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나의 장년 설교
출애굽기4:1-17
행복한 주일 보내고 계십니까?
자 여러분
오후시간에 잠이 올 수도 있으니 한가지 상상을 해보시죠.
만일에!
오늘 주일 잘 보내고 나서...
오늘 밤에!
꿈에서든지, 갑자기 머릿속에 든 생각으로든지,
아니면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강렬하게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어떠시겠습니까?
“누구누구 집사야, 내가 너를 선교사로 쓰려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접고 선교 준비를 해라.”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꼭 사역 방향으로만이 아니고!
사업이나, 직장이나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일을 위해 부르신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실 것 같습니까?
크게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애요.
어떤 사람은 ‘부담스럽다며 못하겠다’ 하시는 분도 있을 거고,
또 다른 사람은 ‘나를 보내소서’ 라고 적극 나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어떤 목사님이야기인데요!
그분은 중고등학생 때 전교 일등을 안놓치는 수재였습니다.
그분 어머니께서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사시는 분이었고!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얘가 우리 집안을 일으키겠구나!’
그런데
그 아들이 어느날 교회 수련회를 다녀와서 은혜를 받았어요.
마음에 ‘신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 아들도 고민이 많았죠.
아들 자신도 어머니가 자기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고,
나중에 어머니 호강시켜드릴 꿈으로 살아왔어요.
그런데 ‘목회니 선교’라니까...
웬지 그런 길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던 겁니다.
어떻게든 그런 마음을 떨치려고 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강하게 마음이 이끌린 겁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머니는 극렬하게 반대를 하셨어요.
교회까지 찾아와서 우리 아들 좀 말려달라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들으면서까지 신학을 하셨고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 어머니께서 지금도 얼마나 아쉬워하시는지 모릅니다.
반면 어떤 회사 대표님은요!
자기는 처음부터 꿈이 목사였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학에 길이 안열리더랍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저 상황이 안맞고 타이밍이 안맞고... 그랬던 겁니다.
결국 사역자의 길은 포기하고!
일반 사업을 해서 교회에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게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기 싫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는 거죠.
그 두 가지를 다 경험한 사람이 모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40년동안 양치기를 하던 80세나 된 모세를 부르세요.
‘모세야! 애굽에서 비참하게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
한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적인 사명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찍어서 ‘너를 쓰시겠다’ 하신 겁니다.
이 일이 성공한다면!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위인이 되는 겁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요.
성경과 교회사는 모세를 빼고는 설명이 안되거든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요!
당대 최강대국인 애굽으로 부터 ‘한 민족을’ 건져내는 일입니다.
누가 감히 이런 일을 하겠느냐고요.
하나님이 이만한 성과를 이루게 하시겠다는 거잖아요!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고
구체적인 비전과 능력까지 주신다고 하신다면!
여러분 거절하시겠습니까!
“주여! 제가 가겠습니다!”
손을 들고 헌신하지 않겠어요?
이제 우리나라도 내일부터 대통령 선거 기간에 돌입합니다.
선거 시즌만 되면 사람들이 잘 걸리는 병이 있답니다.
무슨 병일까요?
‘난가? 병’입니다.^^
조금만 자격이 된다 싶으면 ‘혹시 나도 대통령이 될 상인가...’ 하면서...
너도나도 후보로 나오려 하죠.
대통령 된다고 딱히 좋은 것도 아니거든요.
임기 끝다면 대부분 재판 받고 감옥가고 그닥 좋을 일이 없는데도
그저 그거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지도자가 된다는게!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게 마련일텐데오!
정작 모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영 시원치가 않습니다.
시원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보려고 온갖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무슨 삼고초려도 아니고요!
무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몇 번 권유하시는 지 보세요.
오늘 본문 앞쪽이고요.
출애굽기3:9,10절입니다.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이 친히!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게 할 거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인데 이만큼 확실한 보장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뭐라고 하나요?
3:11절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말을 생각해보세요!
나는 자격이 없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하나님이 하시면 되겠지만!
그 일에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이걸 겸손이라고 부르는데...
여러분 이건 겸손일 수가 없어요.
모세는
‘자신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양보하는 차원으로 거절‘하는 게 아닙니다.
모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죠!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말로 설득하시면서
또 다시 부르시거든요!
모세가 이번에는 다른 핑계를 댑니다.
오늘 읽은 말씀 1절 보세요!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셨다 하리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겁니다’ ‘내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인가요?
‘나같은 사람의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을 겁니다’
왜!
‘나는 보잘 것 없고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나를 누가 인정이나 해주겠어요?
