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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이란 

하나님께 헌신으로 드리는 돈을 말합니다.

 

헌금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이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대한

'동역'의 의미가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금은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억지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을 일이고

자신에게도 유익이 없습니다. 

 

자발적으로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기준도 없는 건 아닙니다.

확실한 기준은 '십일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시대에 십일조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성경에서 보통 '폐지'를 이야기할 때는 

'율법'과 관련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는요?

율법 이전 부터 있었던 헌금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생겨나기 

한참 전에!

그들의 첫 조상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멜기세덱' 왕에게 

십일조를 한 내용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 자신이!

십일조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십일조를 드리지 말라하지 않으시고!

십일조를 하되 '공의와 사랑'도 행해야 한다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부분 교단에서 

헌금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는 

'십일조와 감사 헌금을 비롯하여...'라고

가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는 

무엇의 십일조일까요?

어떤 분들은 

월급을 받은 후에 

이런저런 내역들을 다 떼고

남아 있는 '생활비'에 대해서만 

십일조를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만...

 

성경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런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농사를 지을 때에

첫 열매를 다 드린다거나!

전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십일조 역시 '수입 전체'에 대한 

십분의 일을 드림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렇게 드리는 십일조...

어떤 분들은요.

주로 십일조 규모가 크신 분들인 듯 한데

자기 십일조를 쪼개서 

좋은 일에 쓰면 

그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본인이 출석하는 교회가 아니라

본인이 아는 어려운 교회에 십일조를 한다거나!

유니세프 같은 단체에 십일조를 하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글세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걸 마치 '내것인양' 

내가 마음대로 여기저기에 베푸는 것은

온전한 헌금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헌금은 '예배행위'입니다. 

내가 예배하는 그 곳에서 드려야 할 것이지!

내 마음대로 하려든다면!

하나님 앞에 월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만일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십일조'를 손댈 것이 아니라

그 외에 다른 비용으로 돕는 것이

훨씬 건강한 헌금 생활이 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십일조는 신자가 해야 할 마땅한 의무임에도!

하나님은 드리는 자에게 

놀라운 복까지도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런 복이 있으니까 헌금하자'는 게 아닙니다.

사실 '헌금을 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특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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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에서 '생활'을 놓치곤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 

'의롭다 함을 얻고 천국 간다'

이정도는 알지만,

이후 '오랜 시간' 살아가는 일들에 

대해서는 30년을 생활 해도 모른다.

 

사사기 말씀에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오늘날의 신앙생활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장례식에 가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표현이

거의 표준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과연 신앙인에게 합당한가?

아니다. 

'명복'의 사전적 정의는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 이후'에는 

'영복'과 '영벌' 두가지 뿐이다.

'천국' 아니면 '지옥'이다.

'더할 수 없는 복'이거나

'복 없는 저주'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명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교회의 장로이신 분인데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인사를 하신다.

 

헌금에 대해 생각해보자.

십일조에 대해서 

오늘날에 여러 관점이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는 '합동 교단'에서는

십일조가 폐지 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십일조는 '율법이 오기 이전' 즉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바쳤던 것이 그 출발점이었고,

예수께서도 십일조에 대해

'이것도 폐하지 말라'하심으로 

십일조에 대한 계속성을 인정하셨다.

 

여기서는 십일조 폐지 여부를 

말하려는게 아니고,

당연하게 십일조가 교회의 

표준 헌금임을 인정하면서 

십일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십일조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정'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십일조를 '자신의 것'으로 

'적선하는 양' 하고 있다.

 

쪼개고 쪼개서

이만큼은 우리 교회에, 이만큼은 선교단체에

이만큼은 어려운 이웃에게...

 

좋은 마음인 걸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월권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 했는데,

마치 내것인양 기분을 내고 있는 것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십일조는 자신이 신앙생활하는 교회

'말씀 듣고'  '치리를 받는'

자신이 등록 되어 있는 교회에

조건 없이 드림이 기본이다.

 

 

이렇듯

신앙 '생활'에도 

'성경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터인데

많은 이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해 나가고 있다.

 

자, 이제 

정말로 기준을 세워야 할 때다!

일상에서,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 하나 기준을 세워야 할 때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확실히 

그러한 기준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점들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희생했다.

 

술, 제사, 주일지킴...

생각해보면 오늘날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이러한 기준들이

'기독교라는 신앙'을 

당시에는 뭔가 다른 종교로 보이게 만들었다.

적어도 오늘날처럼

물에 물탄듯

이도저도 아닌 

그저 '예수 천당'의 맹탕 공동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성경적인 신앙 '생활'은 무엇인가?

'성경적인' 기준을 바로 세우고

세상과 '다름' 

'구별됨' 

즉, '거룩'한 교회를!

다시 회복해야 하겠다.

 

누군가의 말대로 

'모든 것은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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