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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전쟁

상황이 점점 심상치 않게

번져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게다가 일본의 대지진

미국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자연 재해 소식 역시도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지요. 

'수십년만의 처음'

'수백년만의 처음'

이런 말들이 심심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 소멸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최후 심판의 때'가 도래한 걸까요?

 

누가복음21:12,13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라고...

예언되었던 그 일이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확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예수께서 친히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한다'

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25:13)

 

아무리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

그것으로 예수님의 재림 심판의 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기근과 재난에 대해서 

'그게 끝의 신호'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아직 끝은 아니라'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말에 있을 재난 예고 본문'에서

'종말'은 

'세상 끝날의 종말'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종말의 날에 

전쟁과 기근이 있을 거라는 

예고는 세개의 복음서에서 

똑같이 나옵니다. 

 

마태복음24장, 마가복음13장, 누가복음21장

세 군데의 말씀이 공히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오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자

예수께서는 

'이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고하십니다.

누가복음21: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뜬금없게도' 이렇게 여쭙지요.

마태복음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성전 파괴'를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세상의 끝날'을 떠올렸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곧 '세상의 끝날'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성전'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끝'과 다를바 없다는 거죠.

 

그렇게 이해해야만!

'돌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다'는 말씀과

'세상 끝'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AD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될 때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벽에 박혀있던

보석들을 빼내려고

실벽들을 깨트려서

실제 '돌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옛 세상, 즉 옛 언약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이

많은 성경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전쟁'과 '재난'의 소식들이 

들려오는 것을 보며

이것이 

'성경의 종말'이라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야기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내일 오실지

이 글을 읽는 중에 오실지

1000년 후에 오실지 모릅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이라는 날을 성실하게

살아갈 사명이 있을 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복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두려움의 날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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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라"

 

마태복음은 '계보'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이런 방식으로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에게까지 

총 42명의 인물 이름이 나옵니다. 

 

이 계보를 

세 단계로 나누어서 

각각 열 네대를 맞추었습니다.

 

1세대 : 아브라함~다윗

2세대 : 다윗~바벨론 유수

3세대 : 바벨론 유수~그리스도

 

"와 신기하게 14대가 딱딱 맞네..."

싶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구약 성경을 펼쳐서 

족보를 일일이 살펴보면

빠진 대수가 있습니다. 

즉 실제로는 열 네대가 넘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서 제시하는 족보는

'신학적 족보'라는 뜻입니다.

어떤 주제를 가리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숫자를 맞췄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숫자의 의미는 

7 + 7 = 14

완전수를 두번 하여

'완전'을 강조한 의미입니다.

무엇의 완전인가!

 

먼저 '아브라함 부터 다윗까지'의

열 네대입니다. 

아브라함이 족장시대의 대표자라면

다윗은 왕정시대의 대표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끊은 것은 납득이 됩니다.

 

그리고 

'다윗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갈 때까지'

열 네대입니다.

다윗의 왕정 시대 전체를 

보여주죠.

여기도 납득할 수 있는 구분점입니다.

 

마지막에 보시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대입니다.

우리는 납득하겠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구분점입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후 부터라면!

포로기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포로 회복기'를 말하는 게 옳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맞추기에는!

포로생활이 70년이었기에 

족보로 맞추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회복기를 넘어서!

14대를 이어보니!

'예수님의 때'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족보가 그렇게 되었는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맞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들만큼 족보에 진심인 민족도 없을테니까요.

 

이 족보를 통해서

마태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은 '포로 회복'을 하고 

지금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너희는 여전히 남의 나라의 속국"인 걸

지적하는 장치입니다. 

 

새로운 시대!

참된 포로 회복이 일어날 때!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거'라 하셨던

'아브라함의 언약'과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셨던 

'다윗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힌 후에!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은!

참된 자유와 

아브라함, 다윗 언약이 

세상에 나타난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탄절을 복된날로 여기고

지구상의 전 교회가 함께 기뻐합니다. 

 

이번 성탄절도!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확신하며!

우리 인생에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새 힘을 얻는 복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상

https://youtu.be/v6VQf8dRk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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