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크리스천과 같은 고향 사람이었다.
고향 이름이 '멸망의 도성'이었던 것 같다.
믿음은
크리스천이 이곳을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뒤늦게 길을 떠나온 사람이다.
여기서 성도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는 종종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곤 한다.
이런 조바심이 위험한 것이
스스로를 낙담시키고
주변의 사람들을 정죄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번연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크리스천은!
그저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길을 떠났을 뿐이다.
그런데!
죄에서 떠나기 위한 개인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던 거다!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이 있었던 거다.
크리스천의 고민과 결단과 행동은!
그를 지켜보던 다른 사람의 결단으로 이어졌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코람데오)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
여러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 계속 ---
작가가 믿음을 등장시킨 이유가 있다.
믿음 역시도 크리스천과 같은 경로로
여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크리스천과 같은 경험을 한건
아니었다.
크리스천은 '낙심의 늪'에 빠져서 고생했지만,
믿음은 늪에 빠지지 않고 좁은 문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 믿음은
크리스천이 만나지 못했던 '바람둥이'라는
여자를 만나서 미혹을 받는다.
크리스천은 곤고산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계속 그 산을 올랐었다.
믿음은? 산 중턱에서
'첫 사람 아담'을 만나서 또 다시 미혹을 받는다.
아담의 미혹에 잠시 마음이 흔드렸던 믿음은
이후에 모세에게 붙잡혀서 두드러 맞는다.
마음으로 지은 죄도 죄이기 때문!
모세는 자비 베푸는 법을 알지 못한다며
믿음을 죽일 기세로 공격했다.
그 때에
'손과 옆구리에 구멍이 있는' 사람 즉, 주님께서
모세를 만류하셨고,
믿음은 계속해서 길을 갈 수 있었다.

또한 크리스천은 '아름다움'이라는 궁전에서
쉼과 은헤를 받을 수 있었지만
믿음은 그곳을 낮시간에 지났기에
그냥 지나쳐 갔고,
겸손의 골짜기에서는
또 다시 미혹을 받는다.
'불만'이라는 사람이 믿음에게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또, '수치'라는 사람은 종교를 의지하는 이들을
조롱하며 믿음에게 수치심을 주려 했다.
이처럼!
'믿음'이 지나온 길은 '크리스천'과 같은 경로였지만
그들의 경험은 전혀 달랐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
신앙의 길은!
모두가 똑같이 가는것만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경험을
저런 사람을 저런 경험을 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경험을 했음에도!
두 사람은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왜냐고?
신앙의 원리는 똑같기 때문이다!
세상에 속하지 말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가는 것 말이다.
크리스천의 길이 대적들과 싸우며 가는 길이라면
믿음의 길은 계속다가오는 미혹을 이기는 길이었다
우리 각 사람이 어떤 모양의 시험을 당할지라도!
신앙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면
넘지 못할 산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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