내가 나를 봐도 못났는데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나를 얕잡아볼게 분명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못이겨서라도 받아들일 것 같은데!
모세는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자기는 못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2절이하요!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그걸 땅에 던져라!”
지팡이를 던졌더니 그게 뱀으로 변했어요.
모세 관련된 영화나 그림을 보시면 지팡이 길이가 사람 키보다 더 크거든요.
그게 눈앞에서 뱀으로 변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큰 뱀이겠어요?
모세가 너무 놀라서 피하니까!
하나님이 즉시 뱀의 꼬리를 잡으라 하셨고!
잡으니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기적으로!
6,7절 보시면!
모세더러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보라고 하시죠!
손을 넣었다가 뺐더니 ‘손에 나병이 들어서’ 하얗게 변했습니다.
다시 손을 넣었다가 빼라셔서 그리했더니 손이 나았어요.
모세에게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이런 능력들로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 애굽을 저주하실 겁니다.
아니, 이정도 능력을 봤으면!
그래도 좀 해볼만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서도!
모세는 여전합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않으시니까!
결국 모세는 ‘자기가 왜 부르심을 거부하는지’ 이유를 실토하죠!
10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자니이다!”
아, 이게 원인이었네요.
자기는 ‘말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능수능란하게 말할 줄 알아야
백성도 설득하고, 왕앞에서도 논리적으로 요구사항을 말할텐데!
자기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셨어도.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신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나는 말을 못하는데...
말도 잘 못하는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하나님의 일을 망치면 어쩌나...‘ 두렵다는 겁니다.
모세의 마음을 저도 어느정도는 이해합니다.
제가 사람들하고 잘 안싸워요.
저랑 오랫동안 아는 사람들도
제가 누군가하고 얼굴붉히거나 하는 걸 본적이 없다고들 했습니다.
이게 자랑이 아닌게요.
제가 ‘목사라서’ ‘성품이 좋아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사실은 ‘말을 잘 못해서’ 분쟁이 있는 자리는 피해버립니다.큰마음 먹고 어떤 사람과 논쟁을 하면!
결국 어버버거리다가, 제가 먼저 ‘죄송합니다’ 하고 물러섭니다.
이렇게 될 걸 너무 잘 알거든요.
싸워서 이기지 못할 싸움을 뭐하러 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요!
말싸움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을 논리정연하게 따박따박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살아오면서 저랑 가까웠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보면요.
다들 말 잘하는 사람들이에요.
한 4,5년 붙어다녔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이 친구는 정말 대단했던게...
대학교 기숙사가 보통 2층 침대잖아요?
기숙사에서는 2층을 잘 안쓰려 하거든요.
저희가 군대가기 전 대학교 2학년 때,
기숙사 방에 군대 다녀와서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1학년이 방에 들어왔어요.
이 때 ‘자리선정’에 대해 이 친구가 뭐라고 했느냐면!
‘나이는 당신이 더 많지만, 우리가 2학년 선배니까 우리가 1층 쓰겠다’고 했어요.
한마디도 안 밀리고 이야기해서는 기어이 1층을 차지했습니다.
시간이 지났어요!
우리가 군대를 갔다 와서 나이 많은 후배 입장이 되었고,
똑같은 2층 침대 주도권 다툼을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반대로 말하더라구요.
‘당연히 나이 많은 사람이 1층 침대써야지,
어디서 어린 친구가 학년 높다고 1층 쓰려 하냐’라고요.
그 때도 현란한 말솜씨로 상대편을 완전히 누르고
침대 1층을 차지했습니다.
수년간 이 친구하고 같이 다니면서 콩고물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참 친해요.
자... 말을 잘한다는게 얼마나 큰 능력인지 몰라요.
그게 없는 저로서는!
누구랑 논쟁한다는 게
정말 부담이 큽니다.
“에이, 목사님은 강단에서 설교도 하고 그러시면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렇죠. 설교는 누구랑 싸우는게 아니잖아요.
그야말로 강단에서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입장에 서는 거고!
그저 성경본문이랑 열심히 씨름해서 원고만 잘 작성하면,
그 다음엔 원고대로 설교만 하면 되니까요.
자, 여러분!
모세가 그랬던 겁니다.
‘나는 말을 못해서 부르심에 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셔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세요!
11,1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걱정 마라!
내가 사람의 입을 만들지 않았느냐!
말 잘하는 능력?
내가 주면 되는 거 아니냐!
내가 말 잘하게 해줄께!
뭐 그런걸 가지고 그렇게 걱정하냐!
그런 말씀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13절이요!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 구절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죠?
‘오! 주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삐’라고 되어 있어요.
