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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에서 '생활'을 놓치곤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 

'의롭다 함을 얻고 천국 간다'

이정도는 알지만,

이후 '오랜 시간' 살아가는 일들에 

대해서는 30년을 생활 해도 모른다.

 

사사기 말씀에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오늘날의 신앙생활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장례식에 가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표현이

거의 표준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과연 신앙인에게 합당한가?

아니다. 

'명복'의 사전적 정의는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 이후'에는 

'영복'과 '영벌' 두가지 뿐이다.

'천국' 아니면 '지옥'이다.

'더할 수 없는 복'이거나

'복 없는 저주'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명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교회의 장로이신 분인데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인사를 하신다.

 

헌금에 대해 생각해보자.

십일조에 대해서 

오늘날에 여러 관점이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는 '합동 교단'에서는

십일조가 폐지 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십일조는 '율법이 오기 이전' 즉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바쳤던 것이 그 출발점이었고,

예수께서도 십일조에 대해

'이것도 폐하지 말라'하심으로 

십일조에 대한 계속성을 인정하셨다.

 

여기서는 십일조 폐지 여부를 

말하려는게 아니고,

당연하게 십일조가 교회의 

표준 헌금임을 인정하면서 

십일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십일조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정'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십일조를 '자신의 것'으로 

'적선하는 양' 하고 있다.

 

쪼개고 쪼개서

이만큼은 우리 교회에, 이만큼은 선교단체에

이만큼은 어려운 이웃에게...

 

좋은 마음인 걸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월권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 했는데,

마치 내것인양 기분을 내고 있는 것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십일조는 자신이 신앙생활하는 교회

'말씀 듣고'  '치리를 받는'

자신이 등록 되어 있는 교회에

조건 없이 드림이 기본이다.

 

 

이렇듯

신앙 '생활'에도 

'성경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터인데

많은 이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해 나가고 있다.

 

자, 이제 

정말로 기준을 세워야 할 때다!

일상에서,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 하나 기준을 세워야 할 때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확실히 

그러한 기준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점들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희생했다.

 

술, 제사, 주일지킴...

생각해보면 오늘날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이러한 기준들이

'기독교라는 신앙'을 

당시에는 뭔가 다른 종교로 보이게 만들었다.

적어도 오늘날처럼

물에 물탄듯

이도저도 아닌 

그저 '예수 천당'의 맹탕 공동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성경적인 신앙 '생활'은 무엇인가?

'성경적인' 기준을 바로 세우고

세상과 '다름' 

'구별됨' 

즉, '거룩'한 교회를!

다시 회복해야 하겠다.

 

누군가의 말대로 

'모든 것은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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