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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29:1-19

 

버킷리스트라는 표현 많이 쓰시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목록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의 유래가 쪼금 섬뜩합니다.

 

중세 시대에 사형 방법 중에 교수형이라고 있어요.

목에다가 줄을 매는 형틀이죠?

목에 줄을 달고, 발 밑에 발판을 두는데, 그 발판을 버킷이라고 했습니다.

‘kick the bucket’이라고 버킷을 발로 차는 것으로 사형이 시작된 거죠.

 

그러니까...

버킷을 발로 차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 하고싶은 말...

이런 걸 후대에서 버킷 리스트라고 한 겁니다.

 

가벼운 표현이 아니구나싶으면서도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간절한 소원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말씀의 다윗에게도! 소위 버킷 리스트가 있었어요.

정말 죽기 전까지도 꿈꿨던 한가지 일!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도 봤잖아요?

다윗이 자기가 너무 성전을 짓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니까!

그러면 성전에 들어가는 재료라도 내가 구하겠다 해서!

만 얼만큼 구했다고 했지요?

10만달란트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비용으로 추산하면 632조원입니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준비해놓고도!

다윗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는! ‘이상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백성의 마음입니다.

 

백성들이요!

그저 나랏돈으로 웅장한 건물 하나 서는 걸 보면서!

아 멋지구나...’ 감상만 한다면!

그건 참된 성전일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이!!!!

이 성전을 향해야만!

그게 진짜 성전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에요!

다윗은 먼저 모범을 보입니다.

 

나랏돈뿐만 아니라!

다윗의 사유재산까지도 성전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3절 보세요!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라면서

4절에!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고 했습니다.

따로 계산은 안할께요.

다만, 1달란트가 63억이었다고 했으니까요.

삼천 달란트면 대략 얼마인지 나올 겁니다.

 

그만큼 내놓고 백성들에게 이야기하죠?

5절 후반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 건데...

 

이 요청을!

백성들이 압박감으로 느꼈을까요?

왕이라는 사람이 자기만 하면 되지 왜 백성까지 끌어들이고 그래?’

아니었지요!

오히려 백성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성전을 위한 헌물을 기꺼이 드리기 시작합니다.

 

6절을 보시면!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 (어떻게?) 즐거이 드리되!”

9절도 보세요.

백성들은 자원하여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그렇게 자원해서모인 재물이 금만 5000달란트입니다.

백성들이 정말 힘에 지나도록 엄청난 헌신을 한겁니다.

 

17절 후반절에 보면!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라고 하거든요!

백성의 헌신을 보고 다윗이 기뻐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마태복음6: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했거든요!

이토록 많은 재물을 드렸다는 건!

백성의 마음도 성전을 위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인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다윗은 왜!

이토록이나 성전을 짓고 싶어했을까요?’

아닌말로! 노년인 다윗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생전에 완공된 성전을 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성전 짓는데 진심이었습니다.

 

왜 성전에 이토록이나 진심이었을까요?

 

오늘 다윗의 마지막 기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쌓인 재물을 보고서!

다윗이 감동하여 기도를 시작하죠!

10절입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뭐라고 부르는지

10절 계속 보세요!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우리조상 이스라엘이 누굽니까?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죠!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형 에서가 있었음에도!

태중에서부터 (어떤 선행이나 노력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 택함 받은 언약의 자손입니다.

 

그걸 좀 더 확장시켜서 말하면!

18절처럼 됩니다.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 조상들이요?

자기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고요!

하나님이 은혜로 택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신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15절 보세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나그네고 거류민이고 그림자 같은, 희망 없는 존재인데!

그런 가치 없는 존재를 하나님이 택해주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 되어주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는 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겠어요?

하나님이라는 거죠.

 

다윗이 성전을 그토록이나 짓고 싶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석변이하는 사람, 이 통치하는 왕궁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전!

이스라엘의 중심 되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래서입니다.

10~19절까지 이후 다윗의 기도를 잘 살펴보시면!

주님이라는 표현이

무려 22번이나 나옵니다.

 

몇가지만 살펴볼까요?

11절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것이로소이다!”

이렇게 시작해서!

18절 보시면!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이것을 주의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돌아오게 하시오며

 

여러분이 이 기도에서 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만 치면서 읽어도

벌써 느낌이 다르실거에요.^^

 

12절 보세요.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부귀를 누가 주시나요? 누가 돈 벌게 하시나요? 누가 잘 살게 하시나요?

하나님이 주십니다.

12절 후반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사람이 크게 되는 것, 강하게 되는 것 역시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왕궁, 정치, 이 아니라

성전, 예배, 주인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번영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예수님을 믿는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하나님이 건물 성전에 거하셨다면!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 마음 성전에 거하십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이 건물 성전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복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모시며,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다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이 열심이

저와 여러분 마음 속에도 불같이 일어나기를 소망하고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고, 일으켜주시는

복된 인생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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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22:1-19

 

다윗하면 고생의 아이콘으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무엇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울에게 쫓겨 다닌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다만, 나중에 사울을 이어 왕이 된 이후에는!

그야말로 탄탄대로 꽃길만 걸었습니다.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했고요,

전쟁이 끝날 때마다 엄청난 전리품들로 나라가 점점 부강해졌습니다.

나중에는 이스라엘보다 큰 나라들도

이스라엘에 경쟁적으로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40년 가까이 살아갔습니다.

이제는 옛날 고생은 생각도 안났을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어떻게 호의를 받기만 하고살겠어요?

받은게 있으면 주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다윗도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니... 내가 수십년간 하나님께 과분한 은혜를 받았는데!

나도 하나님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생각이 든 게 이겁니다.

