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기독교

교회에서 목회자가 말하는 '섬김'이란 어떤 것일까?

love-history 2022. 7. 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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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회자가 교인을 섬긴다'라는 말을 할 때,

'섬김'이라는 개념을 오해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교회 사무실에서 목회자가

교인의 팩스를 대신 보내주는 걸 섬김이라 하고, 

환우가 몸이 아파서 집이 지저분 할 때 

목회자가 가서 청소해주면 섬김이라고 한다. 

교인들이 모일 때에 

목회자가 사비를 털어서 음료를 사면 섬김이고,

예배 시간에 주보, 헌금 봉투 챙겨주면

그게 섬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섬김'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목회자의 섬김'이라고 할 때!

'그 섬김'과는 거리가 많다. 

 

단도직입적으로 목회자의 섬김이란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먹이는 것이

진정한 '목회자의 섬김'인 것이다. 

 

구약 시대 레위인 역시도 제사장 지파로서 

이스라엘을 섬기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의 섬김 역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소한 일들 까지 돌보는

일이 아니었다. 

제사와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게 하는 것,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그들의 '섬김'이었다. 

 

교회의 목회자도 마찬가지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게 돕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교회에서 여러 목회자를 모시면서

두 극단의 '섬김'을 경험했다. 

한 목회자는 '말씀 전함'을 '섬김'으로 정의 했고, 

또 다른 목회자는 '교인의 사소한 일들을 돕는 것'을 '섬김'이라 했다.

교역자들에게 각각의 스타일 대로 '섬김'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들을 돕는 봉사'가 옳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목회자들의 소위 '사소한 봉사'를 받는 교인들은 

목회자를 점차로 '심부름 꾼'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일을 시키려 들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으며, 

원하는 대로 조금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시험에 들었다느니, 내가 헌금을 얼마를 하고 있다느니,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반면, '말씀 전함'을 '섬김'으로 여기는 교회를 보자. 

나는 '극단적'이라고 했다. 

그분은 오히려 교역자가 '사소한 봉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심지어 교역자실을 '말씀 준비하는 공간'으로 

교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무거운 거 드는 일이라든지, 청소같은 일 역시 

교역자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대신에!

교역자들은 '말씀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설교 메시지는 분명해야 했고, 

한 번 한 번의 설교를 위해 시간과 몸을 갈아 넣어야 했다.

설교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땠을까?

교인들은 

자신들의 '사소한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일들은 교인들이 스스로 도맡으려 했다.

교회의 존재와 사역에 만족했고, 

교역자들을 존중해주었다. 

 

요한3서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목회에서의 '섬김'은 '영혼을 섬기는 것'이다. 

성도의 영혼을 섬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여전히 교회의 교역자들은 

온갖 잡무에 피곤해 하는 것을 본다. 

행사 준비에, 교인들의 형편과 필요 채우는 일에, 

예배 숫자 늘리는 일에, 교회의 여러 행정과 사무에, 

대부분 '설교 준비'는 집에와서 밤늦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강단의 설교가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섬김'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고 바른 섬김을 회복하는

교회를 세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