성경에 감탄사 ‘오’가 들어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단어가 언제 쓰이냐면요.
열왕기상 3:26절에 있는 ‘솔로몬의 우화’인데....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자기 자식이라고 다툴 때입니다.
누가 이 아기의 진짜 엄마인지 결론이 안나니까!
솔로몬이 아이를 반으로 갈라서 각 여인에게 나눠주라고 하거든요.
그 때에 아이의 친엄마가 다급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여기서 ‘청하건대’가 ‘삐’입니다.
“‘오!!!!! 내 주여!’ 아이를 죽이면 안됩니다.
차라리 아이를 상대편 여자에게 주십시오!”
모세가
‘내 아들 죽이면 안됩니다’하는 그런 ‘아기 엄마’의 강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이정도면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없는지 보이시죠?
결국 하나님이 내주신 처방이 뭐에요?
14~16절이요.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그래!
니가 말을 못해서 못하겠다면!
니 형! 아론이 있다.
아론이 말을 잘 하니까!
니가 내 말을 아론에게 전하면!
아론이 백성에게 또 왕에게 대신 말 하도록 시키겠다.”
그정도면 되겠니?
그제서야!
모세가 억지로 순종을 한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안하겠다고 버티는 모세도 그렇고요.
그런 모세를 쓰시겠다고 부르시는 하나님도 참 답답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에는 ‘노하셨다’ ‘분노하셨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화가 나실정도로 모세가 답답하게 굴었다는 거죠.
그럼 여러분!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답답하게 느껴질까요?
그건
모세가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서 그런겁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입니다.
출애굽기 7: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시간으로 돌려서 그로부터 40년전!
40세의 젊은 모세가 어땠는가를 생각해보시죠.
사도행전 7:22절입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의 과거 잘 아시죠?
모세를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
바로왕의 딸이 모세를 건졌고!
이후 왕가에 입양되어서 ‘왕자’로서 자랐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통치자의 언행을 잘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했죠?
그 때까지는 말 잘하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훌륭했던 사람이
40세 때 어떤 생각을 했는줄 아세요?
출애굽기7:23절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자기가 가진 왕가의 권세로!
이스라엘을 건질 마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젊고 능력있고 최고 권세까지 가진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할 마음까지 있으면!
이보더 더 적합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40세의 젊은 모세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세의 인생을 밑바닥까지 떨어트리셨습니다.
광야로 몰아내시고!
무려 40년동안!
‘양을 치게 하셨던 거에요.’
여러분 40년이에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40년동안이나 고립되어 있으면요!
있던 능력도 다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광야에서 양치던 사람이
누구랑 대화할 일이 있었겠어요?
그쯤되면!
사람과 대화보다는
양들하고 더 소통이 잘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는 말이 맞는 거에요.
“하나님 저는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자 여러분!
모세의 가장 자신있었던 것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나이도 80이나 되어서!
더 이상 자신에게 기대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세의 능력있는 젊은이가 아니라!
80세의 말도 잘 못하고 자존감도 낮은 노인을 부르셨던 겁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오늘 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모세와의 대화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가 구원하겠다. 내가 인도하겠다. 내가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애초에!
이스라엘의 구원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일’이었습니다.
어쩌면요!
모세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로 부름 받은 겁니다.
모세가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면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면 아멜렉 족속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지팡이의 능력이 아니지요.
지팡이는
하나님이 어떤 능력을 행하시는지 가리키는 표식이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인생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불평 불만 원망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 불평 불만 원망 때문에!
하나님께서 몇 번이고 백성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만일
40세의 혈기왕성한 왕자 모세였다면!
이런 백성을 용납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모세가 한술 더떠서 그들과 싸웠을 거에요.
그런데!
80세의 모세는 달랐습니다.
40년간 양떼를 치면서!
왕자가 아닌 목자가 되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행동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성을 심판하려 하실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80세에서 120세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멸망받아 마땅한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해 낼 수 있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잃어버렸던 40년의 세월을 보상하듯이!
하나님은 모세의 세 번째 40년을
역사상 최고 지도자로, 하나님의 지팡이로 사용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헛되게 생각할
40년 목자 생활이!
모세에게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던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분이시고,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 하나님 앞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요! 우리 인생을 결코 헛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주안에서 화목하고 행복하고 잘되기만을 바라지만!
어쩌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자녀와 남편 아내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치 않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픈 손가락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지 않을까!
왜 하나님은 이런 시험을 주실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힘든길을 가게 하실까?
고민이 깊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만 나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로마서 11:29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모세가 양을 치던 40년의 시간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을 다시한 번 붙쫓는 여러분과 가정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