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신명기20:1-9
 
하나의 구절에서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놀라지 말라'라고
말씀하실 정도라면!
이 말은 
역설적으로 
'겁나고, 두렵고,
떨리고, 놀랄만한' 상황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인가?
바로 '전쟁'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나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도 마찬가집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피할 수 없는 정복 전쟁입니다.
 
그것도!
약자가 강자를 정복하는 전쟁입니다.
40년간 광야 생활 했던 이스라엘은
전투를 연습한 일이 없습니다. 
무기요? 말과 병거요? 
전쟁 할 수 있는 어떠한 도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적군은 어떻습니까?
40년 전 가나안 정탐을 다녀왔던
열 정탐꾼이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민수기13: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32절 하~33절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자손의 
거인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
 
이 보고를 듣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졌고
믿음 없는 이 두려움 때문에!
이스라엘은 무려 40년간이나 
광야를 돌아야 했고,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심판받아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적들의 강대함은 여전합니다.
싸울만한 무기나 전력이 없는 이스라엘 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일방적인 학살을 당할게 분명한데
얼마나 겁이날까요?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적들앞에 놀라게 될까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격려하십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명령이죠.
즉 두려움은 불순종이라는 말이죠.

자,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1절 후반절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세요?
답이 1절에 있지요?
뭐라고 되어있나요?
"애굽에서 너를 인도하여내신"
출애굽의 하나님이십니다.
당대 최강대국이 애굽, 이집트입니다.
그 강대국 애굽을 열 재앙으로 초토화시키셨고
홍해를 갈라 자기 백성을 건지시고
동시에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수장시키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거에요!
반드시 이기게하신다는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자신감을 어떻게 나타내시는지 보세요.

먼저 생각해보시죠.
전쟁을 한다고 하면
일단 사람이 많은게 좋을까요,적은게 좋을까요?
당연히 많은것이 좋지요!
군인을 소집하는 징집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요.
어쨌거나 한 사람이라도 더 입대시키려 할겁니다.

제가 육군 만기 제대를 했는데요.
입대 전에는 어떻게든 안가고싶었거든요.
근데 제가 너무 문제가 없었던겁니다.
그래도 혹시나 신체검사에서 뭔가
하자가 있지않을까 기대했는데
결국 정상등급으로 입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올해 발바닥이 아파서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세상에...
제가 평발이었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제 때는 평발은 군 면제가 가능했거든요.

제 신체검사했던 군의관이
틀림없이 알았을텐데
그냥 정상인으로 찍어서
입대를 하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이게 징집관의 입장인거죠
'한 사람이라도 더 입대시키는 것'
한 사람이라도 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말입니다.

정작 하나님께서 징집관에게 명령하시는 건!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라도 더 

집으로 돌려보내라' 하시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신감이라는 거죠. 

 

오늘 본문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적어도 네가지 조건이 나옵니다.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요.

 

첫번째 집에 돌아가야 할 부류입니다.

5절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여기서 '낙성식'이란

'집을 짓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예식'을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오직 '성전과 관련해서만' 

이 단어가 쓰였고요. 

일반 개인의 집에 대한 '낙성식'은 

오늘 본문 이외에는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개인 소유의 집'에 대한 낙성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데, 

다행히 당시 문화에 대한 당시 문헌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낙성식'이라 하면 

가정의 가장이 '가족들이 새 집에 들어가서 정착할 때까지'

가정의 안정을 지키는 행위를 '낙성식'이라

인정했답니다. 

'낙성식'이라고 하지만 원문의 단어로 보면요!

'헌신하다' '개시하다' '시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일회성의 행사가 아니고!

훨씬 폭넓은 의미가 있고,

기간도 길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가장이 집을 짓고, 가족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어느정도나 시간이 지나야 이게 가능할까요?

굉장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작년쯤에 집을 지었어. 

그런데

아직 가족들이 자리를 못잡았네...

그러니 나는 집을 가야겠어'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겁니다. 

 

아닌 말로...

몇년 이내로 집 지은 사람들은 다 돌아가게 되는 거죠.

모인 사람들 중에 

'나는 낙성식을 아직 안 마쳤는데요?'

그러면 그들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요?

보내라 하시는 거에요.

상관 없다는 거죠. 

 

그렇게 큰 무리가 우루루 빠져 나갑니다. 

 

이것만으로도 당혹스러운데!

하나님은 두번째 집에갈 부류를 말씀하십니다.

6절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 계속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