! 그러고보니

하나님의 언약궤가 휘장(즉 텐트) 안에만 있었구나

내가 번듯하게 하나님의 집을 지어서!

그 언약궤를 하나님의 집에 두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성전이에요.

 

성전 짓는 일이요?

사실 다윗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 나라에 돈은 넘치도록 있었고요!

- 능력 있는 일꾼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 수많은 나라와 교역했기 때문에!

성전에 필요한 자재도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2-4절 볼께요.

“2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3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4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사람이야, , , 목재를 많이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이게 얼마만큼 많이인가!

그걸 또 친철하게 알려줍니다.

 

14절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십만 달란트를 준비했다 하는데요.

이게 오늘날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보면 깜짝 놀랍니다.

1달란트가 무게가 34.37kg이랍니다.

그람 수로 하면 1kg1000g이니까... 34,370g이죠.

순금 13.75g 가격이 69만원이에요.

1달란트 34,370g1돈인 3.75g으로 나누면 9,165돈이 되요!

9,165돈에 69만원을 곱하면, 1달란트 가격이 나오죠?

632400만원이 됩니다.

이게 금 1달란트 가격이에요!

그걸 몇 달란트 준비했다고 했죠?

10만 달란트입니다.

곱해볼까요?

632조원 입니다.

!

이게 얼마나 큰 금액인지 가늠이 되세요?

대한민국 2024년 작년 예산이 656조였답니다.

그만큼이나 되는 을 모았다는 거에요!

 

그것도 만 그렇습니다.

백만 달란트라고 하는데...

금과 은의 가치 차이가 10배였다고 하니까요.

결국 은도 650조였던 거네요.

1516절까지 쭉 읽어볼께요.

“15 또 장인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16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라

 

원자재 뿐만 아니라!

석수 목수 할 것 없이!

성전 지을 작업자들도 충분하게 있었습니다.

 

이정도 예산과 인력이면!

성전 세우는데 어려울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윗에게는요!

성전을 세울 능력도 있고,

무엇보다 본인이

자기가 성전 짓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면 할만도 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요! 그걸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성전 건축을 허락 안하시는 게 아니고,

다윗이!!!! 성전 세우는 걸 막으셨습니다.

 

왜냐!

8절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런 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는 전쟁이었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다윗은요! ‘전쟁 시대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올 때까지!

싸우고, 이기고, 정복하는 전쟁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은!

평화 시대의 상징이어야 했습니다.

정복시대의 대표자인 다윗은!

성전 건축에 부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윗은 성전 건축에서 탈락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려 하시는데!

그가 바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전쟁 후 평화시대의 대표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9절과 10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9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할 평화의 인물로 솔로몬을 지목하셨습니다.

성전 건축은 솔로몬이 하게 될 겁니다.

 

다만! 솔로몬에게는

한가지 염려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과연 솔로몬에게 거대한 성전을 지을만한배포나 능력이 있는가!”

 

적어도 아버지 다윗의 눈에는 이 아들이 미덥지가 않았습니다.

5절 볼께요.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솔로몬이 어리고, 미숙하다합니다.

 

다윗의 머릿속에는

이미 성전에 대한 그림이 있었어요.

역대상28:19절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다윗 머릿속에 도면을 넣어주셨는데!

이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었던 겁니다.

앞에서

다윗이 금만 630조원 되는 만큼을 모았다고 했는데!

이만큼은 있어야 된다고 판단해서 모은 돈이라는 거에요!

 

이토록 큰 프로젝트인데!

아버지 다윗이 보기에!

아들 솔로몬에게 이런 웅장한 건축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는 겁니다.

어리고, 미숙하다하죠.

 

그럼에도!

하나님은 어리고 미숙한

솔로몬을 통해서 자신의 성전을 세우신다 합니다.

 

여러분 이게 성경이 주는 도전입니다.

 

성전 도면을 하나님께 직접 받고!

그 성전을 세울 금630조원 어치를 모을만큼 대단한 능력자가 다윗입니다.

그걸 다룰 수 있는 어른이 다윗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굳이 어리고 미숙한솔로몬에게 그 엄청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다윗에게는 다윗의 역할이 있었던 거고!

솔로몬에게는 솔로몬의 역할이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일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죠.

나는 아직 어리고, 잘하는 것도 없고, 부족한데...”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역할이 있다는 겁니다

 

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공부할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세요.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삶이 힘들어질 때!

그 힘듦까지도 하나님께 맡기세요!

시편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러분의 인생이 기대로 가득차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이루실까?’

이런 기대로 평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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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6:1-14

 

오늘 설교는 내용은 쉬운데, 설교하기에 난이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왜냐하면... 에스더 전체 스토리를 알아야 뭐라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그냥 오늘은 에스더 이야기를 쭉~ 해드릴께요.

에스더 이야기를 아는 것 만으로도

우리 신앙에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먼저

시대는 이스라엘이(정확히는 남 유다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망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를 1차로 돌려보낸 이후입니다.

 

장소는 페르시아고요!

주인공은 이스라엘 여인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어릴 때 부모님이 다돌아가신 고아였고요.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에스더를 키웠습니다.

근데.. 에스더는요 엄청난 미인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봤을 때도 에스더가 무척 예뻤던 겁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황제가 왕후를 뽑는콘테스트를 했을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 등을 떠밀었습니다.

너라면 충분히 왕후가 될 수 있어!’

그 말대로!

에스더는 당당히 1위를 해서 왕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다만, 콘테스트에 등록할 때, 그 출신을 밝히지는 않았어요.

포로출신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경쟁에 불리할 것 같았거든요.

 

이후 모르드개는 대궐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었어요.

모르드개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데요!

