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설교들

"절망 끝에서 만난 희망, 예수님"-나의 중고등부 설교

love-history 2025. 3. 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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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7:11-19

 

 

차인표라고하는 배우가 있습니다.

목사님 시절에는 정말 탑급 배우중의 한 사람이었어요.

어느날부터인가...

이 사람이 교회에서 간증하는 영상이 많이 돌아요.

이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서 하나님을 정말 열심히 찾았답니다.

그런 특별한 경험이 없이 마음이 공허하고 그랬는데...

어느날 아내인 신애라씨를 대신해서 동인도 단기선교를 억지로 가게 되었데요.

이 때, 담당 목사님이 불만 가득한 차인표씨한테 한가지 부탁을 하더랍니다.

목사님 그곳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그곳에 가시면 아이들 손 잡고

너는 특별하단다.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도착해서 6살 쯤 된 아이의 손을 잡은 순간!

수 십 년 간 찾았던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인표야 잘 왔다.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주님이 그를 만나주신 자리는!

화려한 무대위가 아니라!

비참하고 낮고 천한 자리였다는 거죠.

 

실제로 성경을 보시면!

예수님은 항상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건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11절 보시면!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는 길입니다.

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사마리아는 원래 이스라엘 지역이었는데,

과거에 앗수르라는 나라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그 땅에 강제 이주정책을 펴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혼혈이 된 지역입니다.

 

잘 아시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싫어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방인을 만드셨냐고 물으면 지옥의 땔감으로 만들었다고 할 정돕니다.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보다 더 혐오하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에요.

? 섞였다고요. 변질되었다고요.

 

그런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접경 길로 예수님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 길로 가셨을까요?

그 길에!

나병환자 10명이 있었던 겁니다.

나병이란, 피부가 썩어 문들어져서,

나중에는 코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병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병을 부정한 병으로 지정했어요.

그래서 나병환자는 성안에 살 수 없었고, 성 밖으로 쫓겨나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이 지나갈 때는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야 됐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길로 지나가신 이유는!

이 나병환자들을 만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을 고쳐주시기 위해 가신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죠.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것도 아기가 되셨습니다.’

그것도 말 밥통위에 누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낮고 천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지요.

이걸 예수님의 자기비하라고 합니다.

 

자 다시 사마리아갈릴리사잇길로 가보시죠.

아니나다를까 나병환자 10명이 이 길을 지나는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이들에게는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가 온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죠?)문둥병자가 일반인 가까이로 갈 수 없기에!

멀리에서 소리만 지릅니다.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단 한 번 있는 기회에!

이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불렀을까요?

 

예수님은 뭐라 하십니까?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갑자기?’

나병환자가 제사장에게 몸을 보여주는 때가 언제냐면요!

나병이 나아서, 그걸 제사장이 확인할 때입니다.

그러면 그 부정을 제하는 제사를 드리고 그 후에야 일반인이 반열에 오르는 겁니다.

레위기 142절 율법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나병환자가 치유된 후에는 제사장에게로 갈 것이고!

이후에는 길고 긴 정결제사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문제가 뭐냐면요!

이들은 아직 나병이 낫지 않은 그대로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로 가라는거죠!

제사장은 제사를 집례하는 사람이라서 부정해지면 안되거든요.

, 나병이 낫지도 않은 사람이 제사장에게로 가면요?

성에 들어가기도 전에 돌부터 맞아 죽을겁니다.

 

그래도요!

이들은 다른 이도 아닌 예수님의 명령이기에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합니다.

사실 목숨을 건거에요.

그만큼 낫고자 하는 열정이 컸던거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보상을 받습니다.

성전까지는 거리가 멀거든요!

죽을 각오 하고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들의 병이 깨끗하게 나은 겁니다

14절 후반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얼마나 꿈꿔왔던 일입니까!

그 자리에 있던 9명은

이제 걱정 없이 제사장에게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깨끗해졌으니까요.

그걸 확인 받고 정결제사 드리면 되는 거죠.

 

그런데...

10명 중에

사마리아 사람이 1명 있었던 겁니다.

...

생각해보세요.

사마리아 사람에 대해서 앞서 이야기했죠?

이 사람은 애초에 유대인의 미움받는 사람입니다.

나병이 아니어도 유대인인 제사장 앞에 서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예수님 명령이니 일단 출발했던 겁니다.

이 사람의 순종은 다른 9명과는 애초에 수준이 달랐던 거에요.

사른사람들보다 몇배의 각오가 더 필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어요.

9명과 달리

사마리아 사람은 성전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마리아 사람인자기를 정결케 할 제사가 어차피없을 것입니다.

 

걸음을 돌이켜 자기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병이 나았기 때문에

이제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피하지 않아도 됩니다.

16절이요.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그리고....

여기서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예수님은 병고침 받은 후에

성전으로 계속 간 사람들을 책망하신 거에요.

 

왜 그러신 걸까요?

참된 성전이자 대제사장은 바로 예수님이었던 겁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정결케 하셨고!

예수님이 그들을 정결케하는 제사 제물이 되실 겁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11절에 이렇게 시작했던거죠.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예루살렘 길은 십자가를 지러 가는 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전 건물이 자신을 정결케하는 제사장소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그곳으로 갔지만,

그곳의 기능은 이미 끝났습니다.

옛 성전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오히려 구원은 정결제물이 되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병이 나은 후라면!

예수님께 달려온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이 옳았던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선언하십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사마리아사람은!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몰랐을겁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기가 왜 구원 받았는지도 몰랐을거에요.

자기는 그저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었고!

문제가 해결되어서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했을 뿐이거든요.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게 구원이에요!

아무것도 할 수없이 절망에 빠진 낮고 천한사람에게!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예수님이 치료하시고!

그 앞에 감사하며 엎드렸을 뿐인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께서 그렇게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차인표씨가 동인도의 비참한 아이들을 통해 예수님 만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꼭 그러라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낮고 연약한 우리 인생에 이미 함께 하십니다.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주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미 2000년 전 말구유에서 우릴 향하신 사랑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믿고 이겨내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