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회생활, 목회자

48세 아이 셋인데 28년동안 했던 교회 사역을 사임하고 백수 목사가 되었다.

love-history 2024. 3. 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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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목사의 꿈을 꾸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했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총신대학교를 거치고
총신 신대원을 나와서
목사 임직을 받았다.

목사의 꿈을 꾸고
목사가 될 때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목사가 되었고
목사로서 15년을 살아왔다.

그동안에 아이도 셋 낳아 키우면서
오랜 부교역자 생활을 마무리 하고
담임목사가 될 참이었다.

그 때 까지는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된다고 생각했다.
이 길에 들어선 사역자들이
일반적으로 가는
그래도 성공적인 커리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담임목사로 지원했던 교회에서
청빙 공동의회가 통과 되었고
담임목사 청빙서까지 받아들었다.
사역했던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로 사역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쉬어야 한다고
빠르게 사임을 시켜주었다.

사임을 하고!
청빙한 교회로 가기 전에
막판 조율을 하다가
가고자 하는 교회와
이야기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거다.

자세한 사항을 적기는 어렵지만
정리하자면,
이 교회는 이전 담임목사님들이
재정문제, 사모님 문제 등으로서
교회에 많은 상처를 주었고,
그만큼!
새로 오는 담임 목사에게
이런 저런 요구들을 하셨다.

교회도 그만큼 어려움을 당했기에
여러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나도 생각은 한다.
그러나 나는 나다.
처음부터 이런 요구에 끌려 다니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의 선을 그었고,
앞의 목사님들처럼 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오히려 더 잘 할 수있다고
그렇게 장로님들을 설득하려 했다.

잘 이야기하면 장로님들도
납득해주실거라 그렇게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청빙 취소‘라는 문자를 받게 된 것이다.

이 문자를 받을 때까지도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한건지
깨닫지 못했다.
그냥 청빙이 안되었을 뿐이라는
안이한 생각 뿐이었다.

그 이상의 문제였다.
나는 벌거벗은 채로
교회 밖, 사회로 던져진 것이다.

내 통장으로 매달 들어오던
사례비가 더 이상 없었다.
아이들 밥 먹일 돈도, 학원에 보낼 돈도
진학한 학교 교복 살 돈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48세의 나이는 정말
잔인한 나이였다.
부목사로 가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다.
어느 교회도 이정도나 나이먹은 사람을
써줄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담임목사를 지원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이번까지 나는 100통이 넘는
담임목사 이력서를 썼다.
그만큼 좁고 어려운 길이
담임목사가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담임목사 이력서를 내려면
적어도 현재 사역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담임목사 이력서 첨부 서류에는
사역하고 있는 교회의 주보 4주치를 내야 한다.
이것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날 이 때껏 한 것이
교회 일이었는데…
그 외에 다른 일들은 전혀 경험이 없었는데…
이제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것도 빠르게 해야 했다.
적은 사례비였기에
모아둔 돈도 없었고,
퇴직금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한 주 한 주가
너무 빨리 지나갔고
카드 사용내역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다음달 카드 값은 어떻게 값아야 하나
마음이 급해지니 시야가 좁아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듯 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온통 ‘쿠팡 물류 센터‘ 아니면
’평택 고덕 삼성 반도체 건설 노가다’였다.
이것말고는 선택지가 없는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을 더 만났어야 했다.
좀 더 많은 가능성들을 알아봤어야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도 사치였다.

처음에는 ‘쿠팡 물류센터’ 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나 간단한 업무로 361만원이라는 말이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361만원이면 목사 15년차까지도
받아보지 못했던 수입이었다.

그렇게 ’쿠팡 웰컴데이‘를 참석했다.
그리고 알았따.
361만원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했다.
밤을 꼴딱 새는 야건 업무를 해야 했고,
이런 저런 프로모션에도 해당 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일반 낮의 업무만 할경우에는
생각보다 너무 적은 비용이었다.
우리 가족이 지출해야 하는 고정 비용 정도
채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매일 야간업무를 하기에는
내 건강이 못따라줄게 분명했다.

