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29:1-19
‘버킷리스트’라는 표현 많이 쓰시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목록’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의 유래가 쪼금 섬뜩합니다.
중세 시대에 사형 방법 중에 ‘교수형’이라고 있어요.
목에다가 줄을 매는 형틀이죠?
목에 줄을 달고, 발 밑에 발판을 두는데, 그 발판을 ‘버킷’이라고 했습니다.
‘kick the bucket’이라고 버킷을 발로 차는 것으로 사형이 시작된 거죠.
그러니까...
‘버킷’을 발로 차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 하고싶은 말...
이런 걸 후대에서 ‘버킷 리스트’라고 한 겁니다.
‘가벼운 표현이 아니구나’ 싶으면서도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간절한 소원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말씀의 다윗에게도! 소위 ‘버킷 리스트’가 있었어요.
정말 죽기 전까지도 꿈꿨던 한가지 일!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도 봤잖아요?
다윗이 자기가 너무 성전을 짓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니까!
그러면 성전에 들어가는 재료라도 내가 구하겠다 해서!
‘금’만 얼만큼 구했다고 했지요?
10만달란트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비용으로 추산하면 632조원입니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준비해놓고도!
다윗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는! ‘돈’ 이상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백성의 마음’입니다.
백성들이요!
그저 나랏돈으로 웅장한 건물 하나 서는 걸 보면서!
‘아 멋지구나...’ 감상만 한다면!
그건 참된 성전일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이!!!!
이 성전을 향해야만!
그게 진짜 성전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에요!
다윗은 먼저 모범을 보입니다.
‘나랏돈’ 뿐만 아니라!
다윗의 사유재산까지도 성전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3절 보세요!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라면서
4절에!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고 했습니다.
따로 계산은 안할께요.
다만, 금 1달란트가 63억이었다고 했으니까요.
삼천 달란트면 대략 얼마인지 나올 겁니다.
그만큼 내놓고 백성들에게 이야기하죠?
5절 후반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 건데...
이 요청을!
백성들이 ‘압박감’으로 느꼈을까요?
‘왕이라는 사람이 자기만 하면 되지 왜 백성까지 끌어들이고 그래?’
아니었지요!
오히려 백성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성전을 위한 헌물을 기꺼이 드리기 시작합니다.
6절을 보시면!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어떻게?) 즐거이 드리되!”
9절도 보세요.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그렇게 ‘자원해서’ 모인 재물이 ‘금만 5000달란트’입니다.
백성들이 정말 힘에 지나도록 엄청난 헌신을 한겁니다.
17절 후반절에 보면!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라고 하거든요!
백성의 헌신을 보고 다윗이 기뻐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마태복음6: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했거든요!
이토록 많은 재물을 드렸다는 건!
백성의 마음도 성전을 위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인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다윗은 왜!
이토록이나 ‘성전을 짓고 싶어했을까요?’
아닌말로! 노년인 다윗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생전에 완공된 성전을 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성전 짓는데 진심이었습니다.
왜 성전에 이토록이나 진심이었을까요?
오늘 다윗의 마지막 기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쌓인 재물을 보고서!
다윗이 감동하여 기도를 시작하죠!
10절입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뭐라고 부르는지
10절 계속 보세요!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우리조상 이스라엘’이 누굽니까?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죠!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형 에서가 있었음에도!
태중에서부터 (어떤 선행이나 노력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 택함 받은 ‘언약의 자손’입니다.
그걸 좀 더 확장시켜서 말하면!
18절처럼 됩니다.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 조상들이요?
자기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고요!
하나님이 은혜로 택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신’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15절 보세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나그네고 거류민이고 그림자 같은, 희망 없는 존재’인데!
그런 가치 없는 존재를 하나님이 택해주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 되어주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는 ‘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겠어요?
‘하나님’이라는 거죠.
다윗이 ‘성전을 그토록이나 짓고 싶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석변이하는 ‘사람, 왕’이 통치하는 ‘왕궁’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전’이!
이스라엘의 중심 되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래서입니다.
10절~19절까지 이후 다윗의 기도를 잘 살펴보시면!
‘주님’이라는 표현이
무려 22번이나 나옵니다.
몇가지만 살펴볼까요?
11절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이렇게 시작해서!
18절 보시면!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여러분이 이 기도에서 ‘주’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만 치면서 읽어도
벌써 느낌이 다르실거에요.^^
12절 보세요.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부귀를 누가 주시나요? 누가 돈 벌게 하시나요? 누가 잘 살게 하시나요?
하나님이 주십니다.
12절 후반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사람이 크게 되는 것, 강하게 되는 것 역시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왕궁, 정치, 왕’이 아니라
‘성전, 예배, 주인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번영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하나님이 ‘건물 성전’에 거하셨다면!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 마음 성전’에 거하십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이 ‘건물 성전’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복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모시며,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다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이 열심이
저와 여러분 마음 속에도 불같이 일어나기를 소망하고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고, 일으켜주시는
복된 인생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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