왕의 내시 두 명이 대궐 문앞에서 왕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했는데...

우연히 모르드개가 그 이야기를 들은거죠!

그 정보를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줬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전달했어요.

덕분에 왕은 두 내시를 잡고 위험을 피할 수 있었어요.

이정도 공을 세웠으면!

고급 정보를 준 모르드개에게 큰 상을 줘야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 그런데...

당시에는 왕이 아무 보상도 안해주고,

그저 궁중일기에 이 사건만 기록으로 남기고 넘어가버린 겁니다.

모르드개 입장에서는 참 섭섭했을겁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내가 왕을 살렸다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을 노릇이죠.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닥쳐요.

이스라엘과 옛날부터 적대적이었던 아각족속(아말렉)하만이라는 사람이

페르시아 고관대작이었거든요.

이 사람이 지나가면 백성들이 절을 해야 되었는데...

모르드개는 하만이 적대 민족 사람이다 보니까!

절하지 않고 뻣뻣하게 서 있었던 겁니다.

하만이 기분이 엄청 상했어요.

그래서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해서

모르드개가 속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말살시키는 조서를 발표하게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죽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부 난리가 났죠.

이런 상황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난감하게도!

에스더도 왕의 앞에 잘 못나가고 있었던 기간이었어요.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후라도 함부로 왕 앞에 나가면 안되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자기 상황도 어렵다고 하소연하죠.

 

이 때!

교회 안다니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 유명한 대화가 나와요!

에스더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니가 왕후가 된게!

단지 니 미모 때문만 이었겠냐?

니가 지금 그 자리에 있는건 뭔가 목적이 있는게 아니겠느냐!

라고 하자!

에스더도 마음에 불이 붙었죠!

그래서 사촌오빠에게 답을 보냅니다.

에스더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이 때부터 반전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3일을 금식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갔죠!

놀랍게도

왕의 눈에 ‘3일 금식하고나온 에스더가 눈부시게 아름다워보였던 겁니다.

아니 ‘3일이나 굶고 푸석푸석한 사람이 뭐가 그리 이쁘겠어요?

이쁘게 보였다는 것 부터가 벌써 기적이에요.

에스더에게 반한 왕이 자기 황금 지팡이를 에스더에게 내밀고 말합니다.

사랑스러운 아내여 무슨 일로 내게 왔소?

말만하시오! 내가 나라의 반이라도 당신에게 주겠소!”

그랬을 때, 에스더의 말이 뭔가요?

바로 우리 민족 살려주세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원수 하만 앞에서 3자 대면을해서 하만의 악함을 드러내야 했거든요.

그래서 말합니다.

 

왕이여! 제가 오늘 왕을 위해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왕이 아끼시는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여해주십시오

그래서 왕은 즉시 하만을 잔치자리에 불렀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잔치 후에 왕이 다시 물어보죠!

에스더여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오?’

에스더의 답입니다.

왕이여 내일도 잔치를 열테니 내일도 다시 한번 하만과 함께 와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하만이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왕과 왕후가 나를 이렇게 지지해주는 구나!’

이제 이 나라에는 나를 대적할 자가 없다! 저 얄미운 모르드개만 빼고!’

그래 오늘 밤에 미리 사형틀을 만들어놓고!

왕과 여왕에게 모르드개를 죽여달라고 청해야겠다생각을 한 겁니다.

그렇게 악한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으로 들어온 겁니다.

61절이요!

그 날 밤에!”

자 그날 밤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아니~ 그날 밤에 잠이 안왔데요!

, 잠이 안올 수 있죠.

그런데!

잠이 안와서 갑자기 왕궁의 역대 기록물을 잃겠다한 건 좀 특이하죠?

그것도 그럴수 있다 치고요.

무엇보다...

수천명이 생활하는 왕궁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었을 것이며

하루에만도 얼마나 많은 기록이 새로 생기겠어요?

그런데!

그 많은 기록물 중에서도 콕 짚어서 읽은 내용이 뭐였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 모르드개

내시들의 왕 암살 기도를 막았던 그 내용을 딱 펴서 읽게 된 거에요.

? 나를 살려준 사람이 있었다고? 그 때 그 사람에게 상을 줬느냐?”

아니요,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가 이런 결례를 행하다니!’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했는데!

마침 궁궐 마당에 모르드개를 죽일사형틀을 세우고 있던 하만이 있었던 거죠!

 

왕이 하만에게 묻습니다.

6절부터 보세요.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그게 누구라고는 하지 않고!

그저 왕이 존귀하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만 물었습니다.

그 때 하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답하는가!

6절 중반절부터 쭉 볼께요!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하게 하소서 하니라

자기가 받고 싶은 대우를 말하죠.

거의 왕 대접 받고 싶다는 말을 한 겁니다.

 

그러자! 왕이 어떻게 말합니까?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던 하만

오히려 모르드개를 왕의 말에 태워서

모르드개 만세를 외치게 되었던 겁니다.

 

모르드개 입장에서는 이런 치욕도 없는거에요.

그런데...

이건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방금 당한 치욕스러운 일을 가족에게 전하고!

가족들이 이렇게 말하거든요!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당신이 오히려 그 앞에 엎드러질 거에요~’

당신 어떻게 할거에요?’라고 말하자 마자!

이 때부터 심판의 시간표는 빠르게 움직입니다.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마음에 준비할 틈도 없이!

하만은 멸망당할 자리로 끌려갑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는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될 것 같애요.^^

 

중요한 건!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모의했던 시간에

바사왕은 잠이 오지 않아 왕궁 일기를 읽었고

그 많은 문서들 중에 모르드개가 세운 공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에스더가 하만을 부른 두 번째 잔치날이었고요.

