그러실거에요.^^

 

예전에는 세단이라고 해서 보통 승용차라고 하는 차량을 많이 선호했는데,

최근에는 suv라고 차체가 높은 패밀리카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요즘엔 길에 보면!

세단보다는 suv가 더 많이 보일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그거 아세요?

suv차량을 구입할 때는 한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 처럼!

suv차량은 차체가 높고 힘이 좋고 튼튼하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나라에서 전시용 차량으로 징발을 합니다.

차주에게는 매년 고지서가 발부되는데,

전쟁 발발과 동시에 차주는 지정된 장소에 차량을 가져다 두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바로 그런 규정에 해당됩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입니다.

이전에 오실 때만 해도 일반사람들처럼 성을 드나드셨는데,

이번에 들어가실 때는

제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십니다.

30,31절 말씀을 보실까요?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보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어요.

아니 명백하게 남이 키우는 나귀인데!

그걸 그냥 풀어오라는 겁니다.

그럼 도둑질 아닌가요?

그런데 가져오려다가 주인한테 걸리면 그러라는 거죠.

주가 쓰신다고 한다

그럼 도둑을 넘어서 강도 아닌가요?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죠.

32~34절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나귀 새끼를)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놀랍게도!

나귀의 임자들은 제자들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나귀를 내 주었어요.

 

남의 나귀를 이렇게 말도 없이 풀어와도 되는거였을까요?

그리고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에

아무말 없이 내준 임자들은 또 뭘까요?

 

,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앞서 제가 말했던 '전쟁시에 suv차량을 군대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규정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런 규정이 훨씬 더 강력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언제 적용될까요?

왕의 행차입니다.’

 

왕이 어떤 곳에 행차할 때에!

왕이 필요한 이동수단에 대해서 백성에게 요구할 권한이 있었던 겁니다.

이런건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있었어요.

 

암행어사라고 있었잖아요?

중앙정부에서 지방에 몰래 잠입해서 부정 부패한 관료를 잡는 관리였습니다.

이분들이 정체를 드러낼 때면

마패를 들고서 암행어사 출두요~’라면서 나타났죠!

이 때 들었던 마패에 보면!

말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이게 무슨 의미냐면!

말들이 계속 달릴 수가 없다보니까!

암행어사가 지방에 갔을 때, 이 마패를 보여주면 말을 교환해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서

굳이 나귀를 사용하시고, 그 주인에게 주가 쓰시겠다라고 말한 건!

하나의 선언인 겁니다.

무슨 선언일까요?

 

내가 왕이다!”라는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30세부터 33세까지 3년간 공생애를 사시면서요.

정말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불치병을 고치시고,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시는 기적을 몇 번이고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면 좋겠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은 로마라는 나라의 속국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는 헤롯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다윗의 자손도 아니에요!

정통성이 없는 사람이고,

그저 로마 원로원에 잘 보여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은 꼭두각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헤롯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숱한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족보를 따져보니 심지어 다윗의 자손이에요!

왕의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예수님을 억지로 왕위에 올리려고도 시도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그런 자리를 계속 피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상하리만치 왕위 추대를 거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는데!

오늘 드디어!

예수께서 나귀를 푸시면서!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내가 왕이다라고 선언하신 겁니다.

 

그걸!

나귀 주인도 알아들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나귀를 풀어가도 아무 제지도 안했던 거죠!

 

대신에!

그 일을 예루살렘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외쳤겠죠!

예수님이 드디어 왕으로 행차하신다!”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신다!”

 

그동안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타신 나귀 앞에 레드카펫을 깝니다.

35,36절이에요.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예수님의 왕되심을 누구보다도 꿈꿨던 사람들이 이 제자들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구나!

제자들의 마음은 설레었습니다.

... 이제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까?

나는 국무총리쯤 되지 않을까?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꽃밭이 됩니다.

 

그렇게 예수께서 성에 가까이 가셨을 때!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신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왕위에 오르시려는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서 길로 쏱아져 나옵니다.‘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다 들려 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예수님을 맞이했다고 해서!

어떤 교단에서는 고난주간의 첫날종려주일로 지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한가지 생각 뿐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우리는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될거야!

우리를 지배하는 로마를 쳐부수실거야!

우리는 다윗 왕 때처럼 잘 먹고 잘 살게 될거야!”

