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서적 독서모임 준비질문) 먹다 듣다 걷다 - 이어령
이번 질문은 '듣다' 파트이다.
기독교의 상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빵'에 비유한다.
그것이 '빵'이라면 그 말씀을 '먹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을 인간의 실존으로 이야기 해볼까?
'빵'으로 이야기하면 '먹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야기하면
'듣는 것'이다.
교회의 '복지'는
'먹는 것'에 이어서!
'듣는 것'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
작가가 먼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듣는 것'이 우선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접대하기 위해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일하는 중이다.
그와중에!
마리아는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마르다 입장에서는 속상할 노릇이다.
언니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이 동생은 어찌 저리 철이 없단 말인가!
게다가!
고대 사회에서 여자는
앉아서 말씀을 들을 입장에 있지 못했다.
마땅히 음식을 준비해야 옳았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고자질한다.
"예수님! 마르다에게 너도 일좀 하라고
이야기좀 해주시죠!"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인가?
누가복음10:41,42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봉사'와 '듣는 일' 중의 '취사선택'이 아니다.
적어도 '말씀을 들을 때'는
봉사의 일을 내려 놔야 한다는 것이다.
봉사에 치우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듣지) 못하게 되는 것은
영적 기근을 초래하는 일이다.
1. 마르다의 경험을 비추어
요즘 내 마음을 분주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이 말씀보다 앞서 있지는 않은가?
2. 요즘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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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말씀이 육적인 필요보다 앞서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이 영원한 생명이고, 진짜 삶이고,
행복인지 찾아야 한다.
이 질문을 해결하고 출발해야 계속 교회에 나온다.
교회의 복지 역시 이 점을 염두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벌이는 많은 사역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p.111)
교회가 사회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들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제일 급하고 중요한 것은
정치 경제가 아니고 생명인 것이다.
생명을 놓치면 세상을 놓친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달려 있다.
(p.113)
예수님을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이
이토록이나 기독교의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심지어 신학을 하는 교수들 중에도
교회의 대사회 복지를
'먹는 것'에 방점을 두는데
이분은 진정한 '먹음'인
'말씀 들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감탄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