이정도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에
어디선가 받았던 명함이 눈에 띄었다.
‘평택 고덕 삼성 반도체 잡부’를 모집하는
팀장님의 명함이었다.
거기에 보니
일당이 굉장히 쎘다.
일당이 17만원이었다.
일당을 1공수라고 했는데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까지 1공수
거기서 두시간 더 하면 1.5공수
그리고 거기서 두시간을 더 하면 2공수였다.
2공수로 하면
일당이 34만원이다.
‘이건 대단하다’ 싶었다.
곧바로 그분에게 전화를 했다.
그분도 내 전화를 매우 반가워했고
즉시 몇가지 자격을 갖추라고 했다.
하나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을 받고
이수증을 받으라는 거였고,
또 하나는 ’한국 비계기술원‘이라는 곳에가서
비계 관련 교육을 받고 이수증을 받으라 했다.
이거 다 돈드는 일이다.

건설업 안전보건 교육비는 5만원
비계 교육비는 7만원이었다.
헐…
백수에게 있어서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래도 앞으로 받을 돈을 생각하면
마중물이라 생각할만했다.
그래서 교육을 다 받았다.

그런데!
막상 교육을 받고 날짜가 되었는데
현장 팀잠에게서 연락이 왔다.
’삼성 현장에 슬로우다운이 걸려서‘
일이 없어졌다고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 이것만 기대했는데
이것도 답이 아닌듯 했다.
예전에 한창 잘 될 때 돈이 괜찮았고
지금은 언제 분위기가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러면서 벌써 3주가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에는 자동차로 쿠팡이츠 배달을 하거나
쿠팡 캠프에서 일일 헬퍼를 지원해서
그날 그날 일을 했다.
물론 얼마 안되는 돈이었고
기름값도 상당히 들었다.

이제는 큰돈 이런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정적인 수입이었다.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보았다.
고등학교 동창들과도 연락하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 먼저 놓였던
선배들에게도 연락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많은 수입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것이었다.

그중에서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자기 회사와 연결된 기업 사장님을
연결해주었고,
그 계기로
취업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한동안은 천안에 있는 공장에서 일할 것 같고
거기서 인정 받으면
서울에 있는 사무실로도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입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하는 것에 따라 미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그런 일이다.

이제 내일 모레면 일을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한달 약간 넘는 기간동안에 있었던 일이다.

사람이 이렇게 피폐해질 수 있는 가 싶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동안 들었던 몇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보겠다.

1. 목사로서 오랜시간 설교해왔던 것과
실제 삶의 괴리에 대한 것이다.
물론 나는 목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해봐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한다.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고 설교하는 것은
가짜라는 말에 단호히 반대한다.
오히려 세상의 일들에 너무 노출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군급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
이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한’
‘결국 내가 해결하고 있는 듯한’
이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는 건
인정하겠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서 순간 순간
섭섭한 마음도 들고
하나님을 찾으면 다 해결된다는 식으로
설교해왔던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말 하면 안되는 거였다.
어쩌면 더 깊은 적용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둘째.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되니
내게 필요한 사람과 필요없는 사람이
확연히 드러났다.
말만하는 사람과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람이
달랐다.
평소에 내 편이라 생각하고, 의지했던 사람이
막상 내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이런 저런 말만 늘어놓았다.
‘이런 때에 어려운 사람 마음을 알아야 한다’든지
’세상 사람 어떻게 사는지 경험해봐라‘든지
이런 건
내가 ’다시 목사로 돌아갔을 때‘에나 소용이지
지금 목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쓰레기와 같은 말에 불과하다.
욥의 세 친구가 생각났다.
정말 말만하는 친구들…

“[욥16:1-2]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그렇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
그런 친구들이 있던거다.

반면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분은!
내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카톡으로 얼마간의 비용을 보내주었다.
가족들하고 맛있는 거라도 먹으라고
10년 넘게 연락도 없던 사이였는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꺼이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이었다.

비용을 떠나서 이런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이건…
내가 다시 목사가 되든 그렇지 않든
‘사람으로서‘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정말 배운 일이다.

재난이 아닌 도움을 주는
위로자가 되자!

자. 이제 모레부터는 일을 시작한다.
어떤 일일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열심히 배우면서 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