 

맞아요!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력으로 지배하는 왕으로 오신게 아니었습니다.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일을 위해서 오신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예수님은 성에 도착하시면서 펑펑 우셨습니다.

이 성은 얼마 안있어 망하게 될 겁니다.

그것도 얼마나 철저하게 망하는지!

44절에 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보면 이 말씀이 실제로 이뤄져요!

예루살렘 성은 거대한 벽돌 사이사이에 보석들을 박아서!

해가 비치는 쪽으로 아름답게 빛났는데!

ad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성을 무너뜨리면서

그 보석을 빼낸다고 실제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았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게 하는 왕으로 오신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셨고!

이곳에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대신 달려 죽으실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요!

온 우주의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고백하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죽음 후에도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하십니다.

언젠가 부활의 날에는!

우리의 죽은 몸까지도 부활해서 영혼과 하나되어!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단지 땅에 있는 언젠가 망할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천국의 왕이십니다.

여러분은 그 예수님께 속해 있는 천국의 백성입니다.

 

세상은 뭐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고...

이런 것에 관심이 많지만 말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그분과 함께 이번 한주도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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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9:51-62

 

저는 요즘에 지드래곤의 신곡에 푹 빠져있습니다

Too Bad이라는 노래죠?

노래 자체도 중독성 있고 좋은데...

저는 그 춤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디와 함께 춤추는 사람들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실력자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사람들이 춤을 잘 추니까

자유로운 GD의 춤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일에 춤을 췄다면

꼭 이 팀에 들어가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닌 말로...

춤을 출줄 몰라도 이 그룹 안에 들어가 있으면 너무 멋있을 것 같잖아요!

 

물론 조건이 있겠지요!

그만큼의 실력이 있어야만!

그 그룹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당연한거죠!

유튜브에서요 지디 연습생 빡침으로 검색하면(자동 완성으로 나옴)

연습생 때 대성이 혼내는 장면 나오는데...

왜 연습 열심히 안하냐면서...

무릎 하나 깨는 거 뭐가 아깝다고 그러냐고 하거든요.

그정도 했으니까 오늘의 지디가 있는거고요.

그런 사람들이 지디 주변으로 모여드는 겁니다.

 

자 여러분!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가수한 명의 그룹에 들어가는 것도

말도 안되는 영예일텐데요!

생각해보세요!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고, 언젠가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의 팀에 소속되어서 살았다면!

이건 영원한 영예인 겁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거에요.

 

자 그러면!

오늘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가?

팀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 공생에 때입니다.

무슨 병이든 다 고치셨고요, 귀신도 쫒아내셨고, 최고의 선생님이었어요.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팀 예수님 안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생겨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용기를 내서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57절이에요!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이런 말을 할 때는 얼마나 마음에 준비를 했겠어요?

그런데 예수께서 뭐라고 하세요?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게 무슨 말인가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다른 말로!

나를 따라오면 고생한다는 말이지요.

별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고생길이다!’

한마디로

오지 마라하는거 아니에요!

 

, 이렇게 보면!

예수님을 따르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예수님 제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닌 거죠!

예수님이 택해주셔야 예수님 제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택하시는 어떤 자격 같은게 있는걸까요?

지금 이 사람의 예로 보자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재물의 욕심이 없어야 된다.’ 이런 식으로요.

예수님은 좀 더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다거나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렇지만도 않은게...

실제 예수님의 핵심 제자 12명도!

오늘 사건 바로 직전까지 자기들끼리 싸웠어요!

제목이 뭔줄 아세요.

46절 보세요!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결국 제자들이 꿈꾸는 것도 이 사람과 다르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왕이 되면 누가 국무총리가 될 거냐?’ ‘좌의정 우의정이 될거냐?’

이런 욕심으로 싸웠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이 사람이!

딱히 제자들보다 더 세속적인 것도 아니었던 거죠.

그저 주님의 택하심에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지드래곤 뮤비에 나오는 댄서들 처럼!

어떤 자격이 아닌 겁니다.

그저 예수님이 택하시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건 바로 다음 사람을 보면 나와요.

59절 볼께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먼저 가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세요.

이 사람 대답이 뭐에요?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에요.

그러면 지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런거냐!

아니죠.

지금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시니!