이 날에 하만의 악행이 드러나고,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형틀하만이 달리게 됩니다.

 

이 모든 사건이!

그냥 보면 우연에 우연이 겹친건데요.

에스더는 말하는 겁니다.

이건 하나님의 필연이다.’

하나님에게는 우연이 없다는 말인 겁니다.

 

그거 아세요?

에스더는 성경의 한 파트인데도 불구하고!

한번도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안나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책이 에스더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에요!

교회 밖에 나가면 어디서든 하나님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수 믿는 친구들도 점점 없어지고 있지요.

그러나,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은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요 우연이란 없습니다.

에베소서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필연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시간표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항상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우리가 있다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한주간 가능하면 에스더 재미있으니까 꼭 한번 읽으시면 좋겠고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침없이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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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49-64

 

no pain, no gain이라는 서양의 속담이 있습니다.

고생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지요.

인생에서 뭔가를 얻고자 하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볼까요?

여러분이 만일 어떤 모양으로든 고생을 하고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뭔가 얻을 것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여러분이 어른이 되는 과정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냥 세월이 가면 어른이 되는게 아니더라구요.

누구나 성장통이라는 걸 겪습니다.

 

-부모님과 관계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친구관계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자괴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공부에, 진학에, 건강에...

이런 저런 일들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좌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견디면서!

어른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에!

어른들은 웬만한 어려움을 버티고 사는 거죠.

 

 

물론! 고난을 견딘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쉬웠다면 그걸 고난이나 고통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거에요!

 

오늘 말씀은!

그런 고난의 시간을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거죠!

 

바로 본문을 볼까요?

49절입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말씀소망입니다.

소망과 비슷한 단어로 희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소망과 희망의 차이점이 있다면!

둘다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지만!

희망이뤄질 수도 있고,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는불확실한 기대에요.

... 이렇게 되면 좋겠다라는 정도의 바램인 거죠.

반면 소망은요!

바램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반드시 이뤄주실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믿음에 기대가 소망입니다.

생각해보면!

희망고문이라는 말은 있지만!

소망고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5:3,4절은요!

소망이 있는 사람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한 겁니다.

본문으로 볼까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게 소망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 50절 볼까요?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나를 살리셨고!

그 말씀이 나를 살게도 하실 겁니다.

 

그러니...

인생에 가장 어리석은 일이 있다면 이 말씀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51절이요!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교회믿음이니 말씀이니...

세상 사람들이 조롱할지 몰라도!

나는 이 말씀만을 붙잡겠다는 겁니다.

 

언젠가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자기는 세상 유행을 따르지 않고

변함없는 말씀만 따르겠다고 고백한 겁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사람은요!

항상 말씀으로자기를 다잡습니다.

52절 볼게요.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스스로를 격려했다는 말이죠.

괜찮아! 나는 이겨낼거야.’

이런 상황도 넘어설 거야!’

하나님이 약속하셨어!’

전능하신 그분이 나와 함께 계셔!’

 

신약시대로 넘어와볼까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온 백성의 여론이 바울을 죽이는 방향으로쏠려 있어요.

바울은 죽음을 피할 수 없어보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23:11절이에요.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너에게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죽지 않는다! 담대하라!’

말씀을 듣고나서 바울이 어떻게 했겠어요?

그래, 주님이 죽지 않을 거라 약속했어! 나는 괜찮을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했을 겁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평생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갔습니다.

바울이 죽기 직전에 했던 말이 이거에요!

디모데후서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게 말씀 있는 사람의 큰 특권이에요!

 

말씀을 특권이라 여기는 사람은!

삶이 말씀 중심일 수 밖에 없습니다.

 

54절 보세요!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이 표현이 되게 재미있어요!

보세요.

나그네는 어떤 사람입니까?

집을 떠난 사람또는 집이 없이 다니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나그네 된 !에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집에 있는데 나그네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에요?

집에 있다고 해서 나그네가 아닌 건 아니다!

집에 있어도! 나는 나그네라는 거죠!

우리네 인생이 나그네라는 겁니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고,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내가 누리는! 집이건 무엇이건...

그건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같은결국 내것이 아닌 재물일 뿐입니다.

 

이런 세상살이에서!

우리의 소망이 뭐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요!

그래서입니다.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 ‘하나님의 말씀들 만이나의 노래라는 겁니다.

 

내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건!

얼마나 벌었냐? 얼마나 가졌냐?’ 이런게 아니라...

오직 말씀대로 살아간 흔적들 뿐인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55-57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말씀의 사람들은요!

진심으로 이렇게 살아갔습니다.

말씀을 내 소유로 여기고, 그걸 분깃(상속 재산)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말씀이 재산이다!’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말씀대로 은혜를 베푸소서!’

 

아무나 하는 말이 아니에요!

진정, 말씀으로 살아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 겁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나그네 같은 인생에 감사할 일들이 생겨납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그를 끌어 올려주십니다.

 

이런 간증이 있는 사람은요!

자다가도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 이런 사람들이 함께 모인곳이 어디에요?

교회에요!

교회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말씀 안에서 즐거워하고!

말씀으로 서로 격려하고!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는거죠!

63,64절입니다.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주영광교회 중고등부에 불러주시고!

이렇게 말씀을 나누게 하신 건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이 말씀과 함께!

인생에 가다올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우리 중고등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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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5:2-6:3

 

gpt한테 ‘k-pop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가 뭐냐?’고 물어봤어요.

-gpt가 뭐라도 답했을 것 같애요?

사랑이라고 했어요.

 

사랑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많은지!

