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지역에서 시작된 교회가 짧은 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 간 가장 큰 이유는 ‘박해’였다.
[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놀랍게도 기독교는 박해를 받을 수록 오히려 더 확산되고 커져 갔던 것이다.
카르타고의 교부 터툴리안은 이렇게 말한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유다의 박해 때문에 로마로 퍼진 교회는
이번엔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게 된다.
그런데!
교회가 박해 받는 이유가 어처구니 없다.
첫째. ‘무신론자’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형상도 만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황제를 신으로 추앙하지 않았다.
수많은 신을 섬겼던 당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신격화 되어 숭배를 받던 황제에게!
형상을 섬기지 않는 이들은 그저 정신나간 무신론자일 뿐이었고, 황제 숭배 거절은 체제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 근친상간을 조장한다. 이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다. 동시에! 불신자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신자들간의 결혼을 장려했다.
형제 자매라 부르면서 자기들끼리의 결혼이라니!
그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한 자들이라고 판단했다.
셋째. 식인을 즐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했는데, ‘이것은 내 살’이고 ‘내 피’라는 선언과 함께 먹고 마셨다.
교회 밖에서 듣기에 이러한 선언은 ‘식인을 즐기는 행위’로 비쳤고 이것이 박해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네로 황제’가 기독교 박해의 큰 도화선이 되었으니,
주후 64년 로마의 대화제로 도시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을 때,
황제를 향했던 원망의 화살을!
기독교인에게 돌렸던 것이다.
이로서 대 박해가 시작되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연대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떤 자들에게는 짐승 가죽을 입혀 개들에게 찢겨 죽게 했고
어떤 자들은 십자가에 달거나 불태워 죽였고,
날이 캄캄해지자 횃불로 사용된 이들도 있었다…
사실상… 한 사람의 잔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통을 당했다.”
네로의 박해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당시의 사람들은 네로를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짐승의 숫자 666’이라고 믿기까지 했다.
실제로 네로를 ‘게마트리아’라는 문자를 숫자화 한 조합으로 계산하면 666이 된다.
네로 황제의 박해 이후로
기독교인은 공공연히 황제들에게 박해거리가 되었다.
교회사에서는 로마에서 일어난 박해의 횟수를 10회로 간주한다.
‘네로,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막시미누스, 데키우스, 발레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도미티아누스 - 자기를 신이라 주장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단호히 황제 숭배를 거절했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었다.
이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지하 무덤으로 숨었는데’ 이를 ‘카타콤’이라 한다.
트라야누스 - 황제 숭배를 강요하며 그리스도인 탄압.
이 때 사도 요한의 제자인 안디옥 감독인 이그나티우스가 순교.
교회 전승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이 이런 어린아이의 것’이라 말씀하셨을 때 친히 품에 안으셨던 아이였다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