아버지 가까이에서 다른일 하면서 살다가!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 따르겠습니다.”라는

말하자면 좀 있다가 따를께요라는 완곡한 거절인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거절을 받아들이실까요?

아니지요.

60절입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하십니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장사지내지 마라

그런 말이 아니에요!

세상은 죽어 있어요.

죄악 가운데 있는 세상은 이미 죽음이 지배하고 있어요.

죽음의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일들을 이루어도!

그 일들은 죽음에 속한 일인 겁니다.

이런 세상에서 진짜 가치는 뭔가요?

하나님의 나라에요! 생명이죠!

지금 네가 해야 할 일, 네 우선순위는

나를 따르는 거다’ ‘복음을 전하는 거다’ ‘내 제자가 되는 거다

이 말씀인 겁니다.

 

내가 따르고싶으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고

부르심의 문제인 겁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시는가?

마가복음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처음부터 예수님의 택하심에 있다는거죠.

 

우리가 여기에 모여있는 이유!

우리가 이 시간에 함께 예배하는 이유!

그건 예수님이 우리를 택해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이야기할께요!

그러면! 어차피 예수님이 안부르시면 소용없는 거니까

예수님이 부르셨다면 나도 언젠가는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되겠지?’

나는 그냥 수동적으로 있으면 되는가?’

 

61절 보세요!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아니 누가 가족과 작별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예수님 따르면 가족과 생이별하는걸까요?

아니에요!

나중에 보면 베드로는 아내랑 같이 다니면서 주님 일을 했어요.

고린도전서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주님은 가족 버리도록 하지않으십니다.

디모데전서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이 사람은 그냥 가족 핑계를 대는 겁니다.

예수님 따르는게 나을지 아닐지 보고 정하겠다는 거잖아요.

상황이 맞으면 그 때는 나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지요.

어중간한 태도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단호하시죠.

6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 부르셨을 때에!

이런 저런 것들 따지고, 유불리 따지고 있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뒤로 물러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주님 따를 자격이 없다는 거에요.

 

주님 부르셔서 이 자리에 있는 거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상!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라는 겁니다.

부르심을 받고서도 어정쩡하게 사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거에요!

 

자 여러분!

이 자리에 여러분이 있는 이상!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름 받은 사람인게 틀림 없습니다.

여러분 손에는 쟁기가 이미 들려 있습니다.

이 쟁기로 뭘해야 할까!

이번달이 기도의 달이잖아요?

기도하면서 매일 오늘은 뭘해야 할까요? 물으면서!

주님 부르신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뭘하라고 부르셨는가!

성경구절 하나만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에베소서4:1-3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겸손하고, 유하고, 오래참고, 사랑하고, 용납하고, 하나되는 것이라고 하시네요.

팀 예수님의 크루로서!

예수님과 함께 빛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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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6:12-26

 

여러분 축구 좋아하세요?

축구를 좋아하신다면 축구 경기할 때 인원수가 몇 명인지 아시나요?

11명입니다.

그러면 농구는 몇 명일까요?

5명이죠.

배구는요?

6명입니다.

 

대부분의 단체 스포츠에는!

정해진 인원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왜 숫자를 정해두었는가?

물으신다면?

그게 가장 적당한 숫자라고 이야기 하겠죠.

축구로 말하자면

같은 운동장 크기에서 9명도 해보고 15명도 해봤을 거 아니에요?

운동장 크기에서 경기 운영하기에 가장 적당한 숫자가 11명이었겠지요?

 

운동경기가 되었든 학교의 반 구성이 되었든...

가장 적절한 숫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 12명은 어떤 것 같으세요?

예수께서 제자 12명을 부르셨는데...

왜 예수님은 굳이 12명을 뽑으셨을까요?

 

12명이 가르치기 가장 최적의 숫자니까요?

저는 예전에 그렇게 배운 적이 있어요.

다른 분도 아니고 최고의 선생님이신 예수님이 12명으로 가르쳤으니까!

12명이 교육하기에 최적의 숫자다.

 

이런게 완전 순환논리죠!

이런거에요!

예수님이 왜 12명 뽑았느냐? - 12명이 가르치기 최적이니까

12명이 최적이냐? - 예수님이 12명 뽑았으니까

 

이렇게 설명하면 안되는 겁니다.