이 주제를 구체적으로 쪼개도 각각의 주제들이 다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1등은 애틋한 사랑과 설렘이고

2등은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

3등은 짝사랑과 안타까움

4등은 만남과 재회’...

이런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신기하죠?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추구하고 산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사랑이시거든요!

요한14:8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이신 하나님이!

태초에 남자를 만드셨어요.

세상에 남자만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그래서 그 다음에 하신 일이 뭐에요?

아담의 갈비뼈를 토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함께 살게 하셨어요.

그제서야! 하나님은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묶이는 동인이 뭐겠어요?

사랑인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을 알든 알지 못하든!

사랑을 추구합니다.

노래를 만들어도 사랑이 주제가 됩니다.

 

노래중의 노래가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사랑 노래라고 할 겁니다.

 

그래서입니다.

성경에도 노래중의 노래가 있으니!

바로 아가서입니다.

아가라는 말의 한자 뜻이 뛰어난 노래라는 의미고요.

히브리어 원어로는 쉬르 하쉬림이라고 하는데!

이걸 영어로 번역하면 ‘Song of Songs’입니다.

아가라는 말 자체가 노래중의 노래라는 의미에요.

 

그리고 그 주제는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어떤 목동의 사랑을 노래한 책이에요.

 

다만!

이 책은 어른들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요.

남녀가 서로의 몸에 대해서 신체적으로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게 다 비유면서도 상당히 직접적입니다.

 

그래서에요.

전통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30세 이전에는 아가서를 읽지 못하게 한답니다.

19금도 아니고 무려 29금이나 되는 책입니다.^^

 

 

다만!

이 말씀이 성경에 들어간 것은!

단순히 남녀의 사랑’ ‘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려는 겁니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과 교회부부의 관계로 종종 설명해요.

에베소서5:31,32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부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을 볼께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요.

이게 처음에는 얼마나 설레고 기대가 있는지 모릅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빨리 집에가서 배우자를 만나고 싶고요.

빨리 주말이 와서 데이트도 하고싶어집니다.

상대편이 일이 많아서 늦게 오면!

상대가 올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기다리기 일수에요.

 

다만...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면 그런 감정도 조금식 사그라듭니다.

심할 경우에는 상대편이 늦게 집에 들어와도 그다지 신경안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권태기라는게 찾아오죠.

 

오늘 말씀은

권태기까지는 아닌데요...

약간 상대방에 대해서

살짝 열정이 식은 어느때의 이야기입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술람미 여인도 피곤하여 잠에 들었을 때입니다.

이게 꿈인지, 꿈이 아닌지 싶은데...

 

늦은시간에 남편이 집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2절 보세요!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 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중동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거든요!

그래서 밖에서 밤 늦은시간까지 활동하다보면!

밤 이슬이 머리에 맺힌다고 합니다.

그리 될 정도로까지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지금이야...

번호키를 누르거나 하면 되겠지만!

그 옛 시대에 그런게 어디있겠어요? 안에서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전같으면 아무리 늦어도

남편이 문을 두드리면 뛰어나갔을 아내인데!

지금은 몸이 너무 무거웠어요.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꿈결에 잠결에 못일어나고 있습니다.

 

한참을 정신 못차리다가

나중에서야 일어나서 문을 열러 갔습니다.

그런데...

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남편이 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다 지쳐서 어디론가 간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후회가 밀려옵니다.

6절 후반절이요.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내정신이 아니었구나...라는 후회의 표현)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아무리 찾아도 남편이 보이지 않아요.

 

성읍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다가...

문득 남편을 생각합니다.

9절 보세요.

여자들 가운데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머릿속에 든 질문이었겠지요.

 

우리 남편?’

10절에서 15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피부가 하얗고요.

곱슬거리는 머리는 진한 흑발이고요.

눈동자는 비둘기처럼 맑고요.

뺨도 보드랍고, 붉은 입술은 백합화처럼 매혹적입니다.

몸은 상아에 청옥을 입힌든 단단하고, 다리는 백향목 나무처럼 튼튼하고요,

그의 입은 항상 나에게 달콤한 말을 해 줍니다...

이게 내 사랑하는 남편이에요.”

낮뜨거운 말들을 하는데...

신기한 건요!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지, 애절함이 더 커져 갔던 겁니다.

 

그리고 6장으로 넘어가면요!

2

아내가 드디어 남편을 찾아냈습니다.

남편은 동산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양떼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백합화를 꺾고 있습니다.

문도 열어주지 않았던 아내를 위한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가

3절에서 이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아내는 잠시 남편에게 소흘했고,

그로인해서 오랜 시간 남편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남편을 찾으면서

그의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앞에서...

아가서의 부부 관계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잖아요?

 

요한계시록 320절에 보면요!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런 경고를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교회이니까!

당연히 예수님이 이 교회 안에 계실거라 생각했었는데!

예수님은 교회 문 밖에 서 계십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시고 문을 두드리십니다.

이 문은요!

안에서 열어야만 열리는 문입니다.

예수님께 반응을 해야 주님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교회 건물의 문을 두드리시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각 사람의 마음 문을 주님은 그렇게 두드리십니다.

 

교회인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주님이 내게 어떤 분인지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기도로 주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회복하여, 주님과 떨어지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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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4:1-12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에요.

 

성탄절’ ‘추수감사절’ ‘맥추절같은 절기들 중에서도...

기독교의 가장 큰 절기가 부활절입니다.

 

부활은 주님이 죽음을 이기신 사건이고!

주님과 함께 우리가 죽음을 이긴 사건입니다.

 

바로 그 상징으로!

부활절에는, 모든 교회가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지난주에 성찬식의 의미를 알려드렸죠?

예수님의 살과 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결국 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앙고백인 겁니다.