고대 사회에서 교육학이 그렇게 발전된 것도 아니었을 거니까요

과학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우연히 12에 맞춘걸까요?

그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나중에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도 숫자가 11명으로 줄어들거든요!

그 때에 어떻게 했어요?

굳이 한 명을 제비뽑기로 뽑아서 12을 채워 넣었어요.

 

그러니까!

열 두 제자의 12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구약시대에 12하면 떠오르는 뭔가가 있을 겁니다.

 

12지파죠!

야곱의 열 두 아들이!

나중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된 겁니다.

 

그 열 두 지파가!

나중에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이스라엘 10지파가 먼저 망하고 흩어지고!

나중에는 남유다도 망하면서!

예수님 당시에는 거의 흔적만 남은 상태였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오셨어요.

예수께서 하시려는 게 뭐에요?

십자가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죠?

그냥 구원만 하시려는 게 아니에요!

뭘 세우려 하시는거에요?

이 땅에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려 하시는 겁니다.

에베소서1:22-23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예수님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러분 눈에 교회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마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교회는 당신(예수님)의 몸인 겁니다.

 

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오셨어요.

 

그러면 그 교회가!

예수님과 함께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거냐?

아니지요!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면 감이 오시죠?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구약 시대 ‘12지파의 연장선인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을 넘어서!

이제 믿음의 자손들이 모이는 교회를 통해 이루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입니다.

12지파의 연장선으로!

예수님은 제자 12명을 세우셨던 겁니다.

 

교회

인간의 만들어낸 인간의 고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했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네 씨는 예수님이고요!

예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실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이 누구를 통해서 세상에 흘러간다는 말일까요?

교회를 통해서!’!

 

그래서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공식적으로 세워지기 전까지는!

사도의 숫자가 12명으로 유지되는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에요!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

사도들은 굳이 제비뽑아서 사도 한명을 더 뽑았아요.

 

사도 12명이 다시 채워지자 마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오순절 성령이 120문도에게 임하십니다.

말씀 보실까요?

 

사도행전1:1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그렇게 12사도가 채워지고요!

바로 다음절!

사도행전2:1-3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120문도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여기서도 12 관련 숫자가 나왔죠!

 

여기서 성령강림은 뭐냐!

구약시대에

모세가 광야 성막을 세울 때나,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을 때입니다.

성막이나 성전 봉헌하는데!

그 때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구름이 임했습니다.

이로서!

이곳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게 인증된 겁니다.

 

똑같습니다.

120문도에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선언이 이뤄진 겁니다.

이 때부터 최초의 신약 교회가 선 거에요!

 

그래서죠!

이후에 야고보를 필두로 사도들이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사도들이 순교했다고 해서!

또 다시 교회가 사도를 뽑지 않습니다.

왜냐!

이미 교회가 시작되었거든요.

이미 교회라는 기차가 출발했거든요!

 

그러니까 또 다시 사도를 뽑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현대에 와서 내가 사도다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짜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날!

새 예루살렘에서 보게 될 것은 이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1!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있는 문이 있고요!

요한계시록21: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구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열두 지파

신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열두 사도의 이름들을 보게 될 겁니다.

 

바로 우리가!

이 이름 안에 속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안에 우리가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을 괜히 축복의 통로라고 부르는게 아닙니다.

천하 만민에게 복을 흘려줄 교회바로 여러분이라서!

여러분을 축복의 통로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합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이 교회에 속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에 이 흘러가게 하실 겁니다.

 

주님의 원대한 계획과 뜻을 바라보면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또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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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4:1-13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충만해서 광야에 들어가십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셨는데!

그 때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마귀는 세가지 시험을 해요!

첫째!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하라!”

둘째!

만일 네가 나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너에게 주마!”

셋째!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말씀에서는 시험을 받으셨다하지만요!

정확하게는 유혹을 받으신 겁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테스트해 본게 아니라!

아예 무너트리려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학교 시험 망치면 어때요?

기분이 나쁘고, 불안할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인생이 망하지는 않거든요.

심기일전해서 다음에 잘치면 되기도 하고요!

 

예수님의 시험은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22절에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했어요.

-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진 이유!

- ‘죄의 값으로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

사실 아담의 범죄에 있었어요!