 

다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따로 지키는 것에 대해서

크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가장 강력한 날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어떤 날일까요?

보통은 일요일이라고도 하는 주일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원래 구약시대에 안식일토요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요일안식일로서 목숨처럼 여기고 지켜왔습니다.

 

현대의 종교단체 중에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이단이 있습니다.

물론 토요일을 지켜서이단은 아니고요,

다른 이단성이 있는데 토요일을 그들의 안식일로 지키는 거.

 

그런데

그분들하고 이야기하면!

꼭 안식일을 가지고 공격합니다.

성경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했는데

왜 당신네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느냐?

일요일은 로마가 지키던 태양신의 날인데

그 날을 지키는 건 잘못된 거다!’라고 하거든요.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보면!

네 개의 복음서가 공히

예수 부활의 날을

안식후 첫날그러니까 토요일 다음 날일요일’, ‘주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성경본문으로 볼까요?

마태복음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마가복음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누가복음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네 개의 본문이 안식 후 첫날을 강조하는 건!

이 날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인 겁니다.

그 의미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일요일을 교회 회집의 날로 지키게 됩니다.

사도행전20:7절 볼까요?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여기서 그 주간의 첫날이 언제입니까?

안식일이 창조의 마지막 날이고, 토요일이니까요!

그 주간의 첫날은 일요일이 되는 겁니다.

그 날에 초대교회가 모였습니다?

뭘 하려고요?

떡을 떼려고.

여기서 떡을 뗀다는 말은 성찬식을 한다는 말입니다.

 

성찬식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무엇보다 부활을 기념한다는 의미지요!

 

바로 이런 의미들을 근거로 해서!

초대교회로부터

역사상의 교회들은!

일요일주일로 지키면서!

이 날에 부활을 기념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앞서 말씀 드렸던 것 처럼!

매주 주일이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

그렇다고 부활절 지키는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부활절이라도 있어야

부활에 대해서 좀 더 특별히 생각하는 면도 있습니다.^^

 

 

부활 절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요.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활의 첫 증인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도 그렇고요.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네 개의 복음서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증인이 여성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 누가복음부터 볼까요?

누가복음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마태복음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여성들이)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마가복음 16:1,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이 여성분들이 어쩌다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건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날이

안식일 전날 금요일이었습니다.

그 날 새벽까지!

예수님이 죽게 되실 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에! 예수님의 사형이 선고되고요!

금요일 아침 9시 경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 때로부터 약 6시간이 지나서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해가 지면서부터였습니다.

왜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라라고 하거든요.

오늘날에야 정확한 시간 개념이 있으니

12시가 되면 날이 넘어간다 하지만, 고대사회는 안그랬거든요.

오후 6시쯤이 되면 벌써 다음날이 되는거에요.

 

예수께서 오후 3시에 돌아가시고 나서!

3시간 정도 후에 해가 지면!

안식일인 토요일이 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모든 일을 멈춰야 됩니다. 안식일이니까요!

 

그러니 유대인들로서는 일정이 급했어요.

돌아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만든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죽은 사람의 몸에 향료를 발랐는데!

예수님을 따랐던 여성들이 급히 향료를 구했던 것 같애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없었던 겁니다.

그저 향료만 구해놓고!

안식일을 보내고서!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 무덤에 왔던 거죠.

 

그런데!

무덤을 지키고 있어야 할 로마 군인이 없습니다.

이건 뭐지? 싶었는데!

동굴을 막고 있던 거대한 돌이 옆으로 굴려 있는 겁니다.

마가복음16:3,4절 볼까요?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이건 또 뭐지?’

무덤에 들어가보았는데!

무덤 안에 시체가 없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오늘 말씀 4!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천사들을 만나고!

천사의 선언을 듣게됩니다.

5,6절이에요.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예수께서 이전에 계속 말씀하셨던 대로! 다시 사셨다 한 겁니다.

 

이 말을 듣자 마자!

여자들이 사도들에게 뛰어가서

이 소식을 전하거든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우리가 무덤에 갔는데

예수님의 시신을 보지 못했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이 사셨다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사도들이 그들의 말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세요?

오 정말입니까?’

할렐루야!’

그러지 않았습니다.

11절 보세요.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허탄하게 들렸다고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고대사회에서는 여자들의 증언을 신빙성있게 받지 않았어요.

여자와 어린 아이를 사람 수에도 치지 않았던 시절이거든요.

여자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어?’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들이 이렇게 반응했다면!

사복음서를 처음 접했던 고대의 사람들은 어땠겠어요?

어떻게 여자들의 증언을 성경에 기록해놨지?”

 

어떤 의미에서!

실제 여자들의 증언이 사실이었더라도!

당시의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의 증언 이야기는 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여성 증인들의 내용을 사복음서가 공히 적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누가 증거 했다고 해서 부활이 사실이고 아니고가 결정되는 건아니에요!

부활은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당시에 소외받던 소수의 여성들을!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해마다 부활절이면요.

한국교회 교단들은 몇 만명, 몇십만명이 모여서부활절 연합예배로

세를 과시합니다.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첫 번째 부활절 아침처럼...

소수의 몇몇명이라 할지라도...

매 주일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우리의 작은 모임이 더 귀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이라는 시간에 잇대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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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2:1-23

 

다음주일이 부활주일이고 성찬식도 있어서...

오늘은 성찬식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성찬식이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모든 교인들이 떡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식입니다.

여기서 은 예수님의 찢기신 살을 상징하는 거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이 성찬식에는

세례입교를 받은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물로 죄를 씻는 상징인데요.

주로 목사님이 물을 머리에 얹거나,

침례교에서는 아예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세례는

이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 받았다는 교회의 공적 선언입니다.