그 때 아담이 마귀의 시험에 무너져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인류는 죄의 종노릇해야 했단 말입니다.

자기의 창조주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영원한 천국 소망도 없이, 영원한 형벌로 가게 만든 모든 원인이!

아담의 범죄에 있었어요.

 

예수님은요?

이 저주를 끊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게 무슨 말일까요?

아담이 시험에 져서 아담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망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시험에 이기신다면!

예수님에게 속한 모든 사람은 삶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로마서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구원 받는지 보여주는 모형인 겁니다.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영벌을 받게 되는 것 처럼!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은요!

우리가 받는 어려움과 유혹같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거에요!

예수님은 구원 받는 모든 사람의 대표로서!

이 시험을 받고 계셨던 겁니다.

 

두 번은 없는 시험이에요!

아담이 선악과 먹는’ ‘그 한 번의 죄악으로 세상이 죄악에 빠졌잖아요?

예수님의 시험도 한 번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이 유혹에 무너지시면 안됩니다.

 

여러분!

이거 한 번 생각해볼까요?

아담이 당한 시험 말입니다.

쉬운 시험이었을까요? 어려운 시험이었을까요?

아담아! 저는 선악과 따먹지 말라!”

이건 사실 시험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거 아닙니까?

에덴동산에 어마어마한 갖가지 열매들이 있었고!

셀 수도 없이 많은 먹을거리중에서,

선악과!’ 그거 하나만 먹지 말라는 명령이었어요.

 

그렇게 쉬운 시험이 어디있냐고요!

기어이 그걸 가서 먹잖아요?

 

이제 예수님을 보실까요?

40일동안 금식하시고 굶주리셨습니다.

여러분 최대한 많이 굶어보신게 얼만큼이에요?

저도 3~4일 굶어본 것 같은데...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치킨이야 밥이야... 온갖 음식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구요.

 

40일 금식하신 예수님은 어떠셨겠어요?

음식 냄새만 맡아도 정신이 혼미해질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에게 마귀가 말합니다.

이 돌들을 으로 만들어봐!”

먹을 것 없는 광야에서 이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예수님의 몸이 먼저 반응 했을겁니다.

입에 침이고이고... 뇌하수체의 반응으로 엄청난 배고픔이 느껴졌을꺼에요!

 

당연히!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셨어요.

 

내가 살고 죽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문제인 거지!

지금 내가 뭘 먹고 안먹고에 달리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귀에게 답하십니다.

뭐라고요!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무엇으로 산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하셨어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했잖아요?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선언하신 겁니다.

 

그렇게 아담의 실패를 완전히 돌려놓았습니다.

 

마귀가 당황했어요.

! 이게 아닌데!”

그래서 이번에는 일을 크게 키웁니다.

예수님께 천한 만국을 순식간에 쏴~~’ 하고 보여줍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러고 말하죠!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은 다 내꺼야!

인간이 죄를 짓고 나서...

그들은 다 내 종이 되었지!

너한테 다 줄께!

!

니가 나에게 한번만 절하면 모든게 니꺼가 될거야!”

 

여러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뭐에요?

천하 만민이에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 기억나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했잖아요!

 

그걸 여기서

한 번만 절하면! 그냥 내 주겠다는 거에요!

 

공생애를 사시면서 사람들의 멸시 받지 않아도 돼요!

그 무서운 십자가도 피할 수 있어요.

 

한 번만 고개 숙이면 모든게 해결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 거짓인지 진짜인지를 떠나서!

 

유혹이었죠!

 

예수님은 뭐라고 하세요?

8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니야! 니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뤄주실 일이야!”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일이야!”

 

여러분 이게 왜 시험이냐면요!

우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타협하거든요.

에이 이번 한번만 하면 그만인데 뭘...”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앞에서 설교하는 저조차도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게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자세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 섬기는 걸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았어요.

세상 전부를 포기하더라도!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만큼은 놓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자 그렇게!

예수님은 마귀의 세 번째 유혹까지 물리치십니다.

세 번째 시험 내용은 여러분이 성경으로 보세요.

 

오늘 말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사!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살게 하셨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죽음과 영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의 후손으로 영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된 겁니다.

 

그것 뿐만 아니에요!

 

히브리서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우리가 시험 받을 때 마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견디게 하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승리하신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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