 

여기서 생각해볼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하셨다면!

그 구원은 취소가 될까요? 안될까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했다가, 취소했다가, 또 구원 했다가...

이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에요!

세례는

인생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요...

여러분은 어린 아기 때 유아세례를 받았죠?

태어나서 2년 이내에 베푸는 세례를 유아세례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아직 복음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왜 세례를 주는가 하면요.

이 아이도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이고,

이 아이를 믿음으로 키우겠다는 언약적 차원에서 세례를 주는 겁니다.

 

다만!

구원은!

부모의 믿음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믿음으로 받는거잖아요?

그래서 그 아이의 믿음을!

교회가 한 번 더 확증해주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이미 아기 때 세례를 받았거든요!

세례는 평생 한 번만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입니다.

세례를 받은 아이는

15세 생일이 지나고 나면!

입교를 하게 됩니다.

모든 교인들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하고!

교회의 공식적인 일원으로 받는 겁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성인식입니다.

실제로도 그런게!

세례나 입교를 받은 사람은!

그 때부터 교회에서 투표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님 청빙투표같은 것 있잖아요?

그 투표자의 자격이 세례, 입교인입니다.

 

무엇보다!

세례, 입교를 받은 사람은!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례나 입교를 해야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 성찬식 정말 중요한 예식입니다.

세례 성찬은 예수님이 직접 지정하신 두가지 예식이에요.

오늘 17-19절 말씀을 볼까요?

이에 잔을 받으사(포도주)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게 역사상 최초의 성찬식 선언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성찬을 지정하셨고!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은

이 성찬을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 까지지키도록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전서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후에 교회가

이 성찬식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보면요!

교회 권징의 거의 최종 보루로 둘 정도입니다.

 

나라에 법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도 교회 헌법이 있거든요.

그 법에!

교회에서 죄 지은 사람은 이렇게 벌을 주라 하는 권징의 순서가 있어요.

 

잘 들어보세요.

다 한자어여서 한자를 알면 어떤 벌인지 알 수 있어요.

 

첫 단계는 권계에요.

권면하고 훈계한다는 말입니다.

좋은 말로...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안됩니다...’라고 훈계하는 게 권계에요.

 

그런데도 말을 안듣는다?

두 번째 단계는 견책입니다.

여기서 책망할 때’ ‘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좋은 말이 아니라 혼을 내라는 거죠.

단호하게 그러면 안됩니다! 정신차리세요!’라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혼내는 겁니다.

 

그래도 회개를 안한다?

세 번째 단계 정직입니다.

직분을 정지한다는 겁니다.

직분이 있는 사람은 그 직분의 일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대표기도를 못하게 한다거나, 교회 봉사를 못하게 하는 거죠.

 

... 그런데도 회개를 안한다?

네 번째 단계는 면직입니다.

직분을 박탈하는거에요.

집사, 장로, 목사라고 하는 직분을 떼버리는 겁니다.

일반평신도가 되는거죠.

 

여기까지 했는데도 잘못을 인정안해요?

그러면 드디어!

수찬정지를 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그렇게 수찬정지를 해도 회개 안한다?

최종적으로 출교를 합니다.

교회에서 쫓아내는 겁니다.

 

수찬정지 다음 단계가 출교지만,

수찬정지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사망 선고이고요.

출교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를 떼 낸다는 점에서!

사실상 수찬정지가 가장 강력한 징계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중세시대에는

왕조차도! 교황이 수찬정지령을 내리면 두려워 떨었습니다.

수찬정지는 영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면!

성찬식이 도대체 어떤 의미길래!

교회가 이렇게까지 소중히여기는 걸까요?

 

우선은 기념입니다.

이건 예수님도 하신 말씀이죠!

19절이요.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생각해보면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이 날이 유월절만찬입니다.

유월절이 어떤 날이에요?

먼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였을 때!

모세를 통해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고!

이스라엘이 자유를 얻게 되는데!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애굽 땅에 있는 장자들이 다 죽는 재앙이었지요.

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아 했는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갔다 해서!

넘을 유, 넘을 월자를 써서 유월절이라 합니다.

 

!

유월절의 밤이 지나면

쫓겨나듯이 애굽에서 나오게 될 겁니다.

그래서에요!

모세는 내일이면 당장 우리가 출애굽할거고!

그러면 먹을 것이 없을테니까!

너희는 무교병을 구워서 준비하라 한 겁니다.

원래 빵을 만들려면 빵을 부풀리는 이스트(누룩)를 넣어야 되는데!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급히 만들기 위해서!

이스트 없이 빵을 구우라 했던 겁니다.

그게 무교병이에요!(없을 무, 누룩 효, 절기 절)

 

무교병을 구워 먹었던 때를 기념해서!

후대의 이스라엘은 매년 유월절을 기억해서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월절 무교병 먹는그 때에!

예수님은 새롭게 구원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지정하셨습니다.

그 날 밤이 지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예수님의 피로 인해!

죽음지옥

예수 믿는 사람을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2000년 전 죽음과 지옥이 넘어간 사건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다만!

성찬식은 기념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예수님은!

이 떡을 내 몸이라 하셨고,

포도주를 내 피라 하셨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

가르칩니다만, 그건 아니고요.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단순한 음식을 먹는게 아니고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성찬식 때 보면...

떡과 잔을 먹으면서 감정에 북받치고, 은혜 받는경험을 종종하게 됩니다.

 

성찬식은!

주님을 경험하는 특별한 예식입니다.

 

여러분이 속히 입교공부를 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입교를 받으시기를 바라고요!

교회의 일원으로서 성찬식이라는 특별한 예식에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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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9:28-48

 

보통의 아빠들이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저도 자동차에 관심이 많습니다.

차 모양을 보면 차가 어디 회사 차인지, 모델명이 뭔지까지 웬만하면 다 맞춥니다.

아마 여러분 아빠들도 거의 그러실거에요.^^

 

예전에는 세단이라고 해서 보통 승용차라고 하는 차량을 많이 선호했는데,

최근에는 suv라고 차체가 높은 패밀리카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요즘엔 길에 보면!

세단보다는 suv가 더 많이 보일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그거 아세요?

suv차량을 구입할 때는 한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 처럼!

suv차량은 차체가 높고 힘이 좋고 튼튼하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나라에서 전시용 차량으로 징발을 합니다.

차주에게는 매년 고지서가 발부되는데,

전쟁 발발과 동시에 차주는 지정된 장소에 차량을 가져다 두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바로 그런 규정에 해당됩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입니다.

이전에 오실 때만 해도 일반사람들처럼 성을 드나드셨는데,

이번에 들어가실 때는

제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십니다.

30,31절 말씀을 보실까요?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보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어요.

아니 명백하게 남이 키우는 나귀인데!

그걸 그냥 풀어오라는 겁니다.

그럼 도둑질 아닌가요?

그런데 가져오려다가 주인한테 걸리면 그러라는 거죠.

주가 쓰신다고 한다

그럼 도둑을 넘어서 강도 아닌가요?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죠.

32~34절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나귀 새끼를)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놀랍게도!

나귀의 임자들은 제자들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나귀를 내 주었어요.

 

남의 나귀를 이렇게 말도 없이 풀어와도 되는거였을까요?

그리고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에

아무말 없이 내준 임자들은 또 뭘까요?

 

,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앞서 제가 말했던 '전쟁시에 suv차량을 군대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규정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런 규정이 훨씬 더 강력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언제 적용될까요?

왕의 행차입니다.’

 

왕이 어떤 곳에 행차할 때에!

왕이 필요한 이동수단에 대해서 백성에게 요구할 권한이 있었던 겁니다.

이런건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있었어요.

 

암행어사라고 있었잖아요?

중앙정부에서 지방에 몰래 잠입해서 부정 부패한 관료를 잡는 관리였습니다.

이분들이 정체를 드러낼 때면

마패를 들고서 암행어사 출두요~’라면서 나타났죠!

이 때 들었던 마패에 보면!

말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이게 무슨 의미냐면!

말들이 계속 달릴 수가 없다보니까!

암행어사가 지방에 갔을 때, 이 마패를 보여주면 말을 교환해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서

굳이 나귀를 사용하시고, 그 주인에게 주가 쓰시겠다라고 말한 건!

하나의 선언인 겁니다.

무슨 선언일까요?

 

내가 왕이다!”라는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30세부터 33세까지 3년간 공생애를 사시면서요.

정말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불치병을 고치시고,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시는 기적을 몇 번이고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면 좋겠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은 로마라는 나라의 속국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는 헤롯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다윗의 자손도 아니에요!

정통성이 없는 사람이고,

그저 로마 원로원에 잘 보여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은 꼭두각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헤롯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숱한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족보를 따져보니 심지어 다윗의 자손이에요!

왕의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예수님을 억지로 왕위에 올리려고도 시도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그런 자리를 계속 피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상하리만치 왕위 추대를 거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는데!

오늘 드디어!

예수께서 나귀를 푸시면서!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내가 왕이다라고 선언하신 겁니다.

 

그걸!

나귀 주인도 알아들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나귀를 풀어가도 아무 제지도 안했던 거죠!

 

대신에!

그 일을 예루살렘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외쳤겠죠!

예수님이 드디어 왕으로 행차하신다!”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신다!”

 

그동안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타신 나귀 앞에 레드카펫을 깝니다.

35,36절이에요.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예수님의 왕되심을 누구보다도 꿈꿨던 사람들이 이 제자들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구나!

제자들의 마음은 설레었습니다.

... 이제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까?

나는 국무총리쯤 되지 않을까?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꽃밭이 됩니다.

 

그렇게 예수께서 성에 가까이 가셨을 때!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신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왕위에 오르시려는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서 길로 쏱아져 나옵니다.‘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다 들려 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예수님을 맞이했다고 해서!

어떤 교단에서는 고난주간의 첫날종려주일로 지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한가지 생각 뿐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우리는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될거야!

우리를 지배하는 로마를 쳐부수실거야!

우리는 다윗 왕 때처럼 잘 먹고 잘 살게 될거야!”

 

맞아요!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력으로 지배하는 왕으로 오신게 아니었습니다.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일을 위해서 오신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예수님은 성에 도착하시면서 펑펑 우셨습니다.

이 성은 얼마 안있어 망하게 될 겁니다.

그것도 얼마나 철저하게 망하는지!

44절에 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보면 이 말씀이 실제로 이뤄져요!

예루살렘 성은 거대한 벽돌 사이사이에 보석들을 박아서!

해가 비치는 쪽으로 아름답게 빛났는데!

ad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성을 무너뜨리면서

그 보석을 빼낸다고 실제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았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게 하는 왕으로 오신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셨고!

이곳에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대신 달려 죽으실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요!

온 우주의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고백하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죽음 후에도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하십니다.

언젠가 부활의 날에는!

우리의 죽은 몸까지도 부활해서 영혼과 하나되어!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단지 땅에 있는 언젠가 망할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천국의 왕이십니다.

여러분은 그 예수님께 속해 있는 천국의 백성입니다.

 

세상은 뭐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고...

이런 것에 관심이 많지만 말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그분과 함께 